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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Oct 25. 2019

서울사람 대전으로, 대전사람 서울로.

구원자 K군의 등장.



저만치 물러간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엔 낙엽 익는 냄새가 묻어온다. 나들이 날씨에 마음이 동하여 아내와 꿍꿍이와 함께 집 앞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잔을 호로록 마시고, 바로 옆 수목원을 들렀다. 여름 내음이 한풀 꺾인 차분한 숲길엔 듬성듬성 발자국 소리뿐이다.


고요한 꽃나무길 사이, 잔디밭 한가운데서 한 중동 청년이 붉갈색 카펫을 깔고 신에게 경배를 드린다. 저자는 이곳에 왜 왔을까. 어떤 행복을 얻었을까. 무엇에 대해 감사하고 있을까.

[잔], 색연필, 2012.9.4 / 백약


5년 전 초여름, 처음으로 대전에 발을 디뎠다. 정부청사 사무실 빈 책상 위에는 뜨끈뜨끈한 서류뭉치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이 놓은 남모를 오작교를 건너 이듬해 아내를 만났다. 해를 넘기자마자 혹한 겨울이 물러나기도 전에 우리는 결혼했다. 열심히 먹고, 마시고, 일했다. 그리고 작년 첫 달, 우리는 아들을 얻었다. 이곳 대전에서.


K군이 없으면 지금의 나도, 지금의 아무런 결과도 없다. 여기엔 어떠한 가정법도 붙일 수 없다. 그는 30대 초반, 느닷없이 내 인생에 나타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개소리가 매우 잘 통해서 좋은 친구였다. 박물관 생활 동안, 남들은 거의 못 알아들을 수준의 ‘암호성’ 개소리를 주고받았다.(거의 1분 내내 전화를 걸어서는 시작부터 “월월” 소리만 주고받고 끝내는 경우도 꽤 있었다.) 특히 그는 동물 성대모사, 행동 묘사에 능해서 그거 참 미친 짓 같아 수시로 구경하고 때로는 배워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수장고에서 유물 가운데 교지를 포장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가 한문과 역사에 상당한 내공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글의 뜻과 교지가 의미하는 바, 그 시점의 역사적 사건, 그것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 내가 감히 꿈꾸지 못할 수준의 통찰력이 그에겐 있었다. 충분히 배울만한 자였다.


K군에게 빨려 들어가듯 약 1년 간 공부를 배웠다. 그는 학자의 논리가 아닌 오지선 수험공부를 가르쳐주었다. 명절만 제외하고 주말마다 신촌에서 만났다. 매번 욕을 먹어가며 하나하나 다시 시작했다.


“문제는 안 풀어도 좋아. 문맥 정리, 거기서 빼놓지 말고 외워야 할 것, 이해해야 할 것, 그것만 계속 반복해서 해. 너만의 정리노트, 너만의 생각으로 만든 핵심집. 그것만 계속해서 보강만 해. 문제집은 맨 나중이야. 넌 오늘 내 질문에 답 못하면 나랑 여기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거야.”


그를 알기 전, 나의 꿈은 이미 말했듯이 객사였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운명이 ‘유목생활’이라면, 정말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시나리오라면, 내게 윤문 교열의 권한조차도 없는 고정불변의 줄거리라면, 커트 코베인의 말대로 ‘활활 타올라 단박에 사라지는’ 삶에 충실해야겠다 다짐했다.


그러나 그 한 인간의 등장으로 인해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는 말을 타고 질주하려던 나를 잡아 세워 강렬한 어조로 부탁했다.


- 공부한 게 아까워서라도 이번 한 번만 봐. 이상 나도 더 보라는 소린 안 할게. 꼭 봐.


마지막 한 번이라고 생각하고 치른 그 시험. 이로 인해 나, 가족 친지 친구, 세계촌(물론 1도 관심 없겠지만)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공직 생활, 털끝의 연도 없던 대전에서의 완벽한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다.


2013년, 대전사람은 서울로 합격하고, 2014년 서울사람은 대전으로 합격했다. 우리는 이때부터 술만 마시면 전생 타령을 했다. 분명 K군이 나에게 전생에 큰 빚을 졌거나, 아니면 극악무도한 살인 또는 강도짓을 했거나, 어쩌면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 참여한 그가 조선병사인 나를 잔인하게 짓밟고 갔을지 모른다는 둥, 그래서 지금 그 엄청난 업을 갚게 되었다는 기이한 주담을 나누었다.


가끔은 그래도 서울로 다시 올라오고 싶지 않냐 그가 물으면 나는 도마 위 동태 대가리를 대칼로 내려치듯 탁 잘라 말한다.


절대.

한 번도.


장가를 가고, 가정을 꾸리고, 손을 얻게 해 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땅이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터전이고, 고향이다.


여기엔 오장육부가 터질 듯이 미어터지는 출근버스도, 발 디딜 틈도 없이 숨만 혹혹 내쉬는 지옥철도 없다. 사람, 마트, 교통, 술집, 자동차, 모든 것이 적당하다. 삼천만이 몰려 사는 과대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유가 상존한다.


문화예술이 부족하다 불평하는 혹자도 있지만 내겐 전혀 그렇지 않다. 대전 예술의 전당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전시립악단의 실력은 서울시립악단 못지않다. 수많은 거장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대략적이면서 섬세한, 단조로우면서 흥미로운, 맘에 드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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