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무장애여행학
산과 바다 중에서 어디가 더 좋아요? 라는 질문을 자주 하거나 듣는데 멀리 있는 바다보다는 가까운데서 찾을 수 있는 산이 조금은 접근성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산을 찾는 사람들이 참 많다.
3일의 연휴를 맞으면서 서울의 인왕산 둘레길을 찾아갔다. 청와대 뒷산이라 예전에는 통제구역이 여러 곳 있었는데 요즘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막는 통제도 사라진 것 같다. 그러면서 인왕산 곳곳에 있던 경찰 초소들도사라지거나 분위기 있는 카페로 탈바꿈을 했다. 그 중에 '인왕산 초소책방'이란 이름으로 아주 많이 유명해진 카페를 가족과 함께 산책 겸 찾아가봤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그저 걷기만 해도 에너지가 다시 모이는 것 같다. 주변의 긍정적인 에너지를모으는 원기옥 같은 것이랄까..
경복궁역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자하문터널, 윤동주문학관에서 내렸다. 이 곳을 기준으로 산의 양쪽으로 둘레길이 펼쳐지는데 우리는 왼편의 산책로로 방향을 정했다. 윤동주문학관에서 사직공원까지 가는 길은 인왕산 둘레길 중에서 '무장애 산책로'로 이름 붙여져 있다. 그 말은 휠체어, 유아차를 타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노약자들까지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
그 길을 아내와 어린 아이와 함께 걸었다.
길 양쪽으로 푸르른 나무와 풀들이 그늘을 드리우는 길, 조금만 걸어봐도 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산길을 걷는 무한 매력에 빠지는 이유도 이런 것이겠지. 길이 울퉁불퉁하긴 하지만 바퀴가 있는 휠체어, 유아차를 타고도 충분히 산책을 할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막힌 길이 나타났다. 작년만 하더라도 경사로가 잘 깔려져 있던 곳인데 뚝 끊겨버렸다. 왜 이렇게 됐을까? 바로 오른쪽 안내판에는 이 길이 '무장애 산림산책로'라고 쓰여있다. 걷는게 어렵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왜 이 길이 끊겼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휠체어를 탄 여행자들에게는 더이상 갈 수 없는 길이 되어 버렸다. 경사로가 사라진 이 길로는 휠체어를 타고는 갈 수가 없다. 결국에는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함께 간 가족들에게도 이 길을 자랑하면서 걸어왔는데 당황스러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보수 해달라고 요청을 하겠지만 한동안은 여기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을 갖고 조금더 걷다보면..
인왕산 초소가 카페로 탈바꿈한 '인왕산 초소책방'이 나타난다.
연휴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침 빈 테이블 하나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지만 우리 이후로 많은 분들이 눈치게임을 시작했다. 테이블이 하나 빌 때마다 여러 사람들이 빈 자리로 몰려드는 것이 반복되었다. 이 곳까지 찾아오는 것도 쉽지는 않을텐데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걸 보면 산 속에 자리잡은 카페의 매력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초소책방의 매력은 맛있는 빵과 적당한 커피의 맛도 있겠지만 나에겐 무장애환경을 갖춘 카페라는 것이 더 큰 매력인 것 같다. 모든 공간을 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1층 대부분의 공간이 접근 가능하고 장애인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장애인화장실이 있는 카페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그것만으로도 맘 편하게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날이 좋은 날에 인왕산을 다시 찾아야겠다.
유아차를 탄 아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휠체어를 탄 장애인, 손을 꼭 잡은 연인까지.. 다채로운 모습의 사람들 속에 섞여 이 길을 걷는 것 만으로도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 때는 끊어져 있는 무장애 산림산책로도 다시 이어져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