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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Sep 22. 2019

청와대 길이 열렸다 닫혔다 하던 시절

서촌도 없고, 북촌도 없던 시절



북촌과 서촌은 관광 브랜드명이다. 거주민에게 그런 개념은 없었다. 굳이 동네를 가르자고 하면 청와대를 가운데로 두고 서쪽 동네, 동쪽 동네로 나누어보는 정도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해가 질 즈음이면 청와대 길은 보안상의 문제로 출입이 통제되었다. 청와대가 철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때마다 동과 서는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만약 청운동 사람이 밤에 삼청동 사람을 보러 가야 한다면 경복궁 역까지 내려와서 광화문길을 타고 동십자각에서 유턴하여 올라가야 했다. 그렇다고 그런 불편함까지 감내하고 오고 갈 정도로 긴밀한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동서는 그렇게 대충 나뉘어 살았다.


[유희도], 색연필과 사인펜, 2009.4.10. / 백약


서쪽 동네는 아래로 적선동, 위로는 부암동, 자하문과 세검정을 넘어 구기동, 평창동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West side' 전선이 형성되었고, 동쪽 동네는 삼청동을 시작으로 화동, 안국동을 지나 익선동, 교동, 낙원동까지 뻗어가는 'East side' 전선이 갖추어졌다.

모든 상황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동서를 오고 가며 애매한 중간지대를 만들어 사는 ‘족속’들이 있었다. 동쪽에 살며 서쪽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그랬다. 등교시간은 07:30분까지였다. 청와대 문이 열리는 시간은 보통 07:30이었다. 그래서 청운중, 경복고를 다니는 동쪽의 학생들은 도보 소요시간을 계산해서 07:00쯤 미리 나와 청와대 경비소로 향했다.

학생증은 필참이었다. 초소의 경찰이 판때기를 주면 거기에 성명, 주소, 집 번호, 학교, 학년을 써냈다. 경찰은 늘 그랬듯 손으로 휘휘 저으며 통과 사인을 보냈다. 학생들은 부리나케 학교로 걸어갔다.

간혹 짓궂은 경찰들도 있었다. ‘이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떻게 내 이름을 모를 수 있냐’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학생들의 등굣길을 은근히 지연시켰다. 하루는 오기가 생겨 대략 7-8명의 초소 경찰 인상과 이름을 외워버렸다.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뛸 듯이 좋아하며 그다음부터는 프리패스를 시켜줬다.

[유희도], 색연필과 사인펜, 2009.4.12. / 백약


학교는 크게 세 파로 나뉘었다. 먼저 청운동을 기점으로 밑 동네에 사는 남부파, 그 윗동네에 사는 북부파가 있었다. 이 둘은 별로 섞이지 않았다. 빈부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북부 애들 중에는 조부모나 부모 돈 믿고 정신 나간 짓 하는 애들이 좀 있었다. 그들은 그들끼리 놀았다.

이 남북 관계를 가르고 들어온 자들이 동쪽파였다. 여기에는 동쪽에서 줄곧 살다가 서쪽으로 이사 온 학생들도 포함되었다.

동쪽파는 서쪽파 남북부 아이들 중에서 자신들 기호에 맞춰 골라 친하게 지냈다. 그 점과 점이 모여 선이 되고 도형을 만들면서 ‘이도저도 아닌’ 세력이 뭉쳐졌다. 공부를 꽤 잘하거나, 재주가 좋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진짜 웃기거나, 희한한 개성이 돋보이거나, 뭐든 좀 튀는 애들이 꽤 많이 있었다.

‘영뽀영범’ 역할이 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영뽀는 경복고 출신 중심의 서쪽 ‘중간지대’의 아이들을, 영범이는 중앙고 출신의 동쪽 지대 아이들을 몰고 다녔다. 이 두 세력은 종로 1, 2가 일대에서 만나 자연스레 교류하면서 한 덩어리가 되었다. 양쪽 동네에서 주먹 꽤나 썼다는 애들이 지금도 스스럼없이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된 배경에는, 동서로 구분된 통학권역 내에서도 양쪽을 끊임없이 오고 가며 우정을 통하게 해 준 ‘중간지대’ 학생들이 있었다.

교류 아지트 중 한 곳은 광화문에 있다. 이름하여 ‘아트당구장’. 맨돌라예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계동 출신으로 동쪽의 운현초교를 졸업하고, 서쪽의 청운중, 경복고를 나왔다. 고로, 양쪽의 인간들이 다 찾아온다. 평소엔 당구를 치지만 월드컵 땐 응원장으로 변신한다.


동서 교류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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