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으러 나가려는 참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이웃집 이사 가는데 피아노를 버리고 간단다. 버릴만하니까 버리겠지 싶어 그러냐 하고 말았는데 또 연락이 왔다. 겉도 속도 이 정도면 멀쩡한데 좀 오래된 피아노란다.
서진 피아노?
처음 듣는 브랜드인데 싶어 찾아보니 예전 대우가 인수하여 야심 차게 밀고 가다가 회사가 망하면서 단종된 물건이다. 후기들을 보니 보통 이상은 간다는 게 주류다. 호기심이 생겨 아내에게 건반 쳐서 영상 좀 띄워달라 하여 보니 정말로 상태가 좋다.
후다닥 밥 먹고 경보로 집 앞으로 걸어갔다. 건반 위에 수북이 쌓인 묵은 때. 주인이 피아노를 치지 않은지 꽤 되어 보였다. 직접 쳐 보니 이거 왜 버렸지 싶을 만큼 소리가 좋다. 아무래도 전 소유자가 욕심껏 예전 쓰던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고 애물단지로 만들어 놓은 듯싶었다. 바로 피아노 용달을 부르고 회사로 복귀했다. 업체 사장님에게 조율사를 추천해달라 하니 30년 조율 경력의 베테랑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다음날 오후, 족히 예순은 되어 보이는 여성 조율사가 왔다. 잘 부탁드린다 하니 이거 본인이 예전에 손봤던 피아노란다. 피아노 끝에 붙어 있는 스티커의 조율사 이름이 본인이란다. 30년 맞구나 싶었다. 수십 개 공구로 이곳저곳을 조이고 당기면서 뚱땅뚱땅 소리를 잡아 나갔다. 두 시간은 걸린 것 같다.
선생이 마지막에 드뷔시의 ‘이미지’를 주르르르 쳐 보더니 좋은 거 잡았다며 이 정도면 상태 높게 쳐줄만하단다. 피아노 연식을 물으니 올해로 정확히 마흔 살이란다.
그날 저녁, 밥 먹고 이곳 저곡 쳐 보니 아내가 뒤에 서서 흡족한 모습으로 바라본다.
결혼 선약문에 음악이 넘치는 집을 만든다 했는데 정말 약속이 이루어졌다며.
이 날은 우리의 결혼 3주년이었다. 뚱뚱이는 곰세마리 연주에 맞춰 띠융띠융 춤을 추었다. 특별한 선물이 생각지도 않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