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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Feb 25. 2022

인간 사주팔자 길들이기 나름

    


 연락이 와서 가게 되었다. 막내인 둘째아들 대학진학 여부, 남편 사업은 스스로 몇 백 년 기업 운운하는데 말대로 될지 등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 세간에 이름난 상담소(철학관)에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미신을 믿지 않는다 하면서도 그런 곳을 예약해 둔 것은, 그 날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 집을 알게 된 것은 오래전, 남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기업 연구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기업체에 몸담고 있으면서 한 시도 그 자리를 만족해 한 적이 없어 시시때때로 대학교수 자리를 엿보고 있던 중이었다. 논문 수준이나 편수 등으로 보면 벌써 되고도 남았지만, 대학교수라는 자리가 실력만으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심하며 좌절하며, 절망감에 휩싸여 있던 때이기도 했다.

그놈의 대학교수가 뭐기에 저토록 열정을 불사르는데도 안 되는 것인지, 주말, 휴일도 없이 죽자 사자 논문을 쓰고 또 쓰고 했지만 매번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SCI 에 실린 것만 해도 수십 편에 이르는데, 대학교수의 길은 요원하기만 했다.   

   


 어느 주말, 소파에 모로 누워 정신 홀린 사람마냥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거실 컴퓨터에 앉아 무언가를 꺼적이고 있던 나는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왜그래?

-아냐.

 내 물음에 건성으로 답하며 다시 창밖 어딘가에 시선을 꽂은 채, 얼빠진 사람마냥 미동도 없이 그렇게 얼음이 돼 있었다.

-왜그러냐구우?

-아니, 아냐.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그의 눈빛은 이미 정신을 어디 먼 데로 보낸 사람마냥, 헛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날 이후 그는 자주 그런 모습을 보였다. 회사 퇴근하기 바쁘게 혼자 방 안에 들어가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그려대는가하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기도..., 다시 무언가에 몰두하기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더럭 겁이 났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의 뇌가 과부하를 이기지 못해 정신이 아프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 단계?

 부랴부랴 친구와 지인을 동원, 유명하다는 점집이나 철학관을 물색했다.   

   


 인간의 앞날을 훤히 꿰뚫어 본다는 말에 원색의 벽화와 불상들이 가득하고, 그것들로 방의 반을 내어준 나머지 공간에 앉은뱅이책상 하나, 코가 막힐 듯이 진한 향내를 풍기는, 그 앞에 독특한 분장을 한 역술가가 앉아있는 그런 풍경을 떠올렸었다.

 평범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자 사무실처럼 꾸며진 공간에 책상 하나 놓인 자리에 옆집 아줌마 같이 평범한 인상의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나를 맞았다.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한다. 미리 사진을 준비해 가야 한다는 말에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없이 찬찬히 사진을 보던 사람이 물었다,

-뭐가 궁금해서?

 반말 비슷한 말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해도 입을 본드로 붙인 듯 다물고 있으리라 다짐했다. 인당 삼만 원씩, 십이만 원을 투자하고 왔다. 이래저래 경제적으로 어둡던 시기, 12만 원은 내게 큰돈이었다.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지퍼로 닫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궁금해서?

 한참이 지나도록 입을 열지 않고 자신의 반응만 살피자 내가 준 가족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무엇이 궁금한지 말해 주어야 답을 줄 수 있어!

 그녀가 되려 나에게 질문하는 형국이다.

-낸 돈이 얼만데 내가 왜 당신에게 힌트를 줘야하죠? 뭐든 술술 알아맞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속으로 뇌까리며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으로, 그녀가 우리 가족 앞날을 훤히 내다보고 알려주기만을 기다렸다.

-자식 복도 있고 남편 복도 있는데..., 일단 네 사람 분 돈을 냈으니 각각에 대한 궁금한 점 물어봐.


 갑갑한 쪽은 나였다. 침묵을 견디다 못해 입에 채운 지퍼를 열고 말았다.

-남편이 대학교수가 되고 싶어해서요, 사주팔자에 나와 있나요?

-왜 대학교수가 되려고 하지? 사업 운이 있는데....

-대학교수 될 운은 평생 없는 건가요?

-없어!     


 그 집 문을 나선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현기증이 일었다. 남편이 얼마 전 모 대학교 지원을 했는데 서류심사에 합격하고(서류심사에선 어느 한곳도 떨어진 적이 없음)총장 면담을 앞두고 있던 터였다. 서류 접수하러 갔는데 기계공학 학과장이 자기를 맞더란다. 카이스트 두해 선배라면서 자신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으며 기대해도 좋다는 식의 덕담을 주더라고.

-사람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남편의 기대 섞인 말은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총장 면담까지 올라간 대학만 해도 무수했고 모두 쓴 고배를 마셨기에, 오늘날에 이르렀던 것이다. 저러다 또 떨어지면…, 본인은 물론 나도 정신의 한계를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말이 좋아 사업이지, 평생 공부와 연구만 해 오던 사람에게 사업이라니….

 두렵고 암담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그녀가 말한대로 결국 교수로 있지 않았다. 아니 천신만고 끝에 서울 시내 4년제 대학 전임교수 자리를 얻었으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평온한 일상에 문득 그 집이 생각난 건 둘째아들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 운이 있어‘라던 그녀의 말이 나를 지배하며, 마치 우리 회사를 그녀가 일궈주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를 마음속에서 우상화하기 시작했다. 예약일은 무려 7개월 뒤로 잡혔었다.     


 그동안 그 집은 이사를 해 더 넓고 좋은 곳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있었다.

-얘는 대학 같은 거 신경 쓰지 마. 아무거나 해도 무조건 잘 살아.

-떨어진다는 말씀인가요?

-언젠가는 붙겠지. 요즘 대학 안가는 학생이 어디 있어? 학생 수가 줄어들고 대학은 그대론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지….

-그래도 어느 대학 넣으면 붙겠는지, 사주에 나타나는 거 없나요?

-허허, 뭘 그런 걸 자꾸 신경 써? 그냥 얘 하는 대로 두면 돼!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을 듣고 나오는 발걸음이 씁쓸했다.

-내가 왜 이런 데를 다니고 있지?

     


 그냥 순리대로 흘렀을 뿐인 일들을 그 사람 입을 통해 일어난 것처럼 착각했던 이유는까?


그녀가 우리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그녀가 우리 삶의 궤적을 꿰뚫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것처럼 왜곡되게 기억하고 있지?


내 말을 낚아 채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답을 제시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입을 닫으려고 했지만 입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길 분위기, 어쩌면 십여 년 전에도 그랬을지 몰랐다. 내가 술술 다 불었는지.

 


 어느 글에서 읽은 내용이다.

“실험 중에 기억력의 오류를 만들어 내는 실험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한테 접근해서 없는 유치원을 거론하며 그때 누구와 친했었고 뭐했었다 하며 유도 질문을 하면 대부분 넘어온다, 없는 기억을 만들어내며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유아기 때의 기억을 없던 것도 만들어내며 상상한다”     


 사람의 입을 통해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단 몇 가지를 맞히면 마치 모든 것을 다 알아맞힌 냥, 기억이 스스로 세뇌를 시킨 건 아닐까?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린 일도 마치 적중한 것처럼 왜곡 기억되는, 일종의 기억 착란은 아닐는지.     


 우리 엄마가 입버릇처럼 되 뇌이던 말이 귓전에 울린다.

-인간 사주팔자는 길들이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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