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라 쓰기 싫은 내가 브런치를 만났습니다
“장애”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장해!"라는 어감 좋은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해"라는 말 조차 "장애"라고 들릴 지경이라, “장하다”는 말조차 피해 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찬이로 인해 알게 된 삶의 에너지 같은 걸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긴 했는데, "발달장애"라는 말을 쓰고 싶지가 않았어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글 쓰기는 진도가 나가질 않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만 자꾸 커져 갔습니다. 어찌 됐든 "장애"라는 단어만이라도 쓰지 않고 에둘러 표현할 수 있는 게 글이겠다는 기대감이 생겨날 무렵, 브런치를 만났습니다.
작가 소개란을 적는데, "발달장애"를 쓰지 않으면 도저히 소개가 되지 않는 내 삶이 어찌나 구차하게 느껴지던지요. 장애가 과연 구차한가를 두고 내내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며, 꾸역꾸역 생각해낸 단어가 "마음꼬맹이"였습니다. 그리곤 "마음꼬맹이 아들을 키우며..."라고 첫 문장을 풀어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어요.
이거면 되겠네! 그래! 이제부터 마음꼬맹이! 좋았어! 발달장애 찬이보다는 왠지 귀염상 한 우리 아들을 제대로 표현해주는 단어다 싶었습니다. 찬이로 인한 나의 삶도 꽤 괜찮다고 외치고 싶었어요. 남들이 괜찮다 이야기해주길 바라는 스스로에 대한 회고록이자, 터닝포인트를 만들 계기가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달까요.
글 하나를 올리고, 또 읽고, 다시 올리기를 반복하다 문득, 친절하지 않은 독백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글 쓰기를 공부해 본 적도 없는 내가 글을 쓴다고 설레발을 쳤으니, 당연한 일이다 싶었지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쓰겠다는 욕심은 없었고, 찬이와의 10년이라는 시간을 정리하며 새로운 10년을 맞이하고자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부담 없이 계속 썼어요. 킵고잉!
그런데, 흔하게 쓰던 글과는 달리, 브런치라는 매체는 뭔가 더욱 정제되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 같은 걸 불러왔어요. 나도 모르게 작가가 되려 하는 기분이랄까. 작가 지망생도 아닌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행위만으로 작가 코스프레쯤 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글이 가벼워지지가 않아 답답했지요. 자꾸만 글을 쓰다가 만나는 나의 상황이 "발달장애 찬이"라는 말이 없으면 쓸 이야기가 없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어요. 좀 더 부드럽게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가다 보니 이야기의 맥락이 서지 않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장애"라는 말을 전방에 내세우기로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장애아 엄마"라고 말이죠. 야심 찼던 에둘러 표현하기 작전이 실패를 하자, 참담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장애"라는 말을 앞세운 순간, 난 장애를 극복하는 글이 아닌 이상 쓸 이야기가 없는가, 라며 길을 잃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나와 찬이의 불굴의 노력으로 이 불리함이라는 장애를 극복한 성공신화가 아니라면 관심조차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장애를 딛고 일어설 당사자는 생각조차 없는데 말입니다.
결국, "장애"라는 말만 들어도 '힘들었겠네'라는 기본 무드를 깔고 들어가야 하는 나의 글 쓰기가 안쓰러워서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사는 일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이야기를 할래도 쓰다 보면 안쓰러운 글이 되고야 마는 것 같았죠. 나의 생각을 좀 더 멋지게 표현하고 싶은 개멋을 들켜버린 기분에 착잡한 심정이 들었어요. 현타가 왔어요.
어째서 “장애”라는 단어는 이다지도 역경과 고난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만 하는 건지, 그렇게 힘들기만 한 삶도 아닌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단어의 잔상은 역경과 고난이 하나의 세트처럼 떠올라, 영 마음에 들지가 않는 겁니다.
글 쓰기에 “장애"를 만났어요. 더 나아갈 수가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이 장애물은 어떻게 치워야 하지?’ 생각하기 시작했죠. 피하고 싶었던 "장애"라는 단어가 다르게 다가왔어요. ‘그야말로 장애물이구나’라고 느껴졌지요.
에두르지 못할 장애물이라면 정면돌파밖에 도리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이왕 장애라는 말을 깔기로 한 이상 힘들었겠다 생각될 나의 기본 무드는 피할 수 없는 피부색쯤으로 생각하기로 했죠. 영화 <그린북>의 돈 셜리 박사라도 된 것처럼 말이죠. 벗겨내려야 벗겨낼 수 없었던 피부색이지만, 끝까지 고고한 돈 셜리 박사의 매너처럼 꼿꼿하게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가다 보면 결국엔 재즈 피아노를 치는 박사의 흥이 나에게도 절로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돈 셜리 박사는 흑인이라고 꼭 재즈를 연주하는 게 당연한 건 아니라 말해요.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일 뿐, 남들이 어찌 보든 돈 셜리 박사는 그냥 피아니스트이길 자처합니다.
“장애”를 그동안 바라봐왔던 나의 마음이 문제였던 거지, “장애”라는 단어는 아무 잘못이 없었어요. 도대체 난 “장애”에 어떤 심각한 이미지를 심어놓았던 걸까요.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발달장애 찬이”의 이야기라고 쓰면서 또 힘든 이야기만 하려 했나 봐요. 다시 “장애”라는 단어에 힘든 이미지를 추가하려 했던가 봐요. 김지혜 작가가 얘기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바로 저였어요.
지금부터는 그냥 엄마 하려고요. 발달장애 찬이 엄마, 라며 자처했던 꼬리표를 바꾸려고요. 지금부터 전 그냥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