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능력의 의미
창 밖에 바람 한 점 없이 내리는 굵은 빗줄기가 커튼이라도 만들어 낸 양, 아늑한 느낌마저 드는 아침입니다. 우산을 챙겨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왔어요. 커피 한 잔 내리고 앉았네요. 방 한 구석이 어수룩합니다. 스탠드 불빛 하나 켰더니, 책상 앞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보입니다.
"학교 가면 너무 좋은 게 있어!!! 중간 놀이시간에 오빠랑 놀 수 있다는 거~!"
해맑은 얼굴로 이런저런 생각에 즐거웠다며 한참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등교한 아연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합니다. 오빠와 함께 놀아서 좋다는 이 아이는 어디서 온 선물인가 싶게 사랑스러운 요즘입니다. 꿈같은 이 시간 속에 영원히 살고만 싶어요.
좋은 것만 보며 살고 싶고, 즐거운 일들만 겪으며 살고 싶어요. 세상의 억울함, 분노, 화, 슬픔 같은 소식들에 귀를 막고 싶어요. 창 밖에 드리워진 빗줄기 커튼처럼 아늑한 내 세상에서 평온한 이 마음에 돌 던지는 이 없이 그렇게 살고 싶은 날입니다.
불구덩이의 코알라가 물을 먹는 모습만 봐도 한없이 슬퍼지는 나로서는 도대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되는 탓인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고만 있어도 냉동인간이 되어버리는 바보 같은 습성을 가지고 있어요.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의 좋지 않은 마음을 스스로가 감당하기가 버거워요. 무얼 하면 좋을지 생각까지 멈춰 버리는 탓입니다. 덕분에 난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식까지 감감하게 귀를 막고야 마는, 썩 좋지 않은 습성을 가졌습니다.
맑기만 한 아연이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보여요. 다른 친구들의 어려운 면에 눈과 귀를 좀 기울여도 좋겠다 싶은데, 관심조차 없는 모습이 자꾸 보여요.
아름다운 세상만을 좇는 나의 성향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으셨는지, 신은 나에게 찬이라는 거울을 보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에겐, 나를 비추는 거울이 두 개 있네요. 하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원 없이 바라보기를 원하는 날 닮은 아연이고, 다른 하나는 서투른 내 마음을 가감 없이 비추며 좋은 것만 보며 살 수 없다 일러주는 마음꼬맹이 찬이입니다.
오늘도 세상은 결코 깨끗하지만은 않은 거라는 걸 여지없이 일러주고 가셨어요. 밥 방울 파티라도 한 듯 온 식탁에 널려 두고 간 찬이의 밥 방울을 한 톨씩 집어 들고 있자니 멈추지 않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찹니다.
찬이는 엄마가 모르고 살던 세상을 참 많이도 알려줬네요. 이 세상 좀 보라고, 이쪽도 보고 저쪽도 보며 살라고, 자신을 희생해 가며?! 엄마의 시야를 넓혀주고 있나 봐요. 찬이 치료를 위해 내림굿 터까지 몸소 찾아갔으니 말이죠. ‘눈이 확 돌아가더라. 찬이야!’
찬이가 아니었다면,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했을까요. 아니, 생각을 했더라도 실행을 했을까요. 찬이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난, 빛나는 명품백을 모시고 지옥철을 오가는 콩나물 같은 회사원의 삶을 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찬이가 아니었다면, 현준이를 알지 못했을 테고, 하준이를 알지 못했을 테고, 준원이를 알지 못했을 겁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내 삶의 기준이 돈과 명예에 꽂혀 있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말이죠.
내가 가진 능력을 뽐 내기 바빴지, 이 능력이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까지 능력으로 뭘 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지, 나의 능력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능력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능력을 다시 보게 하는 찬이라는 거울은 참 특별해요. 덕분에 나의 능력을 계속 다듬어 사용해야 할 책임감이 생겼어요.
갈고닦으며,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진정 의미 있는 삶이라는 걸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오늘도 찬이는 '엄마! 똑바로 좀 봐 바요!' 라며 등교를 했네요. '응! 그래! 똑바로 볼게. 의미 있게 사는 삶을 다시 새길게.'
찬이가 먼저 오고 아연이가 후에 온 것은, 찬이로 더 많은 세상을 보고 깨달아 온전한 삶을 살아가되 많이 힘들지 않게 아연이라는 거울을 내어주신 것 같습니다. 내가 나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오늘도 나의 거울 두 개를 잘 닦아줄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