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먹은대로, 생각한 대로 갈 수 있다면...
휠체어를 탄 리포터와 함께 가다보면 인도와 도로를 번갈아 다닐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 겪게 된다. 거리를 걷다보면 휠체어 하나 지나갈만큼의 여유만 남겨두고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정도의 여유도 없어서 한참을 기다리거나 돌아가야할 상황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라도 지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인도로 아예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혼자 다닐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 유아차를 가지고 다닐 때나 휠체어를 탄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경험한 불편함들. 어쩌면 내가 평생 느끼지 못했을 그 불편함이 그들에겐 일상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휠체어를 타고 가던 엄마와 아들이 자동차와 부딪힌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한동안 그 분들이 왜 인도가 아닌 도로에서 휠체어를 타고 갔는지에 대한 의견으로 떠들썩했다. 사람이 다니라고 둔 인도를 이용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의견들과 한국의 인도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 너무 힘들다는 의견이 부딪혔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 역시 모아스토리에서 장애인과 함께 이지트립(easytrip.kr)촬영을 하기 전에는 휠체어로 다니는게 그렇게 힘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다니기 편하니까 휠체어로도 다니기 편하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휠체어 이용자들과 함께 다녀보니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우리 주변의 이동환경은 휠체어로 다니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 휠체어가 도로로 내려갈 수 밖에 없는 이유들도 너무 많았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큰 이유 중 하나는 보행을 막고 있는 장애물들이다. 점포의 광고판, 불법주차차량, 인도의 반을 차지하는 가로수 등. 휠체어가 가야 하는 길을 막고 있는 것들은 비장애인들의 일상에는 거슬리지 않는 것들이다.
위 사진을 보면 사람은 여유롭게, 휠체어는 조심스럽게 지나갈 만큼의 여유만 남겨두고 차량이 주차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이 정도의 여유도 없어서 한참을 기다리거나 돌아가야 할 상황도 생긴다. 이렇게라도 지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인도로 아예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인도와 차도는 대개 경계석으로 구분되어 있다. 또한 인도의 양쪽 끝, 혹은 중간 즈음에 경계석의 높이를 낮추어 휠체어나 유아차, 노약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경계석 높이가 도로와 평평하게 잘 맞춰진 곳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 곳에서는 휠체어가 인도로 올라가기 힘들어서 차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그런 길이 경사가 급하기까지 하다면, 휠체어가 넘어질 확률은 훨씬 커진다. 때문에 그런 길에서는 차도로 가는 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차도를 이용해야만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도로 뿐 아니라, 도심의 핫 플레이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의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인 연남동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도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곳 중 하나다. 경의선 철길을 산책로로 만들고 새롭게 단장하였더니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휠체어 이용자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예쁘게 단장한 산책로 양쪽에는 차도가 있고, 차도 가장자리에는 다양한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비장애인들은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지만, 휠체어 이용자들에게는? 그들에게는 다르다. 산책로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찾아야 하는데 여기저기 막혀 있어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길일 뿐이다.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많은 곳들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장애물이나 불법주차 차량 없는 진입로를 찾는 것이 더 빠른 일이 되어버렸다.
보통은 왼쪽 사진처럼 낮게 차도와 인도를 이어주는 진입로를 통해 인도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오른쪽 사진처럼 차량이나 무거운 화분이 길을 막고 있으면, 결국 인도로 올라가지 못하고 차도를 이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 아마 안타까운 사고를 겪었던 부산의 모자도 이런 이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도를 이용하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가족, 친구와 함께 산책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나 식당을 가는 것이 비장애인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지만 휠체어 이용자들에게는 엄청난 모험이다. 그것은 도로나 건물을 설계하고 조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비장애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비장애인들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간 경험이 없다. 어릴 때부터 장애인과 분리돼 교육받아왔으니 비장애인에게 당연한 환경이 장애인에게는 위험 부담을 걸어야 하는 환경인 것도 모른다. 따라서 도시를 새롭게 조성할 때 이동약자의 관점에서 설계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이동약자의 존재를 계속해서 인지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더 넓은 범위의 일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이동약자들이 조금 더 넓게 지나갈 수 있도록 가벼운 배려를 하는 일들밖에 없다. 내 차를 주차할 때나 광고판을 놓을 때 이것이 누군가의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고 산다면 어떨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불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어떨까. 우리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갈수록 환경이 바뀌어갈 여지 역시 더 많아질 것이다.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들은 어디인가? 이지트립은 휠체어 이용자들이 방문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아내 안내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동 약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곳들을 굳이 찾아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훨씬 더 달갑다. 누구나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꿈꿔보면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