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을 꽉 채운 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찬이랑 뭐 했냐면, 병원 다니기

by 반짝이는먼지



양손에 가득 약봉지가 들려 있는 탓에, 찬이에게 비밀번호 좀 눌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엄마 손이 없다 하니, 마지못해 번호를 눌러 줍니다. 한 번은 틀리고, 두 번째에 열어요. 드디어 집입니다.



신발을 벗자마자 짐꾸러미들을 거실 바닥에 내팽개쳐 놓고, 아빠방으로 직진하려는 찬이를 붙잡아요. 손 먼저 씻으라고 일러두고, 중문의 모퉁이에 기대어 섰습니다. 양말을 하나 둘 벗으며, 고개를 쳐들어 본 거실 안은 이미 붉게 물들었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건가, 오후 햇살을 느낄 새도 없이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간 흔적들을 치우기 바쁩니다. 아이들이 갈아입은 두어 개의 옷가지들과 젖은 수건들, 먹다 남은 아침식사의 흔적들과 여기저기 흩어진 리모컨, 그 시간에도 잊지 않은 깨알 같은 종이접기 작품들까지 모두 다 치우고 나니, 세탁이 끝나고도 오랬을 빨래들을 확인합니다. 설거지통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침대를 정리합니다. 간밤에 흘린 혈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다 늦은 오후에 이불빨래를 해야 할 참입니다. 세탁기를 다시 돌리고, 청소기도 돌립니다.



한바탕 치웠으니 이제 저녁을 준비할 차례입니다. "엄마! 나 배고파요!"라고 말은 하면서도 압력 솥밥은 하지 말라는 아들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며 무심하게 밥을 지어요. 냉장고에서 잡히는 대로 꺼내 든 갖가지 재료들을 지지고 볶는 동안, 요리는 손이 하고 머릿속은 텅 비웁니다.




학교를 가자! 이제는!



99일 만의 등교라며 등교 개학의 마지막 차수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니, 난 100일을 채운 곰이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등교 개학 마지막 차수였던 찬이가 100일째인 오늘, 등교를 못 한 탓입니다. 새벽 한 시, 38도의 열 때문에요.


열이 나면 일단 학교를 못 가네요. 며칠 전부터 비염끼가 심상치가 않더니, 급기야 열이 나는 모양입니다. 열을 확인하고 해열제를 깨워 먹인 뒤, 물수건으로 벅벅 이마를 쓸어내리며 한참을 껌뻑여요. 30분쯤 지났을까, 돌아 눕던 찬이 코에서 꺼먼 것이 스멀스멀 기어 나옵니다. 허걱! 식겁! 기겁! 코피입니다. 이번 주만 다섯 번째의 코피. 이불 빨래를 오늘도 안 하면 섭섭할까 봐 매일같이 쏟아내는 코피에 짜증까지 덮쳐 옵니다.



뭔가 큰 병에 걸린 것인가, 알 수 없는 열과 코피의 궁금함을 안은채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어요. 학교에도 알렸죠. 증빙이 필요하다는 선생님의 전화 회신이 와요. 그리고, 곧 1339를 눌렀습니다. 통화가 안 되네요. 30분의 시도 끝에 얻은 회답은 관할 보건소로 문의하랍니다. 그래, 관할 보건소로 전화를 겁니다. "비상 통화로 연결 중입니다."...........

스무 번을 걸었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어요. 시 관할 보건소로 전화를 합니다. 상냥한 어투의 상담원은 구구절절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원래 가려고 했던 병원으로 그냥 가면 된다고 합니다. 지금 말한 그대로, 병원에 가서 다시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 장난하는 줄 알았습니다. -



이 한 단락의 행위를 하기까지 내가 들인 시간은 오전 8시 24분부터 9시 27분까지 약 한 시간을 넘겼어요. 아무리 찬이의 증세가 코로나 19로 의심되지 않는다 해도, 엄마의 짐작만으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에 따라 철두철미하게 착실히 따랐을 뿐인데 말입니다. 참으려고 해도 화가 납니다. 100일의 곰탱이가 되기 전에 난 이 아이를 어서 학교에 보내야만 했는데, 보내지 못함이 갑갑하고 화가 났어요. 화를 끌어안고, 40분을 내달려 병원으로 향합니다. 접수를 하고, 대기를 하기까지 또 한 시간, 진료를 하고, 이비인후과 진료까지 마친 시각이 12시 40분입니다. 수납을 하고 처방전과 함께 약국으로 향해 약을 받은 시각이 1시 30분,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들고 다시 집으로 내달려 도착한 시각이 3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한 일이라고는 병원을 다녀온 일 밖에 없는데, 하루가 다 지나가버렸어요. 그리고 열두 살의 찬이를 키우는 동안 이렇게 보낸 하루하루들이 겹겹이 많았다는 사실을 자각해요. 마음 한구석이 움찔거립니다.



결국 난 100일의 곰탱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100일을 버티며 사람이 될 터이니 제발 아프지 말자고 빌어볼 뿐이에요. 코로나도 제발 좀 가야 할 때 아니냐며 오늘 밤 같이 빌어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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