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ca Z2X- 운남성 차마고도로의 여정
사진을 처음 시작했던 시기부터 갖게 된 로망은 역시 라이카였다. 브레송처럼 코트를 입고 날렵하고 우아하게 라이카를 들고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다.(일단 내가 라이카를 든다고 해도 남들에게 그렇게 보일리 만무하다.) 그러나 라이카의 가격은 현실의 나에겐 너무나도 머나먼 당신이었다. 1999년도에 이베이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 검색 1순위는 역시 라이카였다. M3가 너무나도 갖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운 좋게 바르낙 카메라와 렌즈 하나를 공짜와 다름없는 가격에 덥석하니 낙찰받고 싶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이베이에서 근사한 라이카 전용 가죽 가방을 발견해 거금 100달러를 내고 구입을 하게 되었다. 우체국에서 돈을 전신환으로 바꾸고 우편으로 유럽에 보냈다. 라이카는 살 능력이 안 됐지만 그 가방을 가지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 라이카가 내 손에 들어올 것만 같았다. 한 달이 안 걸려 한국에 가방이 도착했다. 그런데 며칠 안 되어 공대에 다니던 친구와 그리고 그의 여친과 즐겁게 술을 마시고 헤어진 날 그 가방을 잃어버렸다. 라이카는 꿈도 꾸지 말라는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 일부러 라이카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아니 어차피 나에겐 불가능한 저 세상의 물건이라 생각하고 일부러 의도적으로 욕망을 차단했다. 관심을 갖을수록 더 괴로워질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금기가 되었다.
내 대학시절의 기억은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급물살을 튼 남북교류와 통일에 다들 희망을 갖았지만 현실은 달콤하게 맞보았던 경제적 풍요로움에 갑자기 닥친 IMF였다. 그런 나의 대학시절인 X세대의 시대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콤팩트 카메라가 있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생산하고 사라진 라이카 Z2X이다. 라이카 M시리즈와 버금가는 가격의 Minilux는 꿈조차도 꾸지 않았고 레트로 한 C 시리즈가 마음에 들었지만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Z2X를 처음으로 구입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학생회 활동으로 짬을 내어 사진을 찍을 시간이 사라져 바쁜 일상이라도 틈틈이 기록하기 위해 들이게 된 것이다. 중고가 아닌 게다가 정품을 구입한 것도 역시 처음이었고 지금도 박스와 보증서, 설명서까지 모두 가지고 있다. 물론 라이카는 나에게 금지된 것이었지만 당시 삼성의 콤팩트 카메라의 가격과 그리 다르지 않아 (10만원 정도 차이?) 그 정도는 가져도 된다고 합리화했다.
구입을 한 후로 Z2X에 대해 그다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자동카메라인데 라이카 로고 값이 조금 얹혀져 있는 카메라 정도로 생각했다. 게다가 단렌즈만을 신봉하는 나로서는 줌렌즈라 신뢰할 수 없었다.(SLR 렌즈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진을 찍을 시간이 없을 때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들이게 된 것도 있었지만 스포츠카 같은 디자인도 못마땅했다. 아무래도 1950년대 클래식 카메라의 디자인 미학에 매료되어 있던 나에게는 너무 미래적인 디자인이었다. 90년대 카메라 치고는 너무 앞서간 우아한 디자인과 색깔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90년대 이런 디자인을 라이카가 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디자인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책이라도 있으면 읽어보고 싶지만 자료가 거의 없다. 어떤 계보에서 탄생된 것이며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궁금하다.) 그 이후로 라이카에서 이런 디자인을 만나기 어렵다. 과연 디자이너가 누굴까 궁금해져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정보가 많지 않다. Manfred Meinzer의 디자인으로 그는 라이카 R8, R9 미니룩스, 미니룩스 줌과 Z2X 그리고 Z2X DB( 데이타백?)을 디자인 했다고 나와있다. 카메라의 특성상 외형의 디자인과 설계가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카메라의 디자인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능과 공간의 효율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기계의 설계와 함께 유기적으로 고민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의 디자인은 일관성이 있고 그 스타일은 오늘날에도 라이카 S 시리즈로 이어진다. 라이카 R의 디자인은 최초의 SLR 카메라들을 만들었던 엑사타의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들 라이카 R8, R9 역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미래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이다. 미니룩스는 그나마 클래식한 편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들의 공통점은 덩치가 크다. 아무래도 작게 설계하려면 아름다움보다는 부품과 기계의 구조가 형태로 굳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아름다움을 입히려면 빈 공간들이 생기고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라이카가 니콘과 사활을 걸고 경쟁을 하던 시절(90년대)에 플래그쉽 라이카 SLR 라인인 R 시리즈는 R8,9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R4정도라면 모를까 예술작품으로 모셔두고 싶기는 하지만 손에 쥐기에 너무 커서 별로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어 지지는 않는다.) Z2X와 비슷한 느낌의 디자인으로는 롤라이의 Prego시리즈가 있다. 콤팩트 치고는 살짝 큰 편이다. 당시에 미래적인 디자인이라면 역시 포르쉐였던 것 같다. 오늘날 애플의 미학에 대한 경이로움을 사람들을 과거에 포르쉐에서 느끼지 않았을까? 카메라에 이런 유선형의 디자인을 부여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드문 일이다. 카메라라는 물건은 왠지 딱 떨어져 똑똑해 보여야 한다는 편견 때문일까.
각설하고 다시 Z2X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대학을 마치고 사진가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사진을 찍으며 떠돌 때 Z2X은 항상 잠바 주머니에 있었다. 주로 FM2로 사진을 찍었지만 유사시에 꺼내서 편하게 찍는 서브 카메라였다. 아무래도 가벼운 사진 혹은 여정의 일상을 기록하는 용도였다. 미안하게도 용도 때문에 그닥 좋은 필름을 물리지는 못했다. 비싼 전문가용 필름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아까워 싸구려 필름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용도가 동행의 주된 이유였다. 그저 나에겐 흔히 말하는 똑딱이 카메라였을 뿐이었다. 당시 IMF 이후에 하루아침에 두배로 오른 필름 가격은 정말 한컷 한컷을 두세 번 생각하고 한번 누르게 만들었다. 머릿속에서 카운트 다운으로 한컷 한컷을 세며 사진을 찍었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초조해진다. 해외까지 나와 사진을 찍어도 하루에 소비할 수 있는 필름은 2~3롤 정도였다. 하루에 나에게 주어진 필름은 고작 70-100컷 정도였던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로는 하루에 수천 장도 찍는 것과 비교하자면 특히 해외의 현장에서 정말 70-100컷의 셔터 찬스는 정말 고통이었다. 한컷을 누를 때마다 그 비용을 감안해야 했다. 중국(만주, 티베트, 실크로드)에서 몇 달간 사진을 찍고 한국에 돌아와 현상을 하고 Z2X로 촬영한 필름을 인화해 보니 니콘보다 계조가 풍부했지만 콤팩트 카메라의 한계인지 SLR에 비해 그리 샤프하지 않았다. 아깝게도 많은 사진은 사진 하단에 날짜가 찍혀 있어 못쓰게 되어 가슴이 아팠다. (여행 중간에 발견해 껐다) 당시에는 포토샵으로 지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노출이 내 기준으로 봤을 때 니콘 FM2보다 반 스톱 정도 부족으로 찍혔다. 암실 작업을 고려하는 그 시대에는 그 점이 못마땅했고 몇 달간 내 주머니에 있다 보니 스크래치가 많이 생겨 더 못생겨졌다.
오랜 세월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가 최근에(2016년) 이르러 중국 운남성 차마고도 여행에 함께하게 되었다. 짐을 좀 줄이고 가볍게 다녀오고 싶었다. 이제는 스캐너가 있어서 인화하지 않고도 사진을 얻을 수 있기에 한번 찍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이제는 세월이 흘러 디자인이 레트로 하게 느껴진다. 90년대의 향수랄까. 전에는 이런 카메라로 찍은 필름을 감히 돈을 들여 인화까지 해서 보고 싶지는 않아서 제대로 결과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콤팩트 카메라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유통기한이 13년이 지난 필름으로도 화려한 칼러를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흑백은 정말 딱 라이카였다. 흑백사진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풍부하게 보여주는 계조의 사진들이 나왔다. 흑백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고 싶다는 욕망까지 불러 일으켰다. 라이카 렌즈의 특성상 약간의 노출 부족이(코닥 필름에서) 더 풍부하게 흑백의 계조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노출이 약간 부족이어도 쉐도우의 디테일은 충분했다. 니콘 렌즈의 경우 충분한 노출을 주지 않으면 암부의 디테일을 얻을 수 없었기에 노출에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라이카 렌즈는 약간의 언더로 촬영할 때 그레이 스케일에서 밝은 쪽에 위치한 톤들, 즉 사람 얼굴, 벽면 등을 비롯한 화면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오브제들의 질감을 더 잘 드러내는 듯 보인다. 결과적으로 새벽 같은 차분한 느낌을 준다. 시골의 평화로운 새벽이 아니라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는 광부의 새벽이다. 또한 사람의 피부에서는 세월이 느껴지고 그 내면의 역사가 느껴지는 느낌이 든다. 라이카 로고만 단 똑딱이가 아니라 진짜 라이카이다.
Z2X의 LEICA VARIO-ELMAR 35-70mm 렌즈는 70미리에서는 너무 노출이 부족이 되고 좋은 결과물을 얻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이젠 거의 35mm 광각 전용으로 사용하곤 한다. 놀라운 것은 줌렌즈이지만 35mm 단렌즈가 달린 비슷한 급의 카메라와 거의 비슷한 화질을 보여준다. 스캔을 한 후 포토샵에서 적당한 샤픈 값을 적용하면 전혀 어색함 없이 SLR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에는 정말 쓸만한 카메라가 된 것이다. 과거에는 그 정도의 더 좋은 샤프니스를 얻기 위해 수백만 원이라는 돈을 더 투자했으나 그 정도 샤프니스는 충분히 컴퓨터에서 이루어지는 후반 작업에서 조절이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LEICA VARIO-ELMAR 35-70mm이 쓸만한 그리고 합리적인 렌즈이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가격에 팔아서 단렌즈가 달린 모델을 언젠가 들이려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접었다. 물론 팔아도 어차피 얼마 안 되는 카메라이기 때문이지만 굳이 단렌즈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Contax T2나 T3는 복권이라도 당첨되기 전에는 꿈도 꾸기 어렵기에 그냥 Z2X에 안주하기로 결심했고 비슷한 처지(?)의 콤팩트 카메라들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이후로 여러대를 들이게 되었다. 미니룩스, 후지 클라세, 코니카 헥사AF, 미놀타 TC-1, Ricoh GR 같은 고가의 명품 콤팩트 카메라보다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숨어있는 고수(?)들을 찾는 기쁨에 더 집중했다. 언젠가 그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가난한 사진가의 부질없는 욕망과 탐구이다. 그런 카메라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된 솔직한 이유는 바로 내 삶과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남들이 아직은 알아주지 않지만 담백한 친구 같은 카메라와 렌즈들에 애정을 갖는다. 거기에 이야기까지 있으면 더 좋다. 사진을 즐기는데 굳이 비싼 카메라는 필요가 없다. 물론 남들이 경의를 표하는 유명한 명품을 손에 들고 있으면 나까지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것도 좋지만 공허할 뿐이다. 그냥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평범해 보이는 카메라로 전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군중 속에 묻히는 것도 사진을 찍기에 나쁘지 않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 많은 별 볼 일 없는 민초겠거니 나를 무관심한 눈으로 보며 사람들이 지나칠 때 오히려 내가 그들의 진솔한 삶에 더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와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막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모 예능 프로그램에 설현이 이 카메라를 들고 등장해 조금 대중들의 관심을 갖게 된 모양이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행히 푼돈이 궁할 때 긴급 방출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다.(처분해봐야 돈이 안되니) 이제 이 카메라 마저도 내가 넘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가 다음엔 Z2X과 어떤 여정을 하게 될지 벌써 기대를 한다. 몇 일 후에 떠나는 중국으로의 여정에 다시 함께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