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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Jan 29. 2022

한 석봉 엄마의 기도

(수영장 이미지 사진-서울신문 캡처) 



-1,2학년 때는 슬슬 놀아가며 마음만 먹으면 해낸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3학년 되어 수능이 코앞으로 닥치자 불안과 초조, 긴장감에 순간순간 두려움이 느껴지고…, 가끔 악몽을 꾸기도 해. 수능당일 시험지를 받았는데 아는 문제가 없어 허둥대는…. 

-내 진즉 그럴 줄 알았다. 죽어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설렁설렁 놀아가며 무슨 대학을 가겠다고….

-엄마! 내가 그런 말 들으려고 한숨처럼 털어놓은 줄 알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엄마는 무슨 말만하면 ‘기,승,전,공부를 쌔빠지게 안한 것’으로 일축해 버려. 나도 하느라고 하거덩!

-….               

 지난해 하순 어느 주말, 고등학교3학년이던 둘째를 대치동학원가에 태우고 가며 일어난 일이다. 타고난 천성인지 매사 느긋한 아들에게 놀리듯 나무라듯 자주 하는 말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날을 세우며 공격해오는 터에 말문이 콱 막혔다. 학원 도착할 때까지의 이십여 분을 어색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뒷좌석에서 내리며 그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미안...

  집으로 오늘 길, 장승처럼 큰 키에 아직 정신이 덜 여문, 성인이 되기 위해 짊어진 가방의 무게가 그날따라 왜 그리도 무겁게 느껴지던지…, 뿌옇게 흐려지는 차 앞 유리를 어쩌지 못했다.



고3엄마들의 수능 100일기도, 108배 3,000배 등에 대해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교회나 절로 기도하러 다닌다는 사람을 직접 본적도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다니는 교회나 절에 같이 기도하러 가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붙박이처럼 무엇에 매였는지 어떤 기도의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엄마의 기도 빨(?)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심정은 있었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속담처럼 익숙하지 않은 일을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주위에서 수능대박을 염원하는 기도중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하다못해 들에 나가 김이라도 매야 할 것 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은근히 불안하고,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도착해 차를 세워두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십 수 년 째 다니던 수영장이 코로나 발발이후 문을 닫았다가 2년여 만에 개장을 해 얼마 전부터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인원도 방식도 대폭 축소한, 예전처럼 강사의 지도아래 하는 것이 아닌 극히 제한적인 ‘자유 수영’체제로 문을 연 것이다. 

 수영에는 기본적으로 4가지 영법,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이 있음을 모르는 사람 아마 없을 것이다. 실내수영장을 다니는 사람은 익히 알겠지만, 수영장에서의 정해진 운동시간은 1시간이다. 하지만 준비운동과 마지막 5~10분여의 느슨한 시간을 제외하면 40여분이 강도 높은 훈련시간이다. 수영장마다, 지도하는 강사들마다 조금씩 다르니 천편일률적이진 않을 것이다.    

       


 50여분을 내 마음대로 하다 보니 딱히 운동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몇 바퀴 돌다 숨이 차면 쉬고, 조금 힘들다 싶으면 발을 바닥에 내려놓기 일쑤였다. 스스로 강도를 높이려 해도 강제성을 띤 훈련과는 차이가 있었다. 

 운동의 강도를 좀 더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고안해 낸 것이 ‘개헤엄’이다.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두 손 두 발을 각각 엇박자로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체계적으로 수영을 배우지 않은 시골출신들이 잘 하는 ‘막헤엄’이다. 기본 네 가지 유형보다 훨씬 격렬하고 에너지 소모가 많아 선수출신이거나 젊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25m(우리 수영장 길이) 가는 사람이 드물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네다섯 번 정도 완주한 것이 전부, 그나마 내 또래여자들 사이에서는 화려한(?) 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 개헤엄!

 누가 들어도 웃기는 미신 따위에 아들의 미래를 맡길 만큼 무지한 인간이 아니거늘, 운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그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가망이 없다는데서 내 주술이 탄력을 받았는지 모른다. 한석봉이 공부하는동안 옆에서 떡을 썰었다는 그의 엄마의 교훈에 가장 근접한 것이 그나마 ‘이거!’란 생각이 들며 묘한 희열이 솟구치기도 했다. 

-기도라는 게 별거냐, 간절한 마음으로 어딘가에 몰두하면….



수시는 단 한곳도 쓰지 않았으니 세 번 완주하면 정시 세 곳 다 합격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시골출신이지만 젊은 시절에도 몇 번 하지 못한, 오십 후반을 꽉 채운 아줌마가 하겠다니, 자체가 모순이요 만용이 아닐 수 없었다. 코로나로 2년여 동안 운동을 멀리 한 것도 목표점에 터무니없는 괴리였다. 하지만, 1,2학년 때 베짱이처럼 여유를 부리다 3학년 들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들, 자식을위한 기도를 제대로 해보지 못한 엄마, 이것과 저것의 무게 추를 비교하니 얼추 균형이 맞아진다는 계산도 나의 샤머니즘적 의식에 기운을 더했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으로 유유히 물살을 가르는 무리 속, 두 팔, 두 다리를 엇박자로 뒤섞어가며 괴이한 몸짓으로 허우적대는 괴물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원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좀 뻔뻔스런 스타일이기도 한데다, 아들의 가장 중요한 인생 변곡점인 대학합격이 걸린 문제에 남의 눈치를 보고 말고 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수영장 관리, 감독자가 나를 불렀다. 오랜 세월 그 수영장에 붙박고 있었으므로 강사 대부분은 나를 알고 있었다.

-요즘 왜 그것(?)만 하세요? 

-ㅋㅋㅋㅋ…, 운동 강도를 좀 높이려구요.

-사람들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나봅니다…. 

  결국 최상급 레인에서 초급반으로 쫓겨났다. 죄명은 ‘타인의 진로방해죄’였다.          

초급반이지만 기도의식을 행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역으로, 내 진로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일이 수월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조건과 환경 탓에 수개월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채 수능일이 코앞으로 닥치고 말았다. 왜 여기다 운을 걸고 스스로를 옥죄었는지 후회가 일기 시작했다. 

-4차원 시대에 미신이라니, 이건 무효야!     

  나는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며 내안의 나와 타협했다. 

-자유형 논스톱 스무 바퀴!

  해오던 가락이 있어 그것은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개헤엄 완주를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 채 징크스처럼 나를 따라붙고 있었다.     

    


2021, 10

 파랗게 일렁이는 물을 보자 또다시 도전 욕구가 생겼다. 

-오늘 죽더라도 수영장에서 죽어보자!

 조심스레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를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반대 편 라인에서 오는 사람들이 물을 내뿜으며 나를 덮치기도,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나가며 불평하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나의 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서서히 힘이 빠지는 지점은 15m 부근이다. 1m씩 색깔별로 표시된 레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1m만 더, 50cm만 더, 한 발짝만 더, 더, 더…, 젖 먹던 힘까지를 토해 내며 전진인지 후퇴인지 모를 버티기를 하고 있었다. 

 순간 아들 생각이 났다. 

-그가 지금 이 지점에 있을까? 골라인을 앞에 두고 체력의 한계에 부딪힌….

 그를 생각하니 발광이라도 할 것 같은 의욕과 함께 초인적인 힘이 솟아 몇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나이와 체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는지 골 지점을 바로 앞에 두고 기운이 다해버렸다. 발을 땅에 닿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치며 의식 무의식의 경계를 오가는 동안, 내 몸이 중심을 잃고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휘이익! 쿵쾅, 꽈당! 

 어딘가에 강하게 부딪치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뒤에 오늘 사람에게 부딪힌 것이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수영한지 얼마 안 돼…, 괜찮으세요? 

-….

-네에, 미안해서 어째요, 머리 괜찮으세요? 

          


수영 중 사람과의 충돌이나 다른 어딘가에 부딪치며 느끼는 통증은 평상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물속에서 몸이 불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통증의 강도가 센 편이다. 

 머리와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무언가에 놀라 몸을 곧추 세우곤, 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쓸어내렸다. 틀림없는, 분명하게 내가 골 지점에 터치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제가 여기, 벽면에 부딪혔나요? 

-많이 아프세요? 병원….

 나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물속에서 뒤엉킨 채 둘이 곤두박질하고 난 뒤,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는 젊은 아줌마에게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제가 여기, 부딪친 것을 확실히 보셨나요? 

-네에?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머리를 골 지점에 부딪쳤으니, 완주한 거라 우긴 것이, 수능 전까지 내가 이룬 최고의 전적이었다. 



 한석봉 엄마의, 지하에서 나를 엄하게 꾸짖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어디 비교할 데가 없어 나의 성스러운 기도, 그 숭고하고 거룩한 ‘떡 썰기’를 듣기조차 민망한 개 뭐시기에 비유하다니, 그러고도 감히 네 아들이 대학에 붙기를 바랐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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