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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n Dec 12. 2015

#독백

말 좀 하지 그랬어

 언젠가 써니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던 때에 영화를 보고 추억에 젖어 약간 취한 상태로 널 불러냈었지.

 그렇게 편의점 앞에서 우리가 캔맥주 한 잔씩을 하며 학창시절 얘기를 나누었던 게 엊그제 같다. 중학교 때 그렇게 붙어 다니던 우리 세명이 왜 그렇게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는지 내가 울먹거리며 한풀이를 했지. 삼수를 하고, 다른 대학교에 갔지만 그래도 자주 좀 보자고 말야..


 작년에 네가 변리사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흠칫 놀랐어. 희귀암이긴 하지만 초기에 잘 잡았구나 하고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너도 항암치료 잘 받고 있다고 했고 말이야. 얼마 전에는 우리 서울 근교로 가서 고기나 궈 먹고 오자고 했잔아. 3개월 전이었나? 뭐 가끔 네가 동네 산책을 하자고 하기도 했었고 말야.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농담 따먹기도 했었는데..


 오늘 아침에 네가 갑자기 위독해졌다는 삼촌 분의 문자를 받고, '갑자기 위독해지다니 무슨  일이지?'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친구와 함께 병원에 도착해서 병실을 찾는데 네 병실이 중환자 병동이라는 표지판을 보니 숨 막히더라.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어. '갑자기 이렇게 심각해진 이유가 뭘까?' 하고 말야. 그래도 지금 상황을 잘 견뎌내면 대체의학 쪽으로도 진행해 보자고 이야기를 해줄 생각을 하면서 병실로 향했지.


 너의 어머님을 뵙는데 눈물이 맺히신게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거 느꼈다. 어머님을 따라 병실로 들어가니 네가 없더라... 근데 너라고 하더라... 뼈만 앙상하게 남고.. 안구는 노랗고... 눈알이 뒤집혀 있고.. 입은 다물지 못하고.. 배는 불룩 튀어나와있고 말야..


 갑자기 이렇게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 항암치료 잘 받고 호전되고 있다고 네가 말했고, 그 말을 나는 너무 순진하게 믿었나 보다. 겨우겨우 눈만 마주쳐서 날 알아보고, 겨우겨우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된 거냐...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냐...


 갑자기 너의 누나 한분이 너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런 말을 하시더라. "XX야, 죽는 걸 두려워 하지마. 괜찮아. 괜찮아. 우리 가족들이 끝까지 함께 할 거니깐,  두려워하지 마" 순간 상황을 파악해 버렸다. 너무 엄숙한 상황에 너의 상태가 어떤지 묻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 네 상황을 알아차렸다. 눈물이 났다. 도대체 그간 어떻게 되었던 거냐...


  매형이라는 분께 상황을 전해 들었다. 넌 이미 작년에 암을  선고받을 때부터 시한부라는 거 알았다고 하더구나. 근데 왜 죽을 때까지 우리한테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던 거냐.. 얼마 전에 서울 근교로 고기 먹으러 갔다 오자고 한 건 마지막으로 우리 얼굴을 보려고 했던 거였나? 하긴.. 네가 먼저 어디 놀러 가자고 할 애가 아니었으니.. 너의 계획 중에 하나였겠다 싶다..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냐.. 그러면 더 자주 만나고 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냐.. 그냥 내 욕심인 거냐... 너 혼자 몰래 끌어안고 몰래 없어지고 싶었던 거냐...

 

  그렇게 평생 공부만 하다가 가버리는 너를 보니 너무 쓰라리다. 남은 시간 동안 만이라도 같이 뭐라도 하고 싶었던 건 없었는지 궁금하다. 네가 대학교 사람들에겐 전혀 알리지 않아서 네가 암에 걸렸다는 것도 한 명도 모르고 있더라. 내가 현재 너의 상태를 전하는데 말을 잇지 못하겠더라. 전화하는데 자꾸 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떠올라서 말야.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나쁜 놈아.. 말 좀 하지 그랬냐.. 왜 너 죽는 것도 아무도 모르는 거냐...


 몇 시간 후면 너는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겠지.. 근데 그 고장 난 몸뚱이 안에서 말짱한 정신으로 많이 외로울 너를 생각하니 너무 아프다.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나도 언젠간 죽을 거고, 나중에 다시 만나겠지, 살아있는 동안에 내가 널 기억하고 있으니 내 기억 속에서 넌 나와 함께 있다고 믿는다. 가슴이 정말 아린데, 네가 외롭지 않게 떠났으면 좋겠다. 너무 아프지 않게 떠났으면 좋겠다. 몰랐어서 미안하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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