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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제욱 Mar 31. 2019

도공의 손으로 빚은 은은한
색채色彩의 세상

Yashica T AF-라오스 시엥쿠앙으로의 여정




똑딱이, 콤팩트 카메라의 재발견 


2000년대 초반에도 교세라 그룹의 Yashica 콤팩트 카메라를 찾는 몇몇 이들이 있었다. 왜냐면 Carl Zeiss Tessar F3.5 렌즈를 달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놀랍게도 단돈 몇 만 원에 거래되는 카메라였다. (사실 렌즈 가격만 해도 몇 십만 원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그런 카메라를 사용하는 인간을 딱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변태, 괴짜처럼 느껴졌다. 마음껏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한번 쓰고 장터에 올렸다고 하기에 참았다. 

테사 렌즈도 한때는 이글거리는 독수리 눈 Eagle Eye 렌즈로 불렸다. 독수리는 고대 로마 제국의 군단기에 쓰였다. 나찌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찌의 눈이었을까. 

그리고 아무리 칼 짜이스지만 시대착오적인 테사 렌즈*라니. 샤프하고 콘트라스트 강한 렌즈가 넘쳐나는 시대에. 물론 더 시간이 흐르고 핸드폰 카메라마저도 극도로 샤프한 이미지를 찍어내는 시대에 오히려 과거의 뭔가 부족한 그런 느낌을 '뉴트로 Newtro', '갬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소환하게 될 줄이야,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Contax 브랜드의 T2*도 30~40만 원 정도 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굳이 Yashica T 시리즈가 크게 이목을 이끌지는 못했다. 일단 너무 저렴해 보이는 플라스틱 재질과 88 올림픽 호돌이 목에나 어울릴듯한 디자인은 도저히 사진가가 들고 사진을 찍기에 민망해 보였다. 로보캅 같은 최첨단 SLR Nikon F5에 비명을 지르던 시대에 태권 V는 유년시절의 추억과 함께 묻어두는 것. 그리고 당시에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주로 코닥의 채도가 강한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어 잡지에 기고하던 시절이었는데 콤팩트 카메라들은 슬라이드 발색이 충분하지 않다는 편견이 있었고 실제로 콘트라스트가 약했다. 당시 최대한 노출 부족으로 찍어 극단적으로 콘트라스트와 채도를 더 끌어올리려는 사진가의 욕망과 안전하게 인쇄로 구현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디자이너, 편집자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곤 했다. 출장을 갈 때마다 '밝게 찍어 주세요. 선생님~'이렇게 부탁을 할 정도였으니. 또 당시 (IMF 이후에 두배로 오른) 워낙 비싸고 귀한 필름들을 굳이 이런 결과물을 보증하기 어려운 카메라에 투자하기가 어려웠다. 정확한 니콘 F 시스템의 전성기에 굳이 모험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물을 보장할 수 있는 정확성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진의 결과물을 보기 위해서는 확대 인화를 하거나 큰 비용을 들여 드럼 스캔을 보내야 했으니 감히 콤팩트 카메라로 찍은 사진 따위는 복합기 수준의 스캐너로 기념사진이나 옮기는 용도였다. 그러니 결과물이 더욱 후져 보일 수밖에. 그러나 오늘날이 되어 직접 사진가들이 이런 카메라들로 사진을 찍어 직접 보유하고 있는 프로용 스캐너로 그 놀라운 성능을 오늘날에야 재발견하게 되었다. OMG. 자유로운 보정으로 작은 단점은 쉽게 보완된다. 

테사 렌즈 시스템
*Tessar. 독일의 물리학자 파울 루돌프가 짜이스에 재직할 때인 1902년에 설계한 디자인이다. 반면 짜이스 조나(Sonnar)는 Zeiss Ikon의 루드비히 베르텔레 Ludwig Bertele가 에르노 스타 Ernostar를 개량하여 1929년에 발명한 렌즈이다. 대구경 밝은 표준렌즈의 대명사이나 플렌지백이 짧아 SLR에서는 특성상 망원계 렌즈에서만 쓰이고 있다. 출처:위키백과 
**콘탁스 T2(1990년 발매), T3(2001년 발매), 콘탁스의 시리즈는 강한 색감과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는 Carl Zeiss Sonnar 렌즈가 달려있다. 38mm F2.8와 35mm F2.8이다. 야시카 T 시리즈의 테사와는 족보가 다르다. 
가장자리에 위치한 나뭇가지의 디테일을 보라_수원화성, Yashica T AF, 2018



야시카, 교세라, 콘탁스 그리고 버블경제

1973년 중국이 문화 대혁명*으로 큰 변혁을 겪고 있는 시기 그리고 베트남 전쟁**(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한창이고 라오스 인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미국의 공격을(Secret War) 받고 있을 때 일본의 야시카와 독일의 Carl Zeiss 사가 협력***하여 Top Secret Project 130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전자 제어식 셔터인 C/Y 베이요넷 Bayonet 독자 마운트 RTS를(Real Time System) 개발한다. 하나의 시스템에 두 개의 브랜드를 다른 가격대별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소비자에게 주었다. 일본 특유의 비지니스 전략이었다. 

2차 세계대전은 독일제 라이카의 시대였지만 베트남전은 일본제 SLR 카메라의 시대였다. 카메라 기술의 혁신은 이제 일본에서 주도했다. 종주국보다 실용면에서 우수한 카메라들이 대량 생산되어 좋은 가격에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과 일본 합작의 새로운 콘탁스 카메라는 1974년 포토키나에 등장하여 성공을 거둔다. 명품도 이제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다 1983년 10월 도자기 대기업인 교세라(Kyoto Ceramics****)에 인수되었다. 이후 미놀타와 치열한 경쟁을 하다가 점차적으로 '포인트 앤 슈팅(Point and Shooting/P&S) 라인으로 브랜드를 재정비하고 고급 SLR 카메라 생산을 중단한다. 그러다 2005년에 이르러 교세라는  콘탁스, 야시카, 교세라 브랜드 필름과 디지털카메라의 생산을 중하고 2008년 교세라는 야시카의 상표권을 홍콩에 본사를 둔 MF Jebseb Group에 매각하였고 (자회사 JNC Datum Tech International, Limited. 소속) 최근에는 레트로 콘셉트의 특이한 복각 컨셉의 디지털카메라Yashica digiFilm Y35 를 출시하였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일본의 버블 경제*****가 한참일 때 호사가들을 위한 사치스러운 럭셔리 콤팩트 카메라들이 야심 차게 생산된다. 어떻게 보면 버블경제의 유산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놀타 TC-1, 후지 클라쎄, Contax T2 등이 있다. TVS의 경우 1993년도에 무려 17만 엔에 발매된다. 일본의 장인정신과 앞서가는 최첨단 기술이 축약된 누르기만 하면 SLR 카메라와 버금가는 결과물이 나오는 최고의 카메라들이다. 요즘 나오는 소니의 RX1보다 당시에는 더 고가로 느껴졌을 것이다. DSLR의 대중화 초기에는 이 카메라들의 가격도 바닥을 쳤으나 이제 다시 인기를 끌어 주머니 사정이 궁핍해진 사진가들은 꿈도 꾸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M3보다 비싸다. 의사들이 주로 사용한다. 아직도 그 카메라들을 넘어서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TC-1은 과장하자면 은세공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Contax T3는 오는 날의 안드로이드 폰보다 더 현대적인 디자인이다. Contax T2, T3에서 콤팩트 카메라는 정점을 찍은 듯하다. P&S에서 독보적인 카메라이다.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다.  

교세라의 로고를 다시 보니 막사발을 빚고 있는 도공의 손처럼 느껴진다. 
*문화 대혁명: 1966-1976년. 중국인민들이 개고생 할 때 일본은 꿀을 빨고 있었다니. 
**베트남 전쟁: 1960-1975년. 일본은 베트남전을 계기로 경제적인 큰 도약을 이룬다. 이런 전쟁을 기반으로한 일본 경제의 호황은 일본의 카메라 산업을 더욱발전시켰다. 베트남전의 주인공은 니콘 같은 일본제 카메라들이었다. 튼튼하고 믿을만하고 정확하고 신속했다. 카메라 산업의 주도권도 일본으로 넘어오기 시작하였다. 단순한 하청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들을 본격적으로 내놓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독일과 일본은 동맹국이었고 이후에 함께 패전국이 되었다. 전쟁은 광학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무기를 직접적으로 만들었던 혹은 무기에 들어가는 스코프와 지지대 같은 관련 용품을 만들던 니콘 같은 전범 기업들이 배상도 없이 전후에 성공적으로 사진 장비기업으로 변신한다. 
**** 교세라가 교토 세라믹스의 약자였다니! 충격을 받는 분들 많으실 듯하다. 
*****일본의 버블경제: 1980-1992년



오늘날의 청춘을 담는 아버지의 낡은 카메라

렌즈 주변부와 암부까지 선명한 화질을 보여준다_강원도 고성 대진리, Yashica T AF, 2018


콤팩트 카메라 팬덤의 주인공 라이언 맥긴리 경

존재조차 기억되지 못했던 황학동의 좌판에나 굴러 다녔을 법한 야시카 T 시리즈는 어느 날 갑자기 라이언 맥긴리의 전시(청춘 그 찬란한 기록, 대림미술관, 2013년)를 통해 소환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테사 렌즈와 비비드 한 컬러의 포트라 VC 필름의 조합은 대중들이 열망하는 젊음의 색이었다. 젊음은 역시 항상 눈부신 후광과 핑크빛을 받으며 육체적 욕망이 폭발하고 거칠고 흔들리고 방황하며 미완성인 것인가. 패션 사진가 테디 리처드슨도 T4, T5를 투 바디로 사용하여 열풍에 일조했다. 아니 콤팩트 카메라 투바디라니 고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선神仙이다. 콤팩트와 작정하고 패션분야에서 예술사진을 찍겠다는 의미다. 짜이스 특유의 높은 선예도와 투명한 느낌의 렌즈라고 한다. 이제는 귀하신 고가의 카메라가 되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카메라가 되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매물이 많지 않다. 라이카의 밋밋한 칼라와는 달리 칼 짜이스 렌즈는 코닥필름과 만나 거칠고 화려한 색채를 보여준다. 하시시박의 T4 줌(일본 내수용 교세라 T줌. 28-70mm F4.5-8)도 인기다. 젊은이들이 이 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는 요즘에는 이제 보기 힘든 투박한 디자인 때문이다. 촌스러운 디자인이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Terry Richardson의 T5. 재미난 스티커를 붙이니 카메라보다는 학용품 같다. 누구나 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미소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제 오히려 매력적이고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이다. 햇볕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노트북을 들고 출근하는 뉴요커 같은 느낌의 타이타늄 콘탁스 T 보다 거친 이탈리아 같은 남성미(?)가 있다. 뉴요커에겐 먼 조상이 넘어온 유럽이 로망이지 않을까. 모난 부분을 제거한 두리뭉실 T4,5와 달리 비교적 저렴한 T2, T3도 있는데 람보르기니 클래식 스포츠카 같은 사선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80년대와 90년대 산업디자인의 세대교체를 보여주는 것일까.  



[Yashica T 시리즈]
T-AF/T AF-D, 1985년 발매
T2(Kyocera T), Carl Zeiss Tessar 35mm F3.5
T3(Kyocera T-scope)
T3 Super(Kyocera T-scope 2)/T3 Super D,  Carl Zeiss Tessar 35mm F2.8
T4 Zoom(Kyocera T zoom, 28~70mm F4.8~8)
T4 / T4 SE(Safari Edition)/T4D(Kyocera Slim T)/T4 Super(T5)/T4 Super D(T5D, Kyocera TProof)) , Carl Zeiss Tessar 35mm F3.5  
*D는 데이터 백을 의미
*내수 버전은 Kyocera 브랜드로 출시되었다. 




"Don’t get lost inside your head, and don’t worry what camera you’re using."

                                                                                                                                             -Ryan McGinley. 



리사의 Kyocera T zoom. 패션 스타일의 완성.
T4, 와 T5를 함께 사용하는 Terry. 투바디가 더 유용하다. 



가성비 끝판왕 야시카 T-AF 와의 만남. 가난한 사진가의 T 스타

야시카 T3나 T4가 탐이 났지만 머뭇거리다 보니 콤팩트 카메라 주제에 벌써 가격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그래서 고민하다 가장 저렴한 T-AF를 구했다. 렌즈는 스펙상으로 같아 보인다. T* 즉 티 스타 마크가 있어 일단 믿음이 간다. 오늘날의 칼 짜이스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 우수한 코팅기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짜이스의 T 스타코팅은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준다. 디자인은 각이진 모습이 마치 람보르기니의 클래식 스포츠카를 연상시킨다. 사실 이 정도 가격대에(10만 원대) 칼 짜이스 35mm 단렌즈 T 스타 카메라라니 기적에 가깝다. 요즘의 소니 RX-1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아무튼 이 카메라도 풀 프레임 아닌가. 전기도 없는 험난한 오지 여행에 함께하면 좋을듯한 카메라이다. 누가 욕심을 내 훔쳐가지 않을 것 같고 잃어버려도 크게 안타깝지 않을 것 같다. 단렌즈가 달린 T와 화각이 더 자유로운 T줌을 함께 투 바디로 운용하면 쓸만해 보인다. 

감도는 수동으로 설정하게 되어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노출 보정을 할 수 있다. 셔터는 상당히 특이하다. 도저히 셔터 디자인이라고 볼 수가 없는 독자적인 디자인이다. 게다가 붉은색이라니. 이 셔터를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뭔가 잘못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 같다. 내장 조명은 코니카의 초창기 콤팩트 카메라 느낌이다. 일단 AF가 상당히 느리고 답답하다는 느낌이고 가까운 사람들을 찍을 때 초점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치열한 작업을 하기에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발걸음 가는 대로 여유를 즐기는 여행에는 크게 상관없어 보인다. 일단 결과물은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짜이스 렌즈 치고는 상당히 부드러운 톤을 보여준다. 짜이스답게 색은 풍부하지만 특이하게도 동시에 은은하다. 그동안 봐온 T 스타 렌즈 들과는 성격이 조금 달라 보인다. 얌전하달까. T 스타 코팅 이전의 렌즈와 더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렌즈 주변부 해상도는 상당히 우수하다. 플라스틱 바디***와 셔터의 느낌은 상당히 가볍다. 사실 결과물의 퀄리티는 T4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후기형인 T4는 슬라이드 색감과 콘트라스트가**** 더 잘 구현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사진을 다 찍고 나면 필름 되감기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탱크의 굉음과 함께 한참을 감는다.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좋다. 100피트 필름이라도 감는 느낌이다.

**사실 독일과 일본이 합작한 Contax브랜드의 계보는 오늘날 짜이스와 합작한 소니가 이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 후 대량생산의 시대.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나 이제 귀족이 아닌 일반인들도 월급으로 카메라 하나씩은 집집마다 갖게 되고 관광을 즐기게 된 것이다. 금속과는 달리 저 비용으로 자유롭게 성형이 가능한 만능의 플라스틱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플라스틱이 오늘날에는 우리의 바다를 습격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인류를 구원할 신소재로 느껴졌을 것이다. 똑딱이. '똑'하고 누르면 '딱'하고 사진이 마법처럼 찍힌다. 이 단어의 가벼움처럼 사진이 누구나에게 쉬운 행위가 된 것이다.  
'플라스틱 Plastics'의 어원은 '조형성 있는'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출처:세계 미술용어사전) 스페인어에서 오늘날에도 '아르떼 쁠라스띠꼬Arte plástico'하면 '조형예술'을 의미한다. 중고등학교 미술수업의 과목을 이렇게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에는 필름카메라로 촬영을 해도 결과물을 스캔을 해서 컴퓨터로 후반작업을 하는 하이브리드 사진이다. 스캔을 하고 후반작업에서 콘트라스트를 강화시키는 것은 쉽다. 그러니 굳이 콘트라스트가 강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스캔을 하기에는 약한 콘트라스트가 훨씬 유리하다. 오늘날에 오히려 사용하기에 좋은 카메라가 된 것이다.  


라오스의 시엥쿠앙 그리고 호찌민 트레일

역시 사진은 새벽의 빛이 최고다. 시간을 잘못 봐 해가 뜨기도 전에 숙소를 나섰다. Xiengkhouang, Laos, 2018

라오스의 비엔티엔에서 침대 버스를 타고 약 10시간을 북쪽으로 이동하면 시엥쿠앙 주의 주도인 폰사완에 도착할 수 있다. 신도시인 폰사완의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남동쪽 35km 거리를 이동하면 고도인 무앙 쿤 Muang Khoun(Old Xieng Khuang)에 도착한다. 이곳은 옛 Xieng Khung 왕국의 수도였으며 16세기에 세워진 62개의 화려한 스투파들로 알려져 있다. 왕국의 수도가 무슨 우리나라 강원도의 리里보다 작다. 문화유산들은 다 폭격으로 망가져 있다. 관광객도 찾지 않는다. 먹을 거라고는 길거리에서 초딩 대상으로 장사하는 리어카 꼬치구이 정도가 고작이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이곳에 다시와 초야에 묻혀 조용히 지내보고도 싶다. 새벽빛을 사진에 담고자 길을 나서니 촌닭들과 강아지들이 반겨(?) 준다. 불탑들을 찾아 트래킹을 한다. 평화롭다. 

호찌민 트레일

쓰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다. 본격적인 라오스 혁명과 Secret 전쟁* 그리고 레지스탕스로 대변됐던 자유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을 얻은 다음 해에 제일 먼저 2차 세계대전으로 방치된 자신들의 재산이었던 인도차이나 반도에 다시 쳐들어와 아시아 인민들의 삶과 역사를 짓밟고 파괴했으며 이는 결국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져 한국의 남성들까지 그 먼 타국까지 쳐들어가 미국 형님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각종 범죄에 연루하게 된 슬프고 거창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으나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고 글을 마무리한다. 'Secret War' 구글 해보면 자료가 많다. 정말 인천 상륙작전으로 우리를 빨갱이로부터 구원해준 자유수호의 영웅 미국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세뇌받던 우리 세대들에겐 충격적이다. 가히 악마 수준이다. 폴 포트가 울고 갈. 

아무튼 일본의 야시카와 칼 짜이스가 합작하여 한참 카메라 시장을 저돌적으로 정복해 나갈 때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Yashica 시리즈가 소환되어 다시 주목을 받는 오늘날 미군에 의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행해진 수많은 악행들이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제대로 규명되는 날이 와 수많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게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오늘날까지 미국의 CIA가 주도한 이 전쟁을 인정하지 않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중립국인 라오스에 약 이억 팔천만 개의 폭탄을 시엥쿠엥주와 곳곳에 투하했다. 이중의 약 팔천만 개가 불발탄(UXO)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삶을 위협하고 있기에 어떻게 보면 시크릿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 의해 베트남 중부전선이 차단되자 라오스로 우회하는 호찌민 트레일을 개척하여 보급로로 활용했다. 이를 파악한 CIA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몽 Hmong족을 무장시켜 이 길을 차단하고 미군 포로를 구출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철수하자 몽족의 비극의 시작됐다. 10만여 명의 몽족이 태국으로 피난하였고 일부는 서방세계로 망명을 하였으나 5천 명은 지금도 남아 정부군의 추격을 받고 있다.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mi68GYu64k



피우 동굴로 가는 길목 Muang Kham Market에서 중세 유럽의 회화에서나 나올법한 특이한 품종의 호박과 만났다. 


제주 4.3을 이곳 시엥쿠앙에서 만난다. 라오스 Secret 전쟁 기간에 미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이곳 피우 동굴에서만 미군 전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374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하였다








여행정보
https://www.roughguides.com/destinations/asia/laos/northeast/xieng-khuang-plain-jars/muang-khoun-old-xieng-khuang/
https://www.lonelyplanet.com/laos/muang-khoun/in-location/sights/a/nar/6c7d23e5-8a56-4ef3-a30c-fb6e07cff700/131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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