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약 Sep 14. 2019

삼청동 골목길엔... (2)

누가 삼청동을 함부로 정의하는가?



이론은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이론은 많은 것들을 화석화시켜 정의하고, 많은 것들을 가려내어 안내한다. 젠트리피케이션도 그중 하나이다. 


‘값싼 작업공간을 찾아 예술가들이 어떤 장소에 정착하고 그들의 활동을 통해 지역의 문화 가치가 상승하면, 개발자들이 들어와 이윤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위 내용을 놓고 보면 우선, 선후 과정이 바뀐 경우가 더 많다. 개발자들이 먼저 개발할만할 곳을 물색하고 입소문을 퍼뜨린다. 이른바 ‘미학’의 주문이다. 가만히 넋 놓고 있는 담벼락 하나도 낭만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블링블링하게 윤색하여 입김을 불어넣어주는 자들이 땅값 올리는 데 가장 크게 한몫한다. 그들의 이름은 학자이다. 가장 큰 개발 공헌자이다.


[흑죽], 연필과 파스텔, 2009.7.26/ 백약



‘이곳은 슈퍼맨이 태어난 장소이고, 또 요 앞에는 배트맨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마’ 하며 마법을 부리면, 부동산을 쥐고 있는 거주민들이 부스스 일어난다. 이들은 ‘토박이’를 자칭하며, 선의의 예비 피해자임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등록하고자 노력한다. 여기서 학자와 토박이가 만나 ‘주민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보존의 깃발을 꽂는다. 깃발 뒷면에는 ‘사실상 모든 걸 바꾸어 놓을 보존입니다’라고 쓰여있다.


‘던킨 도너츠 저런 것들이 들어와 삼청동을 망친다’고 혀를 차던 개발자를 만난 적이 있다. 흥미롭게도 그는 거주자이면서 학자였다. 마법의 성과 마법술을 모두 가진 강력한 간달프였다. 이로 인해 삼청동에는 수제비집은 있어도 되지만 던킨 도너츠는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으로 심판의 망치가 땅땅 울린다.


예술가들이라 불리는 신흥세력은 기존에 세 들어 살던 주민들을 내쫓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집주인은 마법 같은 내 집 꾸미기에 동참해줄 아티스트에게 활짝 문을 열어둔다. 예술가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어느 정도 집 꾸미기가 끝나면 떠날 시기를 따져본다.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하기엔 꽤 영리하다.





내 친구 범이는 어렸을 적 삼청동의 거주자였다. 그는 낙후된 동네를 떠나 저 먼 경기북부로 가서 어느 정도 재력을 쌓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한 세월 지나 다시 이곳에 돌아와 그럴싸한 멋진 가게를 차렸다. 투자 대비 납득할만한 수익을 올렸다.


그는 토박이인가 외부자인가? 예술가인가 개발자인가? 젠트리피케이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케이스가 이렇게 현지에 존재한다. 현장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 풀이할 수 없는 것들이 꽤 존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삼청동 골목길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