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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약 Oct 27. 2019

 공동육아구역, 샘머리아파트

21세기 육아를 중심으로 탄생한 새로운 아파트모델



샘머리아파트 주변은 차보다 유모차가 많다. 출근길이면 아기 아빠, 아기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청사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퇴근길에도 엄마, 아빠는 아기를 찾아 집에 데려가기 바쁘다.

휴일이면 아파트 주변 공원은 그야말로 아기들 세상이다. 갓 태어난 신생아는 부모 품에 꽁꽁 싸여 바깥바람을 쐬고, 반년 이상되어 보이는 아기들은 유모차 속에서 멀찌감치 놀이터에서 뒤뚱거리는 선배 아기들을 구경하고 있다. 꿍꿍이야 꿍꿍이 정도의 10개월 차 친구들은 신나라 벤치 주변을 어슬렁댄다. '베이비 월드' 속에 갇혀 있다 보면, 출산율 최하위 국가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아내는 최근 샘머리 단지에서 아기 엄마 몇몇과 친구가 되었다. 보통 낮에 애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면 엄마들 사이에서는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시기의 아기를 유모차에 끌고 가는 이들을 탐색한다. 그러다가 ‘눈팅’이라도 하면 가벼운 눈인사로 몇 차례 교감을 주고받다가, “아기 몇 개월이에요?”, “아 우리 애도 몇 개월인데!” 하며 친분의 문을 연다. 그리고 되었다 싶으면 핸드폰 번호를 주고받으며 정식으로 약속을 잡는다.


이후에 친구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어차피 다 비슷한 ‘처지’의 군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부부공무원 아니면 공기관+공무원, 공기관+공기관, 공무원/공기관+민간기업 커플 범위 오차 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사 신설 내지 이전에 따라 외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내려온, 조금은 막막하고 적적하고 두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종의 ‘이주촌’이다.


[삽시다], 연필과 물감, 2017.12.17 / 백약



사는 문제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육아 휴직 중인 엄마들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면서 육아라는 하나의 주제로 급격히 가까워진다. 아기라는 강력한 끈으로 서로 간에 수시로 친구의 집에 놀러 간다.


이 집 아이는 우리 아이에 비해 이렇더라, 여기는 부모가 육아관이 요런 면에서 다르더라, 그래서 집에 장난감이 어떻고, 남편이랑 저렇게도 지내고, 시부모님은 얼마나 자주 오고 이런 세세한 이야기들을 아빠와 공유한다.


아빠 입장에서도 환영이다. 돌잔치는 어떻게 그리고 얼마큼의 규모로 할지, 어린이집은 각 기관마다 어떻게 다른지, 아기 재우는 방법은 무엇이 더 맞을지, 우리 부모님에게는 언제쯤 도움을 요청드릴지 좀 더 상세히 고민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계절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긴 아내와 아기다. 만추가 아까워 근처 공원에서 낙엽 지는 나무 아래 호시절의 사진을 남겼단다.


나는 샘머리아파트를 ‘공동육아구역’이라 부른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 똑같은 아파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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