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그가 내게 커피한잔과 100원자리 동전을 내밀었다.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때문이었는지.
손에 쥐고 있었던 100원짜리 동전들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코끝을 스치는 커피향과 함께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날 이후로 1인용게임만 하던 나는
어느새 2인용의 달인이 되어갔다.
파워스파이크, 1942, 보글보글....
점수가 올라갈수록.
우리의 시간도 길어져갔다.
전공필수와 전공선택으로 채워져야했던 시간들이
우리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나는 그저.
날카롭게 내려오는 그의 콧날선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조용히 퍼지는 굵고 낮은 목소리에
전공서적을 보며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씩 풀리곤 했다.
풋사랑이라는 말도 모르던 때였다.
그저 라이터 불빛에 환하게 보이던 그의 옆선과
훤칠했던 뒷모습이 좋았다.
우리는 날이 좋으면 주로 잔디밭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서관 앞, 본관 뒤 언덕, 햇살 드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의 자리가 되었다.
그때의 하늘은 유난히 높았고 잔디 냄새는 싱그러웠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흐릿하지만,
하늘을 같이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그의 일부를 나눠 가진 기분이 들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설렘은 아날로그적 감성이 있었다.
이어폰 한쪽씩 나눠 끼고 팔짱을 끼던 무게감,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를 찾아 달리던 숨 가쁨,
번호를 누르고 신호음을 기다리며 느꼈던 손끝의 떨림.
그때는 그에게 닿기 전에 치러야 할
많은 기다림의 순간들이 있었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지금과는 다르게.
그 기다림만큼 나의 마음도 깊어졌다.
잘생긴 사람 곁에는 늘 루머가 떠도는 법이다.
누구와 밥을 먹었다더라, 누가 그를 좋아한다더라.
나는 들었으나 애써 외면했다.
들었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믿어서가 아니라 확인하는 게 더 무서웠다.
그는 말이 적었지만, 내게는 진심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새벽에 술에 취해 공중전화박스에 매달려 있으면,
두말없이 달려와 좋아하는 바다에 데려다주던 듬직한 사람이었다.
그 듬직함을 나는 사랑이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말하지 않는 것이. 숨겨두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스무 살의 내 사랑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방식이었고.
세상도 사랑도 알면서 모른척 하던 시절이었다.
첫 이별은 그 균열을 파고들며 천천히 찾아왔다.
4학년이 되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며 진군가를 열창하던 선배들이
하나 둘씩 도서관에 나타났다.
노동운동을 위해 쇠파이프를 쥐었던 손들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도서관에서 연필을 잡았다.
어떤 선배는 변리사준비를 한다며
어려워만 보이는 민법책을 들고 씨름했고
어떤 선배는 방송국PD가 되겠다며
영어단어 2만2천개와 사투를 벌였다.
괜찮은 대학에 속해 있었던 우리에게도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바야흐로 방황의 시간이었다.
그는 S전자에 입사했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는 바빠졌고.
나는 어학연수의 길을 선택했다.
갈림길의 선택이 달랐던 우리는
그 선택을 따라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와의 마지막은 전철역플랫폼이었다.
헤어지기로 한 후.
우리는 침묵속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철이 들어오는 굉음이 들렸다.
순간.
그가 나를 안으며 입맞춤을 했다.
시간이 멈춘것 같았다.
뒤에서 전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가 남긴 여운을 차마 잡지 못했고.
뒤돌아섰다.
문이 닫혔다.
창밖으로 그가 점점 작아지다 기둥 뒤로 사라졌을 때,
내 스무 살의 첫사랑도 함께 사라졌다.
****
그를 다시 만난 건 몇 년 뒤였다.
[다음 화 예고]
첫사랑이 아름다운건 어딘가에 순수한 내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Ep 01-3 (1992,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