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자판기와의 거래

나의 불행으로 너의 행복을 뽑을 수 있다면

by 반짝이는먼지

어쩌다 그런 학대 수준의 가정경제를 꾸렸는지는 떠올릴 길이 없습니다. 가계지출을 1/6로 줄인다는 건 전적으로 나의 소비생활에 달렸다는 걸 머리로는 몰랐고, 몸으로는 알았어요. 스스로에 대한 학대가 어쩌면 보상을 줄지도 모른다는 암묵적 믿음이었습니다. ’이 한 몸 욕망 없는 삶을 살 터이니, 찬이가 잃어버린 그것만은 모두 돌려다오.’라는 신파적 바람 같은 것이요. 아들의 잃어버린 능력만 되돌려 준다면, 나야 어찌 살던 감당 하겠노라는 - ‘구시대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절절한 -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엿으로라도 바꿔 먹을 정도의 화려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줄 수 있는 건 다 내어 주겠노라며 모든 신 앞에 나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500원 하는 500미리 삼다수 한 통이 아까워 정수기 물을 채워서 다녔어요. 구멍 난 양말은 기워 신었고, 헌 가구를 업어와 거실장으로 썼어요. 남편의 헌 옷을 줄여 찬이를 입히고, 찬이의 헌 옷을 줄여 딸에게 입혔어요. 딸은 늘 얇고 부드럽게 닳은 옷만 입었던 터라, 큰 맘먹고 새로 사준 옷은 입을 줄을 몰랐습니다. 20세기 어디쯤의 이야기가 아니라, 몇 년 전까지의 나의 이야기입니다. - 어쩌면 지금까지 일지도요.



심하게 어흥거리는 몸빼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 서울서 오자 씨(외할머니)가 내려왔어요. 몇십 년은 떨어져 지낸 사람처럼 손자 손녀를 쪽쪽 빨더니, 용돈까지 두둑이 챙겨주고는 이모 댁으로 향하며 한 마디 남기고 떠납니다. “시골에선 옷도 잘 챙겨 입어야 해. 그래야 사람 도리가 되는 법이야.” 엄마의 말에 난 이렇게 입으나 저렇게 입으나, 사는 건 다 똑같더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줌마가 되고 보니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 좋을 뿐이라고요. 왜 그렇게 가꾸는 것에 신경을 쓰며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새로 만난 내 삶이 꽤나 마음에 든다며 친정엄마 가슴에 무엇이 박힐지도 모를 말들 해댔어요. 딸의 옷도 리폼해서 입혔다고 예쁘지 않냐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자랑질을 해댔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랬어요. 이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찬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나 봅니다. 아등바등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오자 씨에게 알려주고 싶었죠. 서울의 직장 생활은 그야말로 아등바등 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행복하다 말하고 싶었고, 내가 행복하면 엄마도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내 앞에 닥친 고민은 오직 찬이가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것일 뿐, 그 외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몸빼가 어흥거리든, 매직 아이를 남발하든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생활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 수다라도 떠는 일은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쓸데없는 짓이 돼버렸습니다. 사교라는 게임에 스스로를 배제했고, 경제적인 소외 이전에 사회적인 소외를 스스로 자초했어요.



자발적 고립인으로 완벽히 다시 태어난 나에게,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506호 언니였어요. 일단 차를 타랍니다. 타고 보니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해요. 한 두어 번쯤 사양을 했던 차였어요. 사교 따위? 에 돈을 쓰지 않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극구 함께 가자는 말에 납치라도 당한 것처럼 그대로 몸을 실었죠. 5분 정도를 달려 풀이 무성한 삼나무 길을 지납니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멘트 다리를 건너 과수원 복판의 창고 앞에 멈춘 그곳엔 고즈넉한 시골 창고를 개조한 음식점이 하나 있었어요. 나무로 된 묵직한 문을 열었더니 지인으로 추정되는 두 분이 앉아 있었죠. 두 분은 처음 보는 나를 이미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이리 와 앉으라며 손짓했어요. 그리고는 미리 주문을 해뒀다고 합니다. 같은 아파트 사는 언니들이라고 간단히 소개를 받긴 했지만, 흡사 조직 아니면 조직의 와이프쯤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정도가 됐어요. 생각이 깊어지려던 찰나에 맞춰 음식이 나왔습니다. 어색한 마음이 수그러드는 듯했어요.



기린 R - 그립다



브리타를 얹어 먹는 토르티야가 나오고, 샐러드가 나오고, 리소토가 나오고, 피자가 나온 뒤, 스파게티까지 훑었습니다. 음식을 먹는 사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눴는지 기억이 없어요. 아마 이런 만남은 역시 쓸데없다는 생각과, 어쩔 수 없이 음식은 맛있다는 생각과, 곧 있으면 찬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과, 쓸데없이 돈이 나가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식 커피까지 느긋하게 먹고 일어나려니 앞에 앉은 언니님이 계산서를 부릅니다. 적지 않은 돈이 나왔을 터였는 데 말이죠. 당연히 더치페이를 생각하고 있었건만, 언니님은 자연스럽게 값을 치릅니다. 그리고, 다른 언니 둘은 늘 그랬다는 듯 미동조차 없이 그대로 앉아 있는 거예요. 안절부절하며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부끄럽게 꺼내는 내게 - 먹은 밥값은 스스로 하겠다는 의지를 비췄죠 - 이쪽 언니는 그만두라며 팔을 젔습니다.



처음 보는 이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호사를 베푸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돈 잘 버는 언니니까 얻어먹어도 된다는 말만 해요. 그리고 그다음에도, 다음다음도, 자꾸만 뭘 사줘요.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걸 깨우치고도 남을 서른 중반의 나이었는지라, 조직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세 번째쯤 얻어먹을 때는 영락없이 조직에 몸 담을 준비를 하며 506호 언니 차에 몸을 실었어요. 역시나 사교는 쓸데없다며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를 탓했죠.



시간이 흐르고 몇 해가 지나, 아파트에 살던 언니들이 하나둘 이사를 갔습니다. 우리도 이사를 가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알게 됐어요. 내가 받은 이 모든 호의들이 환대였다는 걸요. 그리고 생각했던 대로 언니들은 조직이 맞았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의 “부녀회”였어요. 헛헛한 시골 생활에서 너 나할 것 없이 아는 처지에 함께 먹는 한 끼의 식사로 위로와 안녕을 전하는 일종의 풍습과도 같은 거였어요.



시골 생활을 견디기 위해 나를 챙기고 가꾸며 사람답게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그때의 오자 씨는 일러뒀던 거였습니다. 내 몸빼가 어흥거리는지 꽃을 피우는지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암암리에 모두가 알고 있는 곳이 시골 생활이라는 걸 알려주려고 말이죠.



이젠 엉뚱하게 나를 제물로 바치는 따위의 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딸이 느끼는 행복이 엄마에겐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행복이 미래의 그것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나의 불행을 달그락 넣고는 너의 행복으로 대신하겠다는 자판기 인생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내가 원했던 건 신파가 아니니까요. 깔끔하고 단정한 마음을 가진, 감정에 다소 물기를 뺀 딱 그 정도의 삶을 바랄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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