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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Mar 08. 2020

타요, 띠띠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아빠

82년생 육아대디


자율자동차가 곧 상용화된다고 한다. 실제 법적으로 자율자동차 운행을 승인한 외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도 그런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기업 카카오가 택시회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하고 있는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AI탑재 차량이 인간을 대신하면 안전사고가 지금보다 90퍼센트 줄어들 것이라 한다. 허나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율자동차 구매의사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내비치고 있다. AI가 교통사고를 완벽하게 막아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사고가 날 경우 AI는 탑승자와 보행자 중 누구를 우선순위에 두고 구할 것인가? 과실의 책임은 로봇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둘 것인가? 탑승자가 차 내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AI는 어느 범위까지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함으로써 발생할 실업 대책은 충분한가? 이런 윤리적, 경제적 문제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것도 자율자동 시스템의 도입을 미루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 아들은 돌이 지날 무렵부터 26개월이 된 지금까지도 띠띠뽀와 타요를 꾸준하게 시청하고 있다. 라면 일단 만지고, 보고, 사달라 조르고, 부속 곳곳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이모조모 물어보는 일명 '차량 덕후 아기'다. 어린이집 등교 전, 하교 후 매일 같이 띠띠뽀와 타요를 보고, TV에 나오는 장면을 흉내도 내보고, 춤도 추고, 노래도 따라 부른다. 너무 많이 봐서 나도 외울 지경이다.


한 번, 두 번은 스치듯 보지만 세 번, 네 번, 열 번을 보면 자꾸 곱씹어 보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저거 저래도 되는 거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지점이 한 둘이 아니다. 나만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진짜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거 아동 노동착취 아냐?


버스 타요, 기차 띠띠뽀는 모두 꼬마다. 내가 아는 그 꼬마는 어린아이, 미성년자다. 이들은 희로애락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인간과도 같은 존재로 나온다. 칭찬받으면 기뻐하고 욕먹으면 주눅 들고 화나면 '개판'도 치고 그런다. 특히나 어리니까. 그런 그들에게 군림하는 자가 있다. 바로 '어른급' 버스와 기차, 이들을 통제하는 소수의 '어른' 인간들이다.


아무리 기계라지만 의인화를 시켜놓은 캐릭터 꼬마들에게 어른들은 부단히도 일을 시킨다. 근무 중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꼬마들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야 한다. 막히는 구간에서는 손님들을 제시간에 내려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감내해야 한다. 곡선 구간에서 자칫 잘못하면 기차에 실린 화물이 쏟아져 기차가 크게 손상되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사고가 나서 기계들이 종종 망가지고 고통스러워한다.)


야간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나 채굴장에 가서 위험한 자재들을 싣고 마을로 돌아오는 꼬마기차 '디젤'을 보면 옛 19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일선에서 밤낮없이 고된 일을 하다 쓰러지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애니메이션의 꼬마들은 그렇게들 고된 노동에 한숨을 내쉰다.


꼬마들은 노동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 들어온 신입 꼬마 기계를 수습사원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도 시켜야 한다. 어른 기계와 사람들은 그런 선임 꼬마를 놀려먹는다.


어이~ 신입이 너보다 더 잘하는 것 같은데? 분발해야겠어!?


이게 애들한테 할 소리인가? 당연히 선임 기계는 빡친다. 내가 모자란 게 뭐가 있다고! 이러면서 자신이 후임보다 월등한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한다. 그리고 사고가 난다. 후회하고 용서를 비는 건 어른이 아니라 꼬마다. 애들을 회사에 갖다 앉혀놓고 '너희들은 친구란다' 하면서 한편으로 위계서열을 만들고 있다. 이거 뭐 승진시켜 줄 것도 아니잖아?


유치원 버스가 퍼지면 꼬마버스가 가서 대행업무도 한다. 때로는 사회에 나가 어린이들의  일일교사 역할도 해야 한다. 애들을 다루어 본 적이 없는 꼬마 버스들은 적잖이 당황한다.


나도 앤데...


용기가 없다고 어른에게 욕먹은 한 꼬마 버스는 용기를 억지로라도 갖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고 사고 현장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출해 내기도 한다. 어른 버스는 '제정신이니' 하기는커녕 자랑스러워한다.


어른 기계들이 업무 역할을 문제 삼아 싸우면 화해도 시켜줘야 한다. 아이들이 저건 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야 하면서 어른들이 서로 얼굴 붉히지 않도록 중재에 나서는 일도 즐겁고 보람 있게 임한다. 아 '나 때문에 생긴 문제가 잘 풀려서 너무 다행이야'하고 웃는다. 나는 웃음이 나질 않는다.




휴가를 자진 반납하는 '미덕(?)'을 몸소 실천한다.


모든 버스와 자동차를 고쳐주는 정비사 인간 '하나'는 외국의 해변가에서 그동안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장기 연가를 내고 비행기에 탑승할 마음에 몹시 설레어한다. 그때 마침 경찰관과 자동차들이 나타나 갑작스럽게 사고가 많이 나서 큰일이라며 하나에게 다급한 상황을 설명한다. 그런데 하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어쩔 수 없지. 휴가는 다음에 가야겠다! 어서 사고 현장으로 가보자!


뭐야? 대체 인력도 없어? 연가를 그냥 취소해? 비행기 위약금은? 관광 위약금 거의 못 돌려받지 않나? 이게 맞는 거야?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한 하나를 위해 꼬마버스들은 해외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도 주자며 나름대로의 무대를 만들어 하나에게 선물해준다. 하나는 감격스러워하며 구성원들과 함께 기뻐한다. 자, 당신이라면 감동 먹을까?


나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아니 정부에서 52시간제를 도입하느니 마니, 초과근무를 줄이고 워라밸 사회를 만드니 마니 이러고 있는 시국에, 자진 연가 반납에 자신의 막심한 손해를 감안하고 회사에 헌신(?)하는 이 행동이 지금 나올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는지 참으로 허허스럽다.


공무원도 수요일은 '가족의 날'로 지정하여 초근하지 못하도록 규정으로 만들어 놓은 판국에, 연가보상비 받지 말고 연가 다 써서 경제발전과 워라벨에 이바지하라고 하는 이 중대한 마당에, 왜 애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세상을 거꾸로 가고 있는 건가? 


타요 사회에는 비번 먹기도 쉽지 않다. 오랜만의 비번으로 쉬려고 해도 누가 아프면 땜빵으로 또 일해야 한다. 너가 건강한 게 최고지! 걱정 말고 푹 쉬어! 하면서 꼬마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또 일터로 향한다. 그것도 웃으면서.


그러다 너도 과로로 쓰러지면?


요즘 대한민국 사회는 젊은이들의 과로사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터의 젊은 인력들이 야간근무, 새벽 근무, 주말근무로 수도 없이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일을 전투처럼 하고 있는 지금의 어른들을 보고 배우라는 것인가? '얘네는 꼬마여도 최신 로봇이니까 그래도 되지' 하고 아이들이 알아서 자체 판단을 하라는 것인가? 그 몇 살 되지도 않은 애들이 뭘 알겠냐 하는 혹자도 있겠지만 그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인지 내용은 훗날 시청 아이에게 어떤 형태로든 거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AI와 인간이 서로 이상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건 경찰관 루키와 AI경찰차 패트의 싸움이다.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데 루키는 GPS 추적을 통해 피의자를 잡자고 하는데, AI는 되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박한다.


GPS만을 믿고 범죄자를 잡으려 하다니 한심해! 현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어서 현장 구석구석의 증거들을 확인해서 잡자구!


인간은 AI를 쓰자하고, AI는 오프라인의 추적방식을 쓰자하며 버럭버럭 싸운다. 결국엔 서로 삐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수사를 하겠다고 공조를 파기한다. 이건 도대체 무슨 설정인 거지?


여기서 무섭게 느껴지는 건 인간의 을 AI가 따르지 않고 자체 판단으로 지가 하고 싶은 대로 사회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이다. 터미네이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AI 스카이넷이 자가발전하면서 인간을 공격 대상으로 인지하고 전 인류를 핵폭탄으로 멸망시킨다.


후대에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그 시대에는 로봇이 상당한 지능을 보유할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내가 궁금한 건 왜 제작자는 AI가 인간의 명령을 절대 수용하지 않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에피소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가이다. 제멋대로인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라고 면피하기에는 그 위험수위가 너무 높다.




폐차시킨 차의 메모리칩을 새 차에 심는 이유는?


'타요'에서 정비사 하나는 새로이 입고된 '가니'라는 차량에 메모리 칩을 하나 심는다. 경찰관 루키가 그게 뭐냐고 묻자 하나는 대답한다.


아. 옛날 나와 같이 일했던 차인데 너무 오래돼서 폐차한 차가 있어. 그 차에서 빼낸 메모리 칩이야.


루키는 그걸 심으면 폐차된 차의 기억이 새 차에 입력되냐고 묻자 하나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고개 젓는다. 그럼 왜 심는 건데?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실제로 운행 결과 하나의 예상과는 달리 첫 주행을 시작한 가니는 선임 꼬마들보다 훨씬 능숙한 운행에 길도 빠삭하게 알고 있어 모두를 놀라게 한다. 타요와 친구들은 하나에게 신기하다고만 떠들지만 만약 내가 타요라면 하나에게 물을 것 같다.


저도 폐기되면 제 기억을 남에게 심어줄 건가요?


영화 '겟 아웃'이 생각났다. 고령층 백인 마을에 젊은 흑인을 납치하여 죽음을 앞둔 백인의 뇌의 핵심만을 도려내어 흑인의 뇌에 심어서는 백인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흑인은 그저 깊은 무의식 속에서 자신이 행동하는 것만을 관찰할 수 있도록 통제하는 끔찍한 수술.


영화 '스템'에서는 AI와 그의 제작자가 자신의 칩을 당신의 머리에 심으면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이라며 합체를 유도한다. 주인공은 이에 응하고 결국 AI에게 뇌를 통째로 내어주고 자신은 기계의 명령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인간인지 로봇인지 구분할 수 없는 미래 세계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제작한 것인가?




앞으로의 아이들 세상에 구세기 마인드 교육이 맞는 걸까?


이 작품의 주요 제작자가 70년대생이다. 마흔 중반이다. 보릿고개를 간신이 넘은 시기에 태어나 전통사회도 경험하고, 급변하는 컴퓨터 현대사회도 겪어봤고, IMF를 통과하며 실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지켜보고 본인도 아픔을 느껴봤을 그런 세대다. 그리고 지금 AI산업에 대해서도 천천히 상황을 흡수하고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프로그램에는 전통-현재-미래가 뒤죽박죽으로 섞여있다. 어떤 때는 전통사회의 권위에 의존하기도 하고, 그 권위를 무시하는 미래로봇도 있고, 죽도록 일만하는 지금 사회의 젊은 피들의 모습도 담겨있다. 제작 혼란한 철학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셈이다.


문제는 미래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펼쳐질 미래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검토해서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삶으로 함부로 미래를 그려서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혼란의 지금'만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주는 꼴이 된다.


하나의 그림에 너무 많은 걸 그려서는 안 된다. 오래도록 변치 않을 것들을 다룰 것인지, 아니면 예측되는 범위 내에서 펼쳐질 미래를 꼼꼼하게 펼쳐줄 것인지 정해야 한다.


이제 우리 부부는 이제 타요와 띠띠뽀를 접었다. 대신 차량에 대해 움직이는 원리와 역할, 기능을 쉽게 알 수 있는 '단순한' 프로그램을 선별하여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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