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를 접을 수 있었던 계기는

발달장애가 궁금해서

by 반짝이는먼지

보글보글 멸치 육수 끓어오르는 구수한 향내가 퍼져 나올 때쯤, 물 부엌문이 벌컥 열리고 시어머님(이하 어머님)이 들어오십니다. 한 손엔 칼자루를, 다른 한 손엔 뿌리가 댕강 잘린 싱싱한 배추를 한 움큼 쥐고, 성큼성큼 들어와 싱크대에 툭 던져 놓으시고는 팔팔 끓어오르는 냄비의 불을 한 단계 줄여요. 수압이 세다 못해 콸콸 튀어 오르는 물줄기로 배추를 활활 씻으시곤 숭덩숭덩 썰어 내 육수 냄비로 투하! 된장 한 숟갈 툭 떨구곤 휘휘 저어 끓이는 어머님의 된장국은, 세상 최고입니다. 한 모금 후루룩 훑어 먹을 때면 겨울철 감기도 다 도망갈 그 개운한 국물 맛에 온 몸이 녹아드는 듯 마음까지 따뜻해져요.



마저 해올 것을 잘못했다시며 다시 칼자루를 들고나가신 어머님은 오래지 않아 시금치나물과 대파를 한 움큼 들고 오셨어요. 무심한 채소 목욕 후에 살짝 데쳐, 고소한 참기름 듬뿍 넣어 휘휘 무치시나니, 캬하~ 이건 우리 찬이가 세상 좋아하는 채소 무침이네요. 어머님이 가을 내 장만해 둔 깨와 참기름만 있다면 채소무침은 세상 별미 중의 별미가 됩니다.





시집온 지 4년 동안 명절 때마다 뵈 온 어머님의 일상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어요. 1년에 단 두 번 겪을 수 있었던 어머님의 일상 매무새는 '어?!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지?', '어?!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어?! 이렇게 살면 한 달에 백만 원이면 충분하겠다.', '어?! 굉장히 스마트하잖아?!'.


열여섯까지 내가 살던 그 시골이 여기가 아닌가 보다며, 내가 서울살이 하는 동안 시골의 삶도 썩 괜찮아졌나 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직장생활 13년 차에 접어들던 30대 중반의 여성에겐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이 싹트기 충분했지요.

하루 종일 장을 보지 않아도 음식이 풍요로웠고, 단숨에 올라가면 보이는 옥상 뷰 - 뒤로는 한라산, 앞으로는 짙은 녹음 - 는 여행에서 맛보는 그것과 견줄 이유조차 없었습니다. 현관 밖 정원이 힐링이요, 뒤로 펼쳐진 과수원이 별장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제야 밝히지만, 나의 18년 서울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한 동기의 가장 큰 파이는 "어머님"이셨어요.



동네잔치가 열리던 날이면 펑퍼짐한 몸빼를 휙 벗어던지고, 순식간에 겟 잇 뷰티를 이루시는 우리 어머님의 변신술은 유튜브에라도 올림이 마땅하다 싶게 혼자 보긴 여간 아까운 게 아니었습니다. 곱게 화장까지 마치고, 며느리가 사다 드린 명품백까지 툭 걸쳐 외출을 하시니, 오~ 이보다 더 도시스런(?) 어머님이 없어요. 시골 어른이라고 대충 입을 거라는 나의 편견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어머님의 패션 감각은 철마다 새로운 옷과 함께 업그레이드되었어요.



지옥철을 오가며 5센티 구두조차 짐스러워 벗어던졌던 나에게 감히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비루함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멋지다며 감탄사 연발하는 며느리 앞에 갖춰 입어야 할 때는 잘 입어줘야 한다며 총총총 외출하는 어머님의 뒷모습은 내 마음을 일렁이기에 충분했어요.



하늘 한 번 바라볼 여유 없이 지옥철을 타고 피곤한 눈 비비며 컴퓨터 앞에 앉아 열두 시간을 내리 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의 삶은 결코 행복이라는 글자와 맞닿는 기분이 들지 않았어요. 퇴근하고 8시가 되고서야 겨우 만나는 나의 세 살배기 아들은 발달장애인 줄도 모르고 외할미가 다 키워주겠거니 믿고 맡겼던 철없는 엄마였습니다.




주말이면 푸른 자연을 찾아 더디 자라는 아들과 놀아준다며 짐을 잔뜩 싸 집을 나섰죠. 자연을 찾아 왕복 4시간 이상을 허비하는 삶 속에 고민이 찾아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더디 자람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낄 때쯤, 내 눈에 들어온 어머님의 일상은 순식간에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어요. 투박하지만 건강했고, 인생 뭐 별 거 있냐며 순간에 충실하라는 일종의 가르침 같았죠.



그렇게 난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나의 아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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