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의 이런생각 저런생각

고희 古稀는 옛말, 이제는 多稀다희 혹은 不稀불희의 시대

by 청파 강성호

“고희연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칠순잔치 현수막 위 문구를 읽다 말고 나는 슬며시 웃고 말았다.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고희(古稀)’라니,

아직도 이 말을 쓴단 말인가?


예부터 일흔은 드물었다지만, 요즘은 너무 많아서 오히려 팔순이 고희 같지 않던가.

사실 ‘고희’라는 말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에서 유래했다.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 일흔까지 사는 건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이다.

수명이 짧던 시절, 칠순은 신이 허락한 축복이자 기적 같은 나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고희’는 존경과 찬사를 담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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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 전이라면 이렇게 했을까요?]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백세 시대를 넘어 이제는 ‘칠십은 청춘’이란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우리 주변엔 일흔 넘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등산로는 활기찬 ‘불희 세대’들로 가득하고, 유튜브엔 70대 유튜버가 요리하고, 여행을 다니고, 그림을 그린다.


이쯤 되면 '고희'는 언어의 타이밍을 놓친 단어다.

그래서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이젠 ‘고희’ 말고 ‘불희(不稀)’라고 해야죠.

더 이상 드문 게 아니잖아요.

아니, ‘다희(多稀)’가 더 정확하겠네요.

칠순은 드문 게 아니라 도리어 많은 시대, 다 많을 다(多), 드물 희(稀).

참 웃기죠, 많고도 드물다는 말이 어쩌면 이 시대 노년의 복잡한 위치를 잘 말해주는 듯해요.”


처음엔 웃자고 던진 말이었지만, 곱씹을수록 의미가 깊다.

‘불희’는 시대의 현실이고, ‘다희’는 그 현실에 붙인 재치 있는 별명 같다.

장수는 더 이상 우연한 행운이 아니다.

이젠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70세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고, 때로는 출발선이다.


우리는 ‘다희’의 시대, 동시에 ‘불희’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삶을 어떻게 말하고, 축하하고, 준비해야 할까?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어떻게 깊이 있게 나이 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다.

이제 ‘고희연’은 생존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설계하고 선언하는 '인생 2막 출정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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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불희’와 ‘다희’란 말은 우리에게 경쾌한 시대의 언어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애철학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고희가 경외의 나이였다면, 불희는 현실의 나이이고,

다희는 그 현실을 즐기는 방식이 아닐까?


이 시대의 칠순은 말한다.

“나 이제 겨우 시작이다.”

그 말에 담긴 에너지야말로 진짜 축하받을 일이다.

그러니 나는, ‘불희연’이든 ‘다희연’이든 좋다.


중요한 건, 일흔 이후를 당당히 살아가겠다는 그 선언이다.


비오던 5월 1일

낮시간에 지인과 지하철을 타고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참 많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교차하네요.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 지하철 택배를 준비하는 풍경도 생각을 아리게 하였고요.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독자 여러분도 좋은 의견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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