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 아빠의 파이팅 넘치는 육아일기
첫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새 16년이 지났다. 친구같은 아빠가 되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은 잊혀지고 어느새 난 잔소리 짱짱! 그야말로 피하고 싶은 아빠가 되어 있었다. 주변에서는 아들 셋을 키우는게 쉽지 않겠다고 하지만 아들 셋 아빠의 아들이 되는 건 더 어려운 것 같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은 대부분 정리가 안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정리를 하고 뒤돌아서면 그 자리에는 다른 장난감이나 책, 물건, 옷들이 널려 있다. 그건 부모의 잘못도 아이의 잘못도 아니지만(아이들은 원래 그렇고 가족이 함께 사는 공간은 정리가 안되는게 정상이라는 걸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난 그게 우리 가족의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각자가 자신의 몫을 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텐데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난 10년을 넘게 정리! 정리! 책임! 책임! 을 외쳤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땠을까?
얼마전까지도 난 여전히 정리! 정리! 를 외쳤고 아이들은 아빠의 잔소리를 피해 다녔다.
첫째가 자신의 방을 가지고 둘째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난 그 방의 모습을 문득 문득 상상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방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책상 위의 휴지와 다 먹은 콜라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걸까? 를 생각하면서 난 집에서도 관리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주변도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잔소리로 표현하는 나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여기까지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답답해진다. 그만큼 아이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잔소리와 훈계를 들으면서 살아온 것 같다.
아이들은 나에게 말한다. 아빠가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큰소리로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뭔가 하고 있을 때 나와서 밥 먹으라고 억지로 불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그럴 때마다 다음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 역시 잘 지켜지지 않았다.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의 영역을 마음대로 침범하고 마음대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이 글의 첫 문장이 친구같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인데 이런 친구라면 나같아도 멀리할 것 같다. 난 아빠로서도 친구로서도 참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요즘 난 내 자신을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 부담스러운 아빠가 아닌 여유로운 아빠가 되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리가 안 된 방들은 그냥 내가 치운다. 아이들 방이 어떻든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아이들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지 않는다. 밥 먹어라! 청소해라! 씻어라!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영역은 불가침! 난 그들의 영역을 탐내거나 염탐하거나 들어가보려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불과 몇 달 사이에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씻고 먹고 자신을 돌아보고 거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영역을 키워갔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빠, 엄마의 영역과 만나 교집합을 만들어냈다. 왜 이걸 몰랐을까? 누가 가르쳐 줬다면 알았을까?
이제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난 조금씩 깨달아간다. 좋은 관계를 만들려면 각자가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아이들과 밀착되기 보다는 아이들의 영역을 존중하고 확보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어제 첫째가 나에게 얘기했다. 자신의 방의 구조를 바꾸겠다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예전의 나라면 어떻게 배치를 하면 좋을지 내 의견을 얘기했겠지만 지금 내가 할 말은 이 정도가 아닐까?
"와~ 기대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