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4일, 라말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수도. 코이카(KOICA) 사무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분쟁의 기억을 새긴 듯한 풍경들 위로, 메마른 언덕 위로, 잿빛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습관처럼 내려앉은 그 빛깔은 마치 이곳의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무게로 어깨를 누르는 듯했다. 바로 오늘 아침,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 터미널 진입로에 예멘 후티 반군이 쏘아 올린 미사일이 떨어졌다는 속보가 스마트폰 화면을 잠시 밝혔다. 공습 경보, 사상자 발생… 며칠 전 이스라엘 북부를 집어삼켰던 시커먼 산불 연기가 채 흩어지기도 전에 날아든 소식이었다. 이런 뒤숭숭함을 애써 배경 소음처럼 밀어내며, 우리 여섯 명의 한국 전문가들은 각자의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건축, 도시계획, 소득증대, 교육, 성과관리, 그리고 나의 담당 분야인 도시재생 및 관광. 우리는 저마다 다른 전문 지식이라는 연장을 손에 쥔 채,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작은 마을, 세바스티아에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집을 짓기 위해 이곳, 라말라에 모여 있었다.
사무실 안은 겉보기엔 평온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 가끔 종이가 스치는 소리,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오가는 대화가 공간을 채웠다. 하지만 그 대화의 결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우리는 코이카가 제시한, 정교하게 짜인 미로와도 같은 예산 시스템 앞에서 씨름하고 있었다. 또 그 사이에 틈틈히 시간을 쪼개 현지 NGO들에게 용역을 나누어 견적 요청서를 발송해야 했다. 마치 고대의 필경사처럼, 우리는 ‘Man-Month(MM)’라는, 아직은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위로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숫자로 환산하고, 그것을 다시 국내와 해외 활동으로 쪼개어 엑셀 시트의 빈칸을 메워나갔다. 전문가 한 사람의 해외 출장을 세 번, 한 번에 15일씩, 총 45일로 잡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국내 활동 일수는 얼마가 적절할까? 다른 사업 사례를 보니 해외 체류일을 포함해 최대 90일까지도 잡던데, 이 사업의 독특한 맥락 속에서는 어느 정도가 현실적일까?
“90일이면… 인건비랑 체재비만 더해도 9천 6백만 원이 훌쩍 넘네요. 항공료는 빼고도 말이죠. 생각보다 금액이 크네요.” 동료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놀라움 이상의, 예산의 압박감에서 오는 미묘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더 큰 문제는 PM(Project Manager)이에요. 이 정도 규모 사업이면 전체를 조율할 사람이 필수적인데, 예산 항목에는 PM 자리가 따로 없어요. 건축과 교육처럼 역할이 명확히 분리된 사업이라면 교육 전문가가 PM을 맡는 게 자연스러운데, 여긴 각 분야의 비중이 비슷비슷해서 누가 총대를 메야 할지…” 건축 전문가가 안경 너머의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고민은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산술 문제를 넘어섰다. 그것은 한정된 자원이라는 현실 속에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고, 때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타협의 과정이었다. 특히 PM의 부재는, 이 배의 방향키를 누가 잡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이면서도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할의 중요성을 피력할 수 있었고, 그 누구도 선뜻 무거운 총괄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나서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결국, 각 항목 예산에서 조금씩 덜어내 ‘십시일반’으로 PM 인건비를 충당하거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가장 큰 덩어리인 건축 시공비에서 일부를 덜어내는 방안까지 조심스럽게 거론되었다. 하지만 건축 분야 역시 현지 NGO와의 약속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어, 무작정 예산을 줄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이런 복잡한 예산 논의의 틈바구니에서, 과거 동료가 겪었던 황당한 입국 거부 경험담이 불쑥 떠올랐다. 아무런 사전 통보나 명확한 사유 설명 없이 전자여행허가(ESTA)가 취소되어버렸던 그 막막함. ‘금지 국가’ 방문 이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매번 공항 심문대에서 받아야 했던 날카로운 질문과 의심의 눈초리들. 이곳에서 ‘전문가’라는 명함이 얼마나 얇고 위태로운 보호막인지를 새삼 깨닫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깃발 아래 이곳에 왔지만, 동시에 삼엄한 국경과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역학 관계 속에서 언제든 길 잃은 이방인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사무실 안에서 오가는 ‘IPDI’이나 ‘PD’ 같은 건조한 행정 용어들과, 사무실 밖에서 들려오는 미사일 경보나 입국 심사대의 차가운 공기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깊은 간극이 느껴졌다.
나의 마음은 그러나, 끊임없이 세바스티아를 향해 있었다.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의 웅장한 유적과 바람에 흔들리는 올리브 나무,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나는 그곳에 단순히 구경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 주민들이 이야기의 주인이 되는 ‘도시재생형 축제’를 싹틔우고 싶었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공예 센터에 활기를 불어넣고, 국내외 방문객들이 마을의 속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엑셀 시트의 숫자로 번역해야 할, 마음속의 청사진이었다. 건축 전문가는 낡은 골목길에 온기를 불어넣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복합 커뮤니티 센터를 구상하고 있었고, 소득증대 전문가는 특히 여성과 청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고민했으며, 교육 전문가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할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비전들을 현실의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사업들을 어떻게 하나의 목표 아래 조화롭게 엮어낼 것인가? 현지 NGO의 역량과 의지를 어디까지 믿고, 또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 코이카의 엄격한 관리 기준과 예측 불가능한 현장의 유연성 사이에서 특히 분쟁지역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가? 무엇보다, 우리가 정성껏 그리는 이 그림들이 과연 현지 주민들의 실제 필요와 바람에 부합하는 것인지, 혹시 외부자의 선의로 포장된 또 다른 이상향은 아닌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필요했다. 엑셀 시트의 각 셀에 숫자를 기입하는 행위는, 단순한 예산 배분을 넘어 이러한 복잡한 질문들에 대한 잠정적인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았다.
“도시재생 분야는 국내 MM을 45일 정도로 우선 잡아볼까요? 아니면 조금 더 여유를 두는 게 좋을까요?” 누군가의 질문에 나는 잠시 호흡을 골랐다. 90일이라는 숫자는 일반적인 PMC(Project Management Consulting) 사업에서 한 분야 전문가에게 통상적으로 주어지는 투입량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업은 직접적인 실행보다는 현지 파트너를 통한 관리와 지원의 성격이 더 강했기에, 그만큼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빠듯하게 계획을 세우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발목 잡힐 수도 있었다. 숫자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45일을 입력하자 인건비는 8천 2백만 원으로 계산되었다. 앞서 1억 5천 6백만 원이라는 숫자를 보았던 터라 훨씬 적어 보였지만, 여기에는 아직 항공료와 같은 필수 경비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결국… 강 감독님이 맡으신 수공예 센터 운영 지원 부분에서 비용을 조금 더 효율화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그쪽 컴포넌트가 예산 조정의 여지가 가장 커 보이네요. 거기서 절감한 부분을 PM 인건비 쪽으로 돌리는 방향을 고려해보는 것이…” 건축 전문가인 추 이사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의견을 내놓았다. 그것은 냉정한 현실 분석에 기반한 합리적인 제안이었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소중한 계획 일부를 덜어내야 한다는 아픈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상과 현실, 목표와 제약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사무실 공기를 감돌았다.
어느덧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라말라의 잿빛 하늘 끝을 옅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창밖 풍경은 여전히 위태로워 보였지만, 책상 앞 우리의 논의는 숫자의 벽을 넘어 조금씩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완벽한 설계도라기보다는, 짙은 안갯속에서 조심스럽게 내딛는 첫걸음과 같았다. 잿빛 하늘 아래, 위태로운 땅 위에, 우리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씨앗을 심기 위해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 씨앗이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이 지난하고 때로는 고단한 과정 자체가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라말라의 오후는 그렇게, 치열한 고민과 속삭이듯 조용한 희망 속에서 천천히 깊어가고 있었다.
라말라를 벗어나 예루살렘의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여느 때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느껴지는 삼엄한 분위기는 하루의 피로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예기치 못한 소동이 벌어졌다. 동료 전문가 한 분이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육중한 기계 안에 갇힌 동료의 당혹감과,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우리의 초조함, 그리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호텔 직원들의 모습이 뒤섞여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히 구출되었지만, 그 짧은 순간의 해프닝은 이곳에서의 일상이 언제든 사소한 사건 하나로도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마치 오늘 아침의 미사일 소식처럼, 불안은 예고 없이 찾아와 평온의 얇은 막을 찢고 들어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오니, 성과관리 전문가인 신 교수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트에 생수를 사러 갔는데, 물이 동이 나 허탕을 쳤다는 것이다. 생수조차 마음 놓고 구할 수 없는 현실. 그것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이곳 생활의 기본적인 불안정성을 상징하는 단면처럼 느껴졌다.
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현지 사무소 김 소장님의 문자였다. “내일 일정은 최 코디가 곧 안내드릴 예정입니다만, 일단 라말라 넘어가는 분들은 07:00에 같은 장소에서 뵙는 걸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내일. 약 열흘간 숨 가쁘게 달려온 팔레스타인 출장의 마지막 업무가 시작되는 날이다. 새벽 7시. 이른 시간부터 다시 시작될 분주함. 주로 사무실에 머무는 나와 달리, 현장 미팅이 잦은 전문가들은 또 각자의 동선에 따라 짧게 흩어질 것이다. 짧은 문자 메시지 한 줄이, 긴 하루의 끝을 알리는 동시에 또 다른 고단한 하루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창밖 예루살렘의 밤은 깊어갔고, 나는 무거운 눈꺼풀 아래로 다가올 마지막 하루의 무게를 가늠하며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