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 제대를 가장 기뻐했던 건 아빠였다. 이거 가서 사고나 치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사람 구실하고 돌아왔다고 줄곧 칭찬해주셨다(칭찬받을 일인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잔소리 내용은 취업대비 그런 것이 아니라 죄다 무슨 그림이며 글씨며 건물이며 예술 타령뿐이었다.
“너 현대갤러리 앞에 그림 봤어?” “아뇨.” “너는 삼청동 살면서 거길 한번 안 가보냐?” “시간이 돼야 가죠.” “술 먹을 시간은 많지?”
그럼 나는 헤헤헤거리고 아빠는 어휴 저거 어따 쓰나 한숨 쉬고 늘 그런 식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간곡한 부탁의 전화가 왔다.
“한국에 몽유도원도가 왔단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대. 니가 좀 가서 보고 와라. 너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그림이야. 꼭 가서 보고 와야 돼!” “알았어요. 언제 시간 되세요?” “너가 보고 와서 나한테 설명을 해줘.” “아빠는요?” “나는 바쁘니까 일단 니가 가서 보고 와. 사람 많을 거야. 시간 염두에 두고 가야 돼.” “그럴게요.”
하여 주말 아침에 가보니 개미 줄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박물관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저거 언제 기다리나 해서 문득 ‘그냥 보고 왔다고 할까’ 생각이 들다가도, 에이 그래도 평생에 한 번이라니 그래 그거 한번 봐서 나쁠 거 없지 해서 마냥 기다려 보기로 했다.
세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다다른 몽유도원도. 엄청난 스케일의 문장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림 앞에서 뭔가 서글퍼졌다. 멋있는 건 알겠는데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양 옆 사람들이 눈알이 빠지도록 보길래 나도 낱낱이 훑어보기는 했다. 다만, 생짜 눈으로는 세 시간을 기다려 본 보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저녁밥상에서 아빠에게 오늘 본 내용들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래 그래 아.. 그렇지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는 슬쩍 나를 쳐다보며
“이제 좀 그림이 눈에 들어오냐?” “그게 봐도요. 사실 본 게 아니에요. 솔직히 이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봤으니까 된 거야.” “내일 같이 갈까요?” “아냐. 됐어.” “왜요?” “니가 봤으니까 난 본거야.”
난 지금도 이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아있다. 내가 봤으니 당신 또한 본 것이라니. 그때서야 나는 동네 미술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월전미술관, 학고재, 현대갤러리, 금호미술관, 선재아트센터부터 동네 구석구석에 자리한 크고 작은 갤러리를 종횡무진하고 다녔다. 인상 깊은 그림들이 있으면 도록을 사서 아빠에게 보여줬다. 내가 그린 그림들도 함께.
[청죽과 달항아리], 붓펜과 형광펜, 2008.4 / 백약
“음악 미술 신경 안 쓰면 병신 돼.” “에이... 병신까지야..” “지금이야 젊으니까 괜찮겠지. 너 몽유도원도 보러 갔을 때 이해가 잘 가든?” “아뇨. 전공자가 아닌데 잘 안 보이는 게 당연하죠.” “예술에 전공이 어딨어? 잘 안 보이는 것들을 보려면 자주 봐야 돼. 자꾸자꾸 접해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닌 건지 알지. 나이를 먹을수록 할 일은 많아지고, 만나는 사람은 더욱 많아져. 거기서 제일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예술이야.그 사람들 대화가 안 들리면 넌 다른 세상사는 거야.”
종로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때, 현대갤러리 앞에 전시된 그림 한 점이 나를 멈추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자리에 하염없이 서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거구나. 미친놈구나. 내일 들어가 봐야지. Billy childish라는 작가의 그림이었다. 전시명은 STRANGE BRAVERY(기이한 용기). 화가인지, 펑크 뮤지션인지, 소설가인지, 직업도 딱히 꼬집어 부르기 어렵다. 그는 미술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전시의 경위도 흥미로웠다. 대표가 바뀐 갤러리 현대의 첫 전시인데, 개념미술에 반하는 전방위 아티스트의 작품과 그의 앨범, 책을 같이 선보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도 그려놓았다. 몽환적인 붓터치, 그린 계열의 색감이 보여주는 으스스한 판타지의 화풍이 공간의 냄새마저 바꿔 놓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