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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Sep 18. 2019

삼청동 골목길엔...(3)

소격동은 왜 소격동인데???



박물관 근무 시절, 동료들과 점심 티타임을 갖던 중 누군가 내게 ‘삼청동 사는 사람이 삼청동 진짜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에이 거짓말하면서 계속 알려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민박’(국립민속박물관) 앞에 칼국수집, 그리고 정독도서관 들어오는 쪽의 ㅇㅇ커피숍 정도가 괜찮은 건 것 같다 말했다. 그 사이 누군가 콕 집어 치고 들어왔다.

“거긴 삼청동 아니지. 소격동이지.”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물었다.

“소격동은 왜 소격동인데?”

“그거야 행정구역명이니까. 삼청동이랑 소격동은 다르지.”

“소격서가 있던 곳이라 그런 건 아니고?”

“소격서가 뭔데?”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삼청동을 행정으로 구획하면 그 범위는 몹시 좁다. 삼청동사무소 부근을 시작으로 동으로는 감사원, 북으로는 숙정문. 이게 전부다. 우리가 소위 맛집 탐방 섹터로 일컫는 ‘삼청동’은 팔판동, 소격동, 가회동, 사간동 등 주변 일대 동네를 통틀어 부르는 곳이다.


이른바 정서적 지명인 셈이다. 

소격동을 소격동이라 부를 수 있는 자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서태지, 그리고 내 친구 마이클과 범이 이렇게 셋 뿐이다.

마이클이 오랜 이민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종로 친구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유승준이 돌아온다!(예전엔 유승준만큼 터질 것 같은 근육맨이어서 붙은 별명이다.) 하루가 멀다 하여 연이어 벌어지는 울트라 대환영 술자리. 종로 3가 포장마차였던가. 잠자코 애들 얘기만 듣던 그가 내게 넌지시 한마디 꺼냈다.

“언제 나랑 우리 동네 가보자.”

며칠 후, 카메라 장비를 잔뜩 지고 온 녀석은 막상 동네에 다다르자 몇 컷 찍지도 않고 한숨만 내쉬었다.

“이 동네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언제나 집이 그리웠다고 했다. 녀석은 아직도 집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초인종 소리가 귀에 맴돈다. 소격동 집 골목으로 들어갈 때 H 모양의 단정한 모양새가 좋았고, 그것이 마치 동네 안에 동네 같은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라고.


무제, 색연필과 사인펜, 2010.4.25. / 백약


집은 고향이었다고 했다. 자기 집을 사들여 무너뜨린 그 옆 화랑을 몹시 원망했다. 모두 깊이 알고 지낸 사람들도 이제는 떠나 버렸다. 동네를 살포시 연필로 그려놨는데 누가 그 위에 펜으로 남의 동네를 마구 그려놓은 그런 느낌이란다.

“완성되지 않은 연필그림에 누가 펜으로 낙서한 것 같은... 다시는 복구할 수 없게 만든 거야.”

그에게 가장 큰 존재는 북악산이었다. 집 옥상에서 매일마다 보던 경복궁 뒤로 한 거인이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모습. 그 아래 내려앉은 새까만 기와지붕들. 집집마다 끼고 있는 살구빛 연탄. 사이사이를 어슬렁거리는 도둑고양이들. 새벽에 던지는 신문 소리, 문 앞의 이슬 맞은 새벽 우유.

집 앞을 떠날 줄 몰랐다. 고이 모아둔 한정판 프리즘 드래곤볼 카드를 형이 둘리 만화책에 다 붙여 버려서 엉엉 울며 다 찢어버린 기억도 떠올렸다.(형한테 쌍절곤으로 두드려 맞은 에피소드를 꺼내니 그건 전혀 그립지 않았다고 딱 잘랐다.) 그리고 두서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민들이 사는 곳에 기업 회장들도 많이 살았지. 바로 앞에 궁이 있고, 청와대가 가깝고, 시청도 가깝고, 예술이 있으며, 안전하지만 도둑이 많은, 그리고 전쟁 나면 아주 무서울 거 같은 동네였지. 좁은 골목 안에서도 이웃끼리 아주 끈끈했어.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

늙은 노인네의 소싯적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카메라가 다 뭐냐 술이나 먹자 하고 우리는 소격동 골목을 벗어나 터덜터덜 종로 2가로 향했다.




삼청동 주민치고 마도사를 모르면 간첩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 도사라는 직함은 주민들이 붙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삼청공원 올라가는 길목의 왼쪽 편 아담한 기와집에 작고 왜소한 몰골의 한 늙은이가 산다. 집 안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부인이 기거하고, 집 대문 밖에는 새까만 큰 개 한 마리가 쇠목줄을 늘어뜨린 채 돌베개 잠을 자고 있다.

아침이 되면 마도사가 온 동네 주민들을 놀래켜 깨운다. 새벽까지 마신 술병을 들고 이길저길 다니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모시적삼 하나 걸치고 대충 천으로 묶어 돌린 희끗희끗한 머리털을 등허리까지 늘어뜨리며 개를 옆에 데리고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이마부터 목까지 퍼진 자글자글한 주름에, 술방울이 덕지덕지 붙은 수염 사이로 삐쭉 나온 입술에서 담지 못할 소리들이 터져 나오면 길가에 가던 주민들이 먼저 피해 빠져나간다.

최종 도착지는 총리공관 앞이다. “ㅇㅇ아! 나와라~~~ 나랑 술 한잔 하자! 야 너 ㅇㅇ이 나오라고 해!” 하면서 공관 입구에 퍼질러 앉아 총리 이름을 불러댄다. 그러면 보초서는 경찰들이 와서 몇 시간이고 마주 보며 가까스로 달래어 집으로 보낸다.

이 양반은 꼭 마주칠 때마다 내게 하는 소리가 같았다. “야 너 공부 열심히 해라! 놀고 다닐 때가 아냐! 좋은 동네 가서 잘 살아야지!” 나도 그럼 “공부 어지간히 하니까 걱정 딱 붙들어 매시고요! 여기보다 어디가 더 좋아요?” 탁 받아치고 가버리곤 했다.

그 정도 민폐라면 진작에 동네에서 쫓겨날 법도 한데, 마도사는 꿋꿋하게 그 집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 그 자는 도에 밝아 사주팔자를 귀신같이 잘 맞추기로 유명했다. 한창 신기가 밝은 때는 부잣집 마님부터, 정치가, 상인 할 것 없이 예약이 밀려있었다. 마도사는 일단 약속을 잡으면 한 달 전부터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한다.

어느 순간부터 마도사가 매번 거들먹거리는 ‘좋은 동네’라는 그 단어가 괜히 목에 걸렸다. 그래서 언젠가 하루는 좋은 동네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버럭,

“그걸 몰라 묻냐 이 ㅇㅇ아! 정치판 벗어나면 좋은 동네지!”

아.

이제부터는 내 생각이니 믿거나 말거나다.




이 동네의 지명유래를 하나씩 살펴보면 참 격조 있고 유서 깊다. 그런데 이것들을 하나의 지도에 펼쳐놓고 그 관계를 따지다 보면 그야말로 ‘귀신이 난무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으로 해석된다.

삼청동은 삼청성신이 좌정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그 신을 모시는 소격서가 소격동에 있었다. 고려 때는 소격전이라 불릴 정도로 도교신을 모시는 스케일이 매우 컸다. 이것이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에 이르면서 점차 축소되었다. 미신 VS 전통이 조정에서 맹렬하게 부딪혔다. 존치를 두고 수백 년간 이 문제로 다퉜다. 수백 명이 죽거나 유배를 가고 정계에서 쫓겨났다.

이 문제를 지켜보던 판서 8인이 인근에 살았다. 이름하여 팔판동이다. 어느 편에 서든 지간에 시류에 따라 목이 오고 갔다. 그리고 소격서 철폐를 목청 터지게 외치던 유생들이 밑 동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왕에게 거침없이 간언 하는 사간원이 있던 사간동이다.


무제, 펜과 사인펜, 2008.9.7 / 백약


그 신하들 꼴을 보기 싫었던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판을 엎었다. 그는 단종의 곁을 호위하던 김종서 장군과 식솔을 먼저 제거했다. 그 자리가 바로 재동이다. 죽음의 피가 낭자한 김종서 댁 자리에 세조는 잿더미를 뿌렸다. 원래 이름은 잿골이었다.

그 자리에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한 획을 그은 풍양 조씨 집안이 들어섰다. 흥선대원군을 정치계로 불러들인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호랑이를 불러들인 곳. 쇄국 VS 개방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치열한 한판 승부를 벌였다. 그 아버지가 버티고 있던 땅이 운현궁이 있는 운니동이다.

조선 건국기에는 국가의 기틀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궁궐 인근에 12개의 방을 만들었다. 이 중 두 개가 가회방(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이는 방), 안국방(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방)이다. 지금의 가회동과 안국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람된 말이지만, 요즘은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팻말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 버리기 때문이다. 알아서 평안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갖추어졌다면 붙여지지 않았을지 모르는 이름들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모습들이 난무했던 자리는 여전히 그때가 묻어있다. 박 터지게 싸우고 피 흘리며 권력을 쟁취했던 동네이다.

원한 서린 옛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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