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를 글로 배웠습니다

육아를 글로 배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

by 반짝이는먼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조정석 배우의 수어 장면을 수십 번을 돌려봤습니다. 와. 아이의 아빠가 점점 건강해진다는 수어를 하는데, 점점 눈이 커집니다! 와와와! 브라비!


조정석은 정말 찐이다. 출처 : tvN



그의 수어가 완벽하다 하는 이유는 표정과 몸짓에 담긴 감정 표현이 제대로여서일 겁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냥 쉬워요. 말이 그냥 쉽습니다. 아빠를 걱정할 아이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의사를 전하려는 마음까지 보이니 말입니다. '나 너랑 얘기하고 싶어'라며 온몸으로 말을 합니다. 조정석 배우는 뒤통수에도 표정이 있을 것만 같아요. 이런 능력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요. 공부를 해서 될 일이었다면, 연기 공부를 해뒀어야 했나 싶습니다.



어떤 목소리를 낼까 궁금하기도 전에 말을 했던 둘째에 비해,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했던 찬이 생각이 났어요. 보통은 12개월이면 들을 단어를 50개월에 듣다 보니, 그 시간을 궁금함과 걱정과 기대감으로 지냈어요. 애타게 기다리던 그때의 마음이 소환됐습니다.



숫자 플래시카드 - 보기만 해도 재미없다 ㅜㅜ



매일 플래시카드를 넘겨줬어요. 엄마 눈은 그렇게 쳐다도 안 보는 애가, 문자는 그렇게 잘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마다 동화책도 읽어줬어요. 반복의 힘이 컸는지, 찬이는 말이 트이는 것과 동시에 한글을 알았어요. 신기한 일이었지만, 역시 모든 일엔 순서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얼굴이 아닌 카드를 보며 배운 말은 대화의 말이 되기가 어려웠어요. 아뿔싸. 표정 없이 글로 배운 말은 억양을 따로 배워야 했습니다. 아! 사람의 표정만으로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아야 하는 순간은 아직도 어렵고요. 이제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제스처의 의미를 배워 나갑니다. 기계적인 말투가 사람의 말투가 되기까지 정정하기를 반복하는 중이에요.



게다가 말만 해서는 끝이 나는 게 아니었어요. 궁극적으로는 대화가 되어야 했어요. 표정이 중요했고, 억양이 중요했고, 제스처가 중요하다는 걸 찬이 입이 터진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하아. 마주 보면서 익혀야 할 대화를 글로 배웠으니, 당연한 결과라 해도 억울해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었죠. 맥이 풀릴 새도 없이 이 마저도 다행이라 여겨야 했으니까요. 억양도 배워야 하고, 표정도 가르쳐야 했으니까요.



결국 이렇게 돌고 돌 거였다면, 처음부터 조정석님 버금가는 연기력을 갖출 걸 그랬습니다. “온몸으로 말해요”를 처음부터 실현시켰다면 표정 따로, 억양 따로 배울 일은 없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아들이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단정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표정에 인색했던 게 아쉽기만 하네요. 풍부한 표현으로 살갑게 대하지 못한 것만 같아 미안했습니다.



눈을 점점 크게 뜨며 아빠가 나아질 거라 표현하는 조정석 님의 표정엔 아이가 어떻게 볼지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있어요.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는 마음을 담아 말을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대화라는 걸 알려줘요. 나는 찬이의 마음을 얼마나 읽으려 했을까 되돌아봅니다. 찬이가 원하고 바라던 마음을 내가 먼저 얼마나 읽어줬을까 하고요. 자꾸만 그때 생각이 나요.



그리고 오늘, 장난을 하는 동생에게 찬이가 한 마디 하네요. 오빠 팔이 몰랑이 같다며 자꾸 조물딱 거리던 차였습니다. "내가 장난감이냐!" 내 팔이 장난감은 아닌데, 장난감 다루듯 하는 동생에게 좋지 않은 기분을 말해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던가 봐요. 억양까지 제대로 넣어 말을 하는 그 순간을 보자, 눈물이 날 지경이 됏습니다.



"내가 장난감이냐."

이 말을 잊지 못할 것만 같은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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