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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수화 Feb 04. 2023

<한 명의 죽음 네 명의 죽음>
-도종환(시인)-

사진:루돌프 칼 피로호(출처 네이버 지식인)


*「한국산문」 2023년 2월호에 게재된 도종환 시인의 ‘권두에세이’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남의 작품을 필사해보기는 처음이지 싶습니다. 오늘날 문인들이 처한 현실을 피부적인 촉감으로 느끼게 해준 글이라 옮겨 적었습니다. 절대 정치적 해석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영남에서 태어나 자랐고,  남편은 호남 출신입니다. 이런 지역적 특성 때문에 집안에서는 엄격하리만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부간 정치적 견해가 다를 때도 있어, 비록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당선자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저의 집안만의 전통을 고수하며 가정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루돌프 칼 피르호(Rudolf C Virchow)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1848년 독일 슐레지엔 지방에 발진티푸스가 유행했습니다. 프로이센 정부는 스물일곱 살의 젊은 의사 피르호를 그곳에 파견합니다.

그는 거기서 처참한 광경을 봅니다. 수많은 주민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위생시설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습니다. 전염병이 돌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처참한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피로호는 300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정부에 제출합니다. 


 “도로를 개선하고, 고아원을 설치하고, 구호기금을 만들고, 세금을 면제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보고서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보고서를 채택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아수시설을 개선하는 일이 환자 한 사람을 치료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뒤 피르호는 혁명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바라던 혁명은 실패하고 맙니다. 10년의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연구에 매진했고 인류학자로 베를린에 복귀했습니다. 그러다 정지에 참여합니다.   

  


그는 전염병은 의학의 과제이지만 전염병에 대응해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는 사회의 과제라고 믿었습니다. 의학은 자연과학의 꽃이지만 동시에 사회과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의학은 정치적 사회적 삶에 개입하여 건강하게 살 수 없게 하는 걸림돌을 뽑아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는 진보정당을 창당했고 베를린 시의원과 독일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년의사였던 시절에 보고서에 썼던 것들을 하나씩 정치적으로 실현해 나갔습니다. 비스마르크가 해군 예산 증액을 요청했는데 그것을 거부합니다. 국방예산을 줄여 공중보건과 위생예산으로 집행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충돌하였습니다. 그러자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결투를 신청합니다. 그러자 “나는 의사요, 메스로 결투를 하게 해 준다면 도전을 받아주겠소.” 그렇게 해서 위기를 벗어난 적도 있습니다.


 그는 국가가 보편교육을 추구하듯 보편건강도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돈을 쓰는 일에 예산을 편성하려고 애썼고, 그게 가장 많은 이익이 남는 일에 돈을 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의학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과학이며 정치는 대규모의 의학이라 믿었습니다. 사회과학으로서의 의학이 이론적인 해결책을 찾아야한다면, 정치는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공 보건제도를 만들고, 식품위생법을 개선하고, 상하수도를 고치는 거대한 사회개혁에 나섰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위한 의사의 처방이라고 믿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독일 국민의 건강은 좁은 의미의 의학이 아니라, 이러한 거대한 의학을 통해서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는 가난한 사람의 대변인이라 생각해서 그는 한평생 사치하지 않았습니다. 귀족 칭호 받는 걸 거부하였습니다. 피르호로 인해 독일은 의학강국이 되었습니다. 의사가 무슨 정치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피르호는 현실에서 해결책을 찾는 대구모의 의학이 곧 정치라고 대답합니다.   

  


시인이 무슨 정치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루돌프 칼 피르호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정치와 문학의 길은 다릅니다. 문학으로 훌륭하게 사는 문인들의 인생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문학은 문학의 길이 있습니다. 문학을 어떻게 잘할 것인가는 문인의 과제이지만, 문인과 예술인이 어떻게 굶지 않고 창작활동을 하면서 기초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 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은 우리 사회를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일이며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일 것입니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출연료와 원고료를 가지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알려 하지 않는 채 박수만 친다고 문화국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제도를 고민했는데 마침내 그걸 실현가능하게 했습니다. 지난ㄴ해부터 10만 명이 넘는 예술인들이 공연이 없고 촬영이 없고 무대에 서지 않을 때 실업급여 형태로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에 이어 우리나라 예술인들도 사회적 안전망 속에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원로 예술인들은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청년 예술인들은 예술의 길을 계속 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으며, 지역을 지키는 예술인들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예술을 위해 예산을 쓰는 일은 투자입니다. 국가를 위한 투자이고, 국민을 위한 투자입니다. 있으면 주고 없으면 못 주는 보조금이 아닙니다. 문화가 경제를 추동한다는 걸 기재부 관료들도 압니다. 음반과 영화와 드라마가 100달러어치 팔리면 화장품이나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제조업 상품이 230달러어치 팔린다는 걸 경제 분야 연구원들도 압니다. 그러나 투자에는 인색합니다. 그들의 양가적인 사고를 질타하고 문화와 예술에 예산을 제대로 쓰게 하는 일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제가 역할을 마치고 물러나면 다른 문인이나 예술인 중에 문화 예술을 위한 정치적 역할을 해줄 사람을 길러야 합니다.      


 문인이면서 주어진 정치적 역할을 잘한 문인들이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에 혁명에 동참했고 망명도 했으며 돌아와 상원의원을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레미제라블」같은 위대한 작품을 썼습니다. 괴테도 장관직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했고 만년에 「파우스트」 같은 대작을 집필했습니다. 파블라 네루다도 칠레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지만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훌륭한 시를 썼습니다. 체코 대통령 바즐라프 하벨은 극작가였습니다. 벨벳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시민운동가였고 대통령을 두 번이나 역임하였습니다. 그는 ‘영혼이 있는 정치‘를 하려고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훌륭한 역할을 해냈고 문학으로도 성공한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루돌프 칼 피르호가 죽었을 때 독일 언론은 위대한 의사, 위대한 정치인, 위대한 인류학자,

위대한 위생학자, 위대한 인물 네 명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도종환: 정지용문학상, 백석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 다수 수상

시집 : <접시꽃 당신>, <부드러운 직선>,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사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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