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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n Jul 15. 2018

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 했다.

착각은 자유


아내와 결혼하는 데 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한 6가지 운명이 있었다.


1. 연습하러 소개팅 나온 여자

아내는 소개팅 날에 10분을 지각했고, 노메이크업에 머리도 감고 오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는 심지어 이런 말도 했다. "저는 결혼 생각은 하고 있지 않고요. 연애를 한 번도 안해봐서 그냥 경험 삼아 소개팅 나온 거예요" 그래서 내심 생각했다. '뭐야 이 여자, 소개팅 왜 나온 거야. 뭐, 그래 이미 초장부터 망한 소개팅이네. 27살이면 베이비니깐 인생 선배로서 좋은 얘기나 해주고 가야겠다' 그렇게 나는 소개팅 마음은 접고 인생과 사랑에 대한 훈계(?)를 늘어 놓았다. 인생 선배의 조언을 받아랏!


아내는 실제로 식당에서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나는 '이 여자, 소개팅에 왜 나온거야?'라고 생각했고, 아내는 '뭐 이런 오만한 남자가 다있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첫 인상이 이미 게임오버로 시작됐다. 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 했다.


여기서 질문, 소개팅 나갔는데 상대방이 "나는 결혼 생각이 아직 없고, 이성 만나는 걸 경험하러 나온거다"라고 말한다면 오해한다? 안 한다?


2. 첫 만남에 선물 주는 여자

쌀국수로 점심을 먹고, 예의상 커피까지는 마셔야 할 것 같아서 할리스 커피로 갔다. 점심은 내가 사서인지 자기가 커피 사겠다며 먼저 앉아있으라고 하더니 커피와 포장 케이크를 들고 왔다. 이게 뭐냐고 물었다. "아까 식당에서 1월생이고 생일이 얼마 전이라고 하셔서 생일 선물로 드리려고요" 황당했다. 내 생일은 1월 2일이었고, 우리가 만난 날은 1월 31일이었다. 순간 나는 이 여자가 나한테 관심이 있어 선물을 주는 건가 생각했다. 오빠라고 또 호감이 생겼나 보군!


아내는 원래 공짜로 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의미로 커피를 샀고, 생일은 최근인 줄 알고 선물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는 원래 그런 선물을 누구에게나 잘 주었다고 한다.  선물을 주지 않았다면 나도 착각하지 않았을 거다. 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 했다.


여기서 질문, 처음 만난 날 상대방이 선물을 준다면 착각한다? 안 한다?


3. 헤어지고 선톡하는 여자

그렇게 소개팅을 마치고 헤어졌다. 버스에서 생각했다. 뭐 케이크 선물까지 받긴 했지만 '내가 33살인데 결혼 생각도 없고, 남자 경험 쌓으려고 나온 사람을 굳이 만날 필욘 없지. 그리고 그런 말하는 거면 나한테 관심도 없는 거고' 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프터 신청 없이 그냥 오늘 만남에서 빠이 하는 걸로 결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톡이 왔다. "아까 말씀하신 헤밍웨이 관련된 영화 제목이 뭐라고 하셨죠?" 순간, '이 여자 적극적이다'라고 생각했다. 직접적인 애프터는 아니었지만, 헤어지고나서 굳이 대화를 이어나갈 주제를 던지는 건 호감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했다. '음.. 이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나 본데.. 그럼 뭐 한 번만 더 만나볼까?' 그렇게 애프터를 하게 되었다.


아내는 자기가 좋아했던 헤밍웨이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처음 보는 오만한 남자가 자기가 모르는 헤밍웨이 영화를 이야기하니 단순히 궁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를 찾아보려고 제목을 물어본 것뿐이었단다. 절대 이성적인 관심은 없었고, 이 남자는 그냥 이런 질문을 해도 별다른 오해 없이 답변해 줄 남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밥 먹을 때 내가 헤밍웨이와 갤혼 영화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연락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 밥 먹을 때 헤밍웨이와 갤혼이라는 영화가 있다고 말 안했다면 소개팅 끝나고 서로 볼 일이 없었다. 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 했다. 헤밍웨이와 갤혼이 큰 역할을 했다.


여기서 질문, 소개팅 끝나고 먼저 연락이 오면 착각한다? 안 한다?


4. 1시간 30분 넘는 거리를 단 번에 오는 여자

애프터는 우리 회사로 오라고 했다. 아내의 동네에서 우리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쉽게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로 올 수 있냐고 하니 흔쾌히 수락하는거다. 나는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먼 곳을 그냥 오겠다니.. 나한테 푹 빠진 건가...?'


아내는 우리 회사에 한 번 와보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히 회사가 정말 궁금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아내가 우리 회사에 관심이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 했다.


여기서 질문, 상대방에게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장소로 오라고 했을 때 선뜻 온다면 착각한다? 안 한다?


5. 퍼펙트 타이밍 연휴

우리가 소개팅을 처음 하고나서 연이어 1주일정도 연휴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만났다. 연휴가 없었다면 서로 관심없던 두 남녀가 이야기할 기회는 절대 없었을거다. 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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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쩌다보니 결혼

3번째 만났을 때 내가 사귀자는 말을 해서 사귀게 되었고, 5번째 만났을 때 대학로 우동집에서 조심스레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네가 결혼 생각은 전혀 없고, 연애를 한 번도 안해봐서 경험해보려고 소개팅 나온 거라고 했었잖아. 근데 나도 결혼할 사람을 만나야 한다라는 주의는 아닌데, 나도 나이가 있고해서 좀 진지하게 만나는 관계였으면 해" 그러자 아내는 "아니 사람 만나는데 어떻게 대충 만나? 나도 진지하게 만나는 거야"라고 답변했다.


아내는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만나는 남자가 결혼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만나자고 했다고 전했다. 장모님, 장인어른은 딸이 난생 처음 남자를 사귀는 것도 놀라운데, 그런 말을 하자 그 남자 집에 한 번 데리고 오라고 하셨고, 그렇게 나는 처가집에 얼렁뚱땅 인사드리게 되었다. 인사를 드리니 자연스럽게 아내도 우리집에 인사드리는 자리가 생겼고,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나니, 상견례를 잡자는 얘기가 나왔다. 상견례를 하고나니 결혼식 날짜를 잡자는 얘기가 나왔고, 우리는 그렇게 만난지 1개월만에 양가 인사를, 3개월만에 상견례를, 5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눈을 떠보니 난 유부남이 되어 있었다.


수 많은 착각과 오해가 많았지만, 그런 것들이 있어서 아내와 결혼까지 왔다. 인생은 선택이다. 사소한 말과 행동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떻게 결혼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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