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을 먹고 자라는 아이
보통은 "문 닫고 들어오세요."라고 말을 하지, "들어와서 문 닫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진 않습니다. 들어와서 문을 닫아야만 온전한 행동의 마무리가 될진대, 사람들은 흔히들 문을 닫고 들어오라 합니다. 참 우습지요. 이런 단순한 말에도 오류가 존재함을 모르고 살다가, 아이로 인해 새로이 알게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네. 나의 아들은 문을 닫고 들어오지 못할 아이입니다. 들어와서 문을 닫아야 들어와 앉았을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이는 그러합니다. 하나를 알면 열이 뭔가요, 둘이라도 아는 날엔 천재 일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질 판입니다. 허황된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를 제대로 해내기까지 하나를 백개로 다시 쪼개어 일러줘야 합니다. 나는 아이를 그렇게 키웠습니다. 그렇게 들어오라 하면 들어올 줄은 아는 아이로 자라주어 고마울 뿐입니다. 십 년을 그렇게 키웠어요. 마흔을 훌쩍 넘겨 돌아보는 나의 시간은 너무 짧기만 하고, 앞으로 내달려 알려줘야 할 일들이 백만 개쯤은 더 남은 것 같은데, 그걸 다시 백개로 쪼개야 한다니요. 아뿔싸!
이 아이와 행복하고 싶습니다. 아니, 내가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이유를 찾을 수 없이 짜증이 치솟네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대체 무얼 바라고 있는 걸까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에이프릴 같은 허황된 이상을 좇고 있는 걸까요. 지금으로도 충분히 넘쳐흐르는 행복의 조건을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는 걸까요. 스스로가 의구심이 듭니다.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내가요. 막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정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불안하고 불행합니다. 에이프릴로 빙의될 참이네요.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의 안부 전화를 받으며 눈물깨나 흘린 지 열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난 처절하게 사랑이 고프네요. 눈물 흠뻑 흘리며 안아달라는 딸아이의 넘치는 사랑을 받은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더없는 사랑을 탐하고 있네요. 뭐가 이리도 마음이 거지 같고 비루한지 모르겠습니다. 잔뜩 짜증이 솟구칩니다. 그날도 아닌데...
누가 잘했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나아질까요. 아니요. 그 따위. 누가 대단하다고 이야기해주면 나아질까요. 그도 아니네요. 그러면?! 이뤄 놓고 싶었던 내 인생의 꿈과 바람들을 순식간에 외면하고 달려온 지난 시간들에 보상을 바라고 있네요. 그러기엔 나만을 위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탓입니다. 양치질 하나를 열 단계쯤으로 나눠 알려줘야 하는 바람에 사라지는 나의 시간들에 안녕을 묻고 싶은 탓입니다. 그래서 이토록 처절하게 슬퍼요.
아이에게 알려줘야 할 백만 개쯤의 일을 다시 백개로 쪼개 내야 하는 내 인생의 속도를 참아내려니 저만치 찌그러져 있는 나의 꿈이 더더더 그립고 고픈 이유입니다. 그런 중에 조바심이 생겨날 뿐인데 이렇게나 가쁘기만 하네요.
그래요! 맞아요! 엄마가 편안해야 아이들도 편하다는 말을 굳건히 되뇌며, 아주 이기적으로 내 시간을 붙잡고 싶습니다. 에이프릴의 그것처럼 뜬 구름 같아 보일지라도 내달리고 싶습니다. 몸과 시간이 묶여 여전히 비루한 마음이 들더라도 찾아낼 거예요. 비집고 들어갈 나의 시간을요. 악착같이 이기적으로.
그러니까 아연아. 이제부터는 스스로 자는 거야. 네가 내어 준 오늘의 시간으로 엄마는 넋두리를 실컷 하였구나. 이 게 뭐라고 우리는 이렇게나 어렵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니. 이 모든 시간들도 사랑하게 되기를.
사랑한다. 나의 아가야. 이기적인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