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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제욱 Mar 28. 2020

[조지아 기행] 마저리 빌리지

스바네티의 감춰진 속살


스바네티의 장엄한 풍경을 나의 누추한 언어로 묘사할 방도가 없다. 그 시도는 이 풍경에 대한 모독이다. 단,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위대한 풍경 앞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압도하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숙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신성 앞에 안주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받는다는 사실이다.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곳에 자리할 것만 같다. 코카서스에서 많은 구전설화가 전해진다는 사실이 이러한 자극을 반증한다. 아침이 되어 창문으로 스며드는 볕에서, 그 볕에 반사되는 작은 먼지 한 톨에도 신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만 같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물과 불과 흙과 바위, 식물과 광물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반짝이는 볕이 내 몸의 세포들에게 전해준다. 그리고 이 진실이 십만 년 전부터 나에게 내려온 인간인 내 육체의 DNA에 이미 숨겨져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진실'이라는 것이 결코 인간의 언어라는 형태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시도임을 속삭여 준다. 

도시에서의 삶이 우리에게 앗아간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우리의 본능이 어떻게 무디어지고 헛된 욕망들의 노예가 되어 소중한 생을 낭비하고 있는지 안타깝게 만든다. 난 어릴 때부터 폐가 약했다. 어머니는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게다가 최근 한반도의 미세먼지는 정말 치명적이다. 기침을 달고 살게 되었는데 스바네티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나니 기침이 마법처럼 사라진다. 이곳의 공기를 마시면 내 폐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나의 폐 안에 존재하는 산맥들과 숲이 이 대륙만큼이나 광대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내 허파의 3억개에 달하는 폐포 각각의 존재가 실재로 다가선다. 내 신체의 곳곳에 산소를 전달하는 혈관의 길이가 지구의 세바퀴 길이(12만 km)에 이른다는 사실도 이제 놀랍지 않다. 내 몸안에 들어온 스바네티의 산소는 곳곳으로 난 강을 따라 12만 킬로를 항해하며 내가 오늘 살아 있을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평생 걷는 길이도 역시 약 12만 킬로이다. 묘한 일치이다. 매 분마다 인간이 평생을 걷는 시공간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인간은 탐험가이다. 탄생하는 날부터 매일 하루를 사는 것 만으로도 영웅의 대서사시에 버금가는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은 딱 내 몸안에 난 길의 길이 만큼만 지구를 걷고 사라진다. 아니다 내 몸을 지탱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였던 개개의 세포들은 일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내 몸의 세포는 각질이 되어 매일 12그람씩 떨어져 나가 외부 세상의 일부가 된다. 모든 인간의 몸은 하나의 우주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산에서 내려오는 폭포와 풀잎의 이슬이 그리고 생명으로 가득 찬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이 숲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무가 뿜어내는 공기가 내 폐가 가득 찰 때 나도 한때 자연의 일부였고 또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존재하는 사실을, 그 기쁨을 받아들이게 된다. 생과 죽음의 순환을 통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영생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죽음이란 인간이 만든 관념이고 우리의 무경계와 무량함을 스스로 제한한다. 내 몸이 부패 되어 구더기의 도움을 받아 다시 토양으로 돌아가고 다시 나무가 되고 산소가 된다. 너와 나의 구분이 차별과 편견과 멸시가 얼마나 자연을 역행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한다. 46억 년을 넘게 살아온 우리가 고작 찰나에 불과한 물질과 감각의 노예가 되어 있음이 얼마나 부질없음을 스바네티의 풍경이 이야기한다. 나무도 구름도 그리고 폭포도 우리의 형제임을 이야기한다. 우슈바 산으로 가는 길에서 이 곳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이 신성에 맞서는 어리석은 도전은 아닐지 두려움을 갖게 한다. 아니 더 나아가, 이곳을 지키고 있을 신들도 결국 자연이 만든 인간의 형상을 닮은 창조물이 아닌지 다시한번 의심을 갖게 한다. 결국 자연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아닌지. 끝없이 방황하는 인간들을. 아. 그러나 이마저도 다 부질없다. 결국 인간과 문명은 자연의 시간으로는 머지 않은 미래에 결국 먼지로 돌아갈 것이며 그 날이 오더라도 여전히 이 스바네티의 바위와 폭포와 구름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 당연한 것임을 우린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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