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속도가 벌어지는 이유에 대한 사색

이제는 엄마 말고 친구

by 반짝이는먼지

잠자리에 들려던 아연이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 마디 합니다.

“엄마! 학교는 공부만 하러 가는 건 아닌 거 같아.”

"응?"

“학교는 말이지. 공부 말고도 친구들이랑 놀려고 가는 것 같기도 해. 그래서 즐거워!”

흐뭇하게 미소 짓게 만드는 아연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의 중간을 지나는 아연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찬이에겐 없는 게 뭔지 자연스레 알게 돼요. 친구만 있다면 혼자서는 걸어가지 못할 아침 등교 길도 너무나 즐거운 길이 되고, 세상 못할 일 없는 천하무적의 용기를 장착하게 되지요. 친구만 있다면 문구점에서 물건을 사는 일, 가게에서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사는 일 같은 걸 어렵지 않게 해낼 수가 있어요. 엄마가 그렇게 가 보라 해도 가기 싫어하던 피아노 학원은 강남을 가듯 즐거운 곳이 되고야 마는 “친구 매직”을 아연이는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찬이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는데요. 다름 아닌 세 살 터울의 동생 아연이입니다. 엄마가 해줄 수 없는 눈높이 말투를 알려주고, 역할 놀이, 눈 맞춤, 상호 대화를 모두 해주는 유일한 친구죠. 그 덕에 찬이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고, 나 혼자였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시간들을 재밌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 자라 준 나의 아들 딸이 더없이 사랑스러운 요즘, 찬이와 아연이의 발달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느낌이 들어요.



아연이의 발달 속도가 찬이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연이의 성장 초점이 더 이상 엄마의 도움을 바라지 않을 정도가 되면서 펼쳐지는 일이랄까요. 엄마 대신 친구와 함께 커 가는 시기, 이쯤부터 벌어지는 성장의 격차는 찬이가 늦어서가 아니라 아연이가 더 빨라졌기 때문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선배 엄마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장애등급이 낮아지고, 더욱 격차가 벌어진다 했던 말을 이제야 몸소 체험하고 있어요. 당시에는 엄마가 손만 놓지 않으면 아이의 발달은 멈추지 않을 텐데, 왜 선배 엄마들은 손을 놓고 벌어지는 격차를 관망하고만 있을까 오만한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가 해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찬이도 나름의 발달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연이가 친구와 함께 시도하고 재미를 느끼며 깨치는 것과는 사뭇 다르네요. 문구점에서 슬라임을 사 와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거나, 파자마 파티를 하고 싶다며 파자마 차림으로 동네를 누비다 왔다거나, 친구들을 매일 같이 집으로 초대해 시시덕거리며 난장놀이를 합니다. 한두 명의 친구에서 다서 여섯의 친구들과 넓고 다양한 자극을 무차별적으로 흡수하는 모습을 봐요.



그동안의 발달이 배수의 발달이었다면, 요즘은 제곱의 발달로 빨라진 느낌입니다. 친구들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성향들을 여지없이 흡수하며 새로운 사회적 스킬을 보여주는 거죠.



친구와 걸어서 집에 도착했노라는 전화를 받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현관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치이이이익!”, "삐삐 삐삐!"

이 게 무슨 소린가 놀란 눈으로 아연이를 바라보자,

"엄마! 배가 고파서 밥을 했어!"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3분 남았다는 전기밥솥 소리는 폭죽이라도 터트리는 것처럼 거실 전체에 부서지듯 울려 퍼져요. 쌀은 세 번이나 씻었고 물은 친구가 맞춰줬다며 뽐내듯 이야기를 합니다. 밥 짓기를 본인이 해내고야 말았다는 이 대단한 모험담을 열렬하게 엄마에게 쏟아내요. 주의를 주는 일은 조금 뒤로 미뤄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희열에 차 있었고, 덕분에 우린 아연이가 한 밥에 조미김을 얹어 맛있는 요기를 했습니다. 엄마 없이 세상 속으로 마구 뛰어 들어가는 아연이의 성장에 놀라운 요즘을 살고 있어요. 아연이의 밥 짓기는 동네방네 소문이 날 정도로 화자 되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칭찬과 함께 한동안의 에피소드로 지나갔습니다.



그럼 찬이의 밥 짓기는 어떻게 지나갈까요.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재미는 커녕 배워야 할 때가 되어서야 억지로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어요. 배울 수 있다면야 다행이다 싶은 생각까지 드는 걸 보니, 서글픈 생각은 들어온 김에 노를 젓자는 가 봅니다. '싫다는 태권도 학원에라도 무작정 보내볼까', '교회라도 나가볼까', '그도 아니면 아연이 동생을 또 하나 낳아줄까'를 걱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각설하고요. 이렇든 저렇든 결국에는 찬이가 받아들이는 관심과 흥미가 아연이의 그것과는 견줄 수 없음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점점 더 벌어지겠지요. 갈림길에서 아연이는 오빠의 손을 조금씩 놓을 테지요.


그저 찬이가 외롭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보~ 그래서 말인데, 여보가 잠깐씩 같이 놀고, 아연이가 잠깐씩 같이 놀고, 나도 잠깐씩 같이 놀면 찬이는 외롭지 않을 거야. 그렇지?! 그렇게 같이 같이 놀자. 정 안 되면 내가 평생 친구라도 되지 뭐. 엄마랑 같이 놀자고 말하기도 전에 찬이는 이미, "엄마랑 노는 건 재미없어요."라고 이야기할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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