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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ul 17. 2019

다시 돌아온 소나타

만나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까?



얼마 전, 코엑스에서 서울 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우리 기관 채널 부스 운영을 우리 과가 맡았다. 직원이 부족해 과원 전체가 투입되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부스를 지켰다.

내 차례가 된 날, 부스에 서서 고객을 맞이하던 중 저만치에 무슨 대기 순번표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 저게 뭔가 하고 하고 가보니 '문학 자판기'라고 쓰여있다. 스위치를 누르면 은행 창구에서처럼 번호표가 나오듯이 긴 글과 짧은 글이 출력되어 나온다. 그래. 짧은 글. 츄츄츅.

「그 사람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그런데도 다시 만나고 싶습니까?
- 신의 아이, 야쿠마루 카쿠.


이야. 이거 참 짧지만 여운 주는 질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만난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견고하게 다져놓은 나의 작은 성마저 무너뜨리고 누군가를 위해 출격한다...

근데.

누굴 다시 만나지???

저런 조건을 내걸고서는, 아무도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짧은 시간 내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설사, 아무 조건 없이 그런 상황이 주어진다 해도 나는 사양하겠다. 왜냐면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공존하고 있을 테니까. 구태여 그 자가 파멸에 치닫지 모를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그 행동을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차원의 세계.

꿈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수많은 나란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말은 마치 아침, 점심, 저녁과도 같이 반복되는 끼니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아침 먹은 나는 출근을 했고, 점심 먹은 나는 커피를 마시고, 저녁 먹고 있는 나는 야구 보며 아들 입에 밥숟갈을 넣어주고 있다.

단지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은 아까의 선택을 기억하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아침 먹고 "오늘은 쉬고 싶군" 느닷없이 연가를 내고 집에서 영화를 보는 나, 점심 먹고 들어와 "이건 하반기까지 끝내려면 당분간 빡세게 돌아야겠어" 하며 밤늦게까지 남아 연필을 물고 머리를 북북 긁고 있는 나, 보이진 않지만, 믿기진 않지만 수많은 선택지에서 오만가지 길을 걷고 있는 다 제각각의 삶을 살고 있는 우주 빛깔만큼의 많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렇기에, 그 수억만의 나 중의 지금의 나를 흔들 필요가 하등 없다. 그냥, 다른 선택을 한 나에게 그 결과를 맡기면 된다.


2019 소나타를 질렀다. 애초부터 소나타를 사고 싶었다. 수많은 친구들의 조언을 얻고, 여러 명의 딜러와 통화하며 이것저것 옵션과 서비스를 검토하여 단 삼일 만에 구입을 결정했다. 그리고. 공동 운전자에 아빠를 함께 넣었다. 

아빠가 처음 산 차는 프레스토였다. 하얗고 날쌔게 생긴 자동차. 아빠는 신이 나서 집에서 오셔서는 오밤 중에 가족들을 태우고서 운현궁과 천도교당 사이에 난 유턴 도로길을 몇 번이고 돌았다. 나는 창문을 열고 막 소리를 질렀다.

이게 진짜 차라는 거구나.

어는 날은 소백산맥에 놀러 간다며 엄마가 새벽같이 나와 생을 막 흔들어 깨워서는 빨리 아빠 차에 타란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빠져나와보니 크고 검은 차 하나가 묵직하니 붉은빛을 내며 큰길 앞에 서 있었다. 앞 창문이 슈욱 내려가더니 아빠 얼굴이 나왔다.

 "얼른 타. 늦었어."

소나타였다. 몇 시간이고 물 따라 산 따라 터널 따라갔을까.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차 멈추는 발 느낌에 부스스 눈을 비벼 깨어보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느 산등성이에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고 나와 보니, 와. 온통 흰 안개가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아빠. 안개예요."
"이건 안개가 아니고 구름이야."
"그렇게 높이 왔어요?"
"높지 그럼."

숨을 들이켜보니 차디찬 수증기가 콧 속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나는 신이 나서 도로 주변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의 회사가 부도를 맞으며 소나타는 팔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빠는 차가 없다.


아빠가 매일 몰고 있는 차는 회사 택시다. 아빠가 당신의 회사를 포기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간, 아빠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승객을 태우고 사납금을 내기 위해, 부족하지만 집안의 조그만 보탬이라도 되고자 사납금 그 이상의 돈을 벌기 위해, 딱히 휴일이랄 것도 없이, 늘 불면증을 안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아빠의 소나타를 타고 얼마나 많은 여행을 다녔던가. 산, 계곡, 바다, 섬 가릴 것 없이 우리 가족은 전국 방방 곳곳을 돌며 차곡차곡 추억의 앨범을 채워갔었는데. 항상 어디든 도착하면 엄마는 "아빠 고맙습니다 해야지" 하고 우리 남매는 뒷좌석에서 삐약삐약 인사했다. 그 차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살아있기나 할까.


오늘 오후, 드디어 말끔하게 빠진 새 소나타가 집 앞으로 탁송되었다. 나는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샘머리 아파트를 빠져나와 정부 대전청사를 빙빙 돌았다. 두 살배기 우리 아들은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오!오!" 외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그랬어 요 깐돌아. 

그때의 내가 그립진 않다.


단지 나는,

아빠가 곧 소나타를 태워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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