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

어느 날엔 당근만 주었더니, 채찍질까지 스스로 하더라는 이야기

by 반짝이는먼지



"3과 7은 10의 짝꿍수니까 3과 7을 더하면 10!"

"10에서 5를 빼면, 5의 짝꿍수는 5니까 답은 5!"


저녁을 준비하다 들리는 찬이의 목소리에, 귀가 번쩍 트이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자다가도 돌아눕는 찬이의 기척에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일어날 정도의 기민함을 갖춘 게 나이기 때문입니다. 뭐지? 이 소리는! 저녁을 하다 말고 한 손에는 국자를 든 채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돌진합니다. 웬걸.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 문제지를 풀고 있네요?! 누가요? 찬이가요! 응! 그 찬이가요!


"4 더하기 5는... 4와 5는 짝꿍수가 아닌데... 뭐지?"


혼잣말 작렬합니다. 저리 말하면서 푸는 습관이 되어서야 어디 시험이라도 보러 갈 수 있겠나, 같은 쓸데없는 고민을 하면서 찬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분명 좀 전에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갈아달라길래, 알아서 갈라고 일러뒀건만 책상에 앉아 저러고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순간 빵! 하고 웃음이 터졌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음이 나요. 나와 찬이가 안쓰럽다가, 나와 찬이가 대견하다가, 그랬어요. 인간도 결국 작용 반작용의 동물인 겐가,라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단순함을 포착하며, 신이 나게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건 뭐지? 파블로프의 개 실험도 아닌 것이 신기할 지경이 되었죠. 그대로 웃음은 한동안 멈추질 않았는데, 어찌 됐건 찬이의 당근과 채찍은 한동안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자꾸만 웃픈 웃음이 났습니다.






때는 4개월 전쯤이었어요. 길었던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 다시 이어진 등교 불가의 생활 속에 뒹굴거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불편한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던 차였어요. 더 이상 놀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홈스쿨을 시작했지요.



열두 살의 찬이는 2~3학년 수준의 국어 학습지를 풀 수 있었는데, 생각을 묻는 문제가 아닌 바에 단순 암기의 문제는 곧잘 푸는 편이었습니다. 문제에 오탈자라도 나오는 날엔 문제 내는 사람이 왜 실수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느라 혼을 빼기도 했죠. 문제는 수학인데 오랫동안 답보상태였던 만큼, 시작이 어려웠어요.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수학이라는 것은 근 5년간 수세기에만 총력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시도조차 없었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 맞겠네요. 4살 수준의 산수라도 시작을 해야 했습니다. 가장 싫어하던 게 수학이었던 터라 강화제 또한 강력한 게 필요했는데, 바로 그 대단하신 스마트폰이었습니다.



한두 시간을 버티는 스마트폰 공기계의 배터리를 갈아주는 대가로 문제지 두장을 풀기로 합의를 봤던 거죠. 체결된 협정에 따라 순조로운 이행을 하기까지 하루 이틀의 난항을 겪기도 했으나, 무조건 떨어지는 문제지 두 장(채찍)에 스마트폰(당근)이라는 강력한 강화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어요. 아주 간단한 숫자 세기부터 시작을 했더니 4개월간 발전한 수학이 4년 동안의 발전을 추월하기 시작했어요. 반복하고 반복하는 사이, 미로도 시작할 수 있게 됐고, 시지각 문제지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배터리만 줬더니, 스스로 문제까지 풀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매일 스마트폰을 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죠?! 쿨럭. - 정확히 두 장을 풀고 가요! 영민하지 못한 이유일 테지만, 영민하게 되는 그 날까지만이라도 습관처럼 유지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다 싶습니다. 영민이가 보고 싶습니다.






찬이를 키우며 쉬웠던 일이 과연 있었나 싶지만, 그중 으뜸은 "동기"에 관한 것이었어요. 딸아이가 또래의 아이들을 보며 하고자 하는 욕구를 키웠던 것과 달리, 타인에겐 관심이 없던 찬이에게 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하는 건, 몹시 어려운 문제였어요. 사탕과 젤리가 당근이 될 수밖에 없었고, 입안에 백여만 원의 돈을 들인 후에야 사탕과 젤리는 영원한 강화제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백여만 원 이상의 동기를 가져다준 사탕과 젤리에게 감사를 전함과 동시에 이제는 안녕을 고해야 했죠. 그럼에도 한동안 사탕과 젤리를 달고 살았지만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후로 대체 강화제는 장난감이 되기도 했고, 선물이 되기도 했고, 산을 오르지 않겠다는 부적 강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습관이 되기도 하지만, 계속할 수 있으려면 기분 좋은 무엇과 함께 해야 오래갈 수 있다는 것도 함께 배우게 됐어요. 샤워 뒤의 개운함을 알게 된 찬이가 스스로 샤워하러 들어가기 시작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매일 요가를 하려면, 요가를 할 때마다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과 같아요. 어제보다 아사나(자세)가 더 잘 되더라는 성취감이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향초를 켜고 아이들이 없는 한가한 시간을 노리며,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매일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매일 해야 하는 세수와 양치질, 옷 입기와 양말 신기, 머리단장에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법. 찬이에게 지금은 입 발린 나의 칭찬이 최선이지만, 했을 때 개운하고 좋은 기분을 스스로 장착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제 5학년이에요. 졸업 전에 라면 하나 정도는 계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되면 끓여주는 라면 하나 얻어먹을 그 날이 성큼 다가올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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