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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Jul 14. 2019

장을 본다는 건 취향저격

대형마트, 슈퍼, 소매상, 일일장

매주 월요일 대전 샘머리아파트 길목에는 일일 장이 선다.


아내는 장날이 되면 어김없이 바구니를 들고나가 과일과 야채를 한 아름 사 온다. 요 앞 롯데마트서 주문하지 뭘 그리 고생하냐고 하면 아내는 신선도에서 마트는 견줄 수가 없다고 한다.

손님을 접대할 때는 샘머리 상가 맞은편 과일가게와 정육점을 이용한다. 조금 비싸게 주더라도 물건이 좋으니 그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인근의 슈퍼로 나를 심부름 보낸다. 거기가 고기, 야채 상태도 고만고만하고 가격도 괜찮다고 한다. 그 외 웬만한 생필품들은 롯데마트 앱으로 주문한다. 쏜살같이 온다.

이렇게 물건 사는 사람의 눈썰미를 보면 대형마트, 슈퍼, 소매상, 도깨비장이 공존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30년 전, 안국역 주유소 뒤편에는 경제기획원 공무원 연금매장이 있었다. 가격이 저렴했다. 일반인도 이용했다. 엄마는 거기서 생필품을 샀다. 살 것을 찜해놓고 계산대에서 돈을 지불한 후 코너를 돌며 물건을 찾아가는 식이었다.

익선동에는 수많은 방문 판매상들이 활약했다. “알타리무~~~여 배추여!” 소리가 들리면 머지않아 야채파는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나타났다. 엄마는 어김없이 알타리, 대파, 양파, 감자를 한 아름 사 왔다. (나는 지금도 이 분의 성대모사를 똑같이 할 수 있다)

“덴~~~~~~~뿌라!”를 연신 외치는 아줌마가 오면 며칠 먹을 어묵을 샀다. “생선이요~~~~ 생선 생선!” 생선 대야를 이고 다니는 할머니도 있었다. 갈치, 동태, 오징어만큼은 이 분 물건을 샀다.

건어물은 낙원시장의 단골집에서 샀다. 심부름을 가면 아주머니가 내 먹을 간식거리까지 챙겨주곤 했다. 냠냠냠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빼먹을 수 없는 한 곳. 창덕궁 앞 ‘비원 슈퍼’다.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 족히 ‘40년 전통’은 넘는다. 요즘으로 따지면 최신 마트다. 이도 저도 따지기 싫으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와서 여기서 장을 봤다. 나는 늘 이곳에 오면 ‘마일로’(코코아 품명)를 사달라고 조르곤 했다.

우리 집의 모든 화장품은 ‘아모레 아줌마’에게 샀다. 사연이 있다. 추운 겨울날, 빙판 위에서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낙원시장 영업소로 돌아가는 아주머니가 딱했던 엄마는 즉석에서 조건 없는 제안을 했다.

“아줌마. 이 빙판길을 혼자서 어떻게 가려고 해요. 만약에 아줌마가 저를 정말 믿으시면 저희 집에 물건 두고 파세요. 돈 일절 안 받을 테니까 마음 놓고 파세요.”

그다음부터 우리 집 툇마루에는 항상 화장품이 가득했다. 아주머니에게는 우리 집이 영업지점 중간 물건 보관소가 되었다. 익선동의 ‘이방인’이었던 엄마는 이 분을 통해 상당한 현지 정보를 익힐 수 있었다.

내게 놀라웠던 사실은, 운현 국교 입학의 계기가 이 분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일곱 살이 된 아들의 학교 선정을 두고 고민하던 엄마에게 아주머니가 ‘저 덕성대학교 안에 사립이 하나 있는데 요번에 비원 살다 금호동 간 애가 전학을 안 가고 계속 거기 다니는 거 보면 좋은 곳이 틀림없다. 그리로 보내라.’ 팁을 줬다는 것이다. 한 꼬마의 인생진로가 이렇게 시작점을 밟게 되었다.

장을 본다는 건, 물건에 더하여 사람을 익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더 나아가 동네의 판세를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장의 색깔은 구입자의 취향저격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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