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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물욕, 그리고 내 삶의 진짜 나침반

by 헤어지니 강샘

내 안에는 유독 옅은 욕망 하나가 있다.


바로 '물욕'. 돈이나 재물 자체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행복해지고 싶다'는 갈망이 유난히 희박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꿈을 꾸었고, 그 꿈이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배움'이라는 자양분을 흡수하며 걸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는 것을 즐겼고, 그 꿈의 빛을 좇기 위해서라면 어떤 배움이든 마다하지 않으며 나만의 지도를 그려왔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뜨겁게 타올랐지만, 이상하게도 물질적인 소유에 대한 욕망은 크지 않았다. 남들이 열광하는 브랜드의 제품이나, 최신 유행하는 물건들 앞에서도 그저 '그렇구나' 하고 지나칠 뿐, 가슴이 뛰거나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드물다. 어릴 때는 이런 모습이 '검소하고 착하다'는 미덕으로 포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의 절반쯤을 지나온 지금,


오롯이 나만을 위해 '갖고 싶은 것'에 돈을 써본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이 문득 낯설고 아리게 다가온다. 예쁜 것을 봐도 그저 관조할 뿐, 내 것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일지 않고, 멋진 가방을 마주해도 그저 '멋지다'는 감상에 그칠 뿐이다.


가끔은 나도 소비의 즐거움을 꿈꾼다!


솔직히 가끔은 그런 물질적인 것들 앞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거리며 '이것저것 골라 담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이게 참...

나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왜 나에게는 그 흔한 '물욕'이라는 감정이 이토록 희미해져 버린 걸까?


아마 나는 살아오는 동안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내면의 성장이나 경험의 축적에 더 큰 의미를 두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편안한 옷과 신발, 실용적인 가방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느껴왔으니까.

물질적인 부분을 덜어냈더니, 생각보다 훨씬 더 간결하고 편안한 일상이 찾아왔다.

그 대신 내가 꾸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배움'에는 시간도 돈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삶의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이따금, 아주 이따금씩 불현듯 깊은 자괴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세상의 즐거움 중 하나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때로는 이 모든 생각의 짐을 내려놓고, 그저 아무 욕망 없이, 아무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볼까 하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내 삶의 진짜 연료는 '꿈'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런 방황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다시금 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새로운 배움을 찾아 나서는 나를 보면, 나는 역시 '꿈을 먹고사는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런 꿈, 이런 희망이 없다면 살아가는 재미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꿈을 향해 가는 길은 때때로 더디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며 고달프기까지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아주 작은 깨달음이나 나만의 가치 하나라도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그 하루를 충실히 잘 살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인생에 정해진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믿는다. 그저 내가 선택하고 걸어가는 이 길이, 수많은 가능성 중 내가 써 내려가는 나만의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후회 없이 참 잘 살아왔다', '나만의 방식으로 성실하게 내 길을 걸어왔다'라고 나 자신에게 따뜻한 위로 한마디 건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꿈꾼다.


물질적인 소유보다는 내면의 깊이를 채우고, 내가 사랑하는 일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으며,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부자'가 되는 그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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