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이 물질이 될 때

설치 첫날, 비로소 시작된 우리의 춤

by 강제욱

1부: 베를린에서 온 선물, 그리고 아침의 고요

월요일 아침, 호텔 식당에 우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시간에 모여들었다. 지난 주말의 여백은 각자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김신일 예술감독과 김해다 큐레이터는 베를린의 공기를 전했다. 전시는 인상 깊었지만, 오프닝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주최 측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더 세련되었고, 날씨는 발브지흐보다 오히려 더 추웠다는 감상과 함께, 그들은 벼룩시장에서 사 온 선물들을 풀어놓았다. 여름옷만 챙겨온 우리를 위한 배려였다. 그것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고고학적 파편이자 주인을 잃고 떠돌던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탈리스만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각자의 개성을 꿰뚫어 본 듯한 선택이었다. 김지후 코디네이터에게는 다른 옷과 색과 스타일이 완벽하게 어울리는, 마치 그의 페르소나를 정확히 간파한 듯 세심하게 고른 옷을, 그리고 내게는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질감의 스웨이드 잠바를 건넸다. 오토바이를 탄 ‘젠틀한 갱스터’ 같다는 생각에 어색한 웃음을 짓는 내 얼굴 위로 엔비디아 젠슨 황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모두가 잘 어울린다고 하니 그 마음에 정을 붙여보기로 했다. 낯선 질감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 낯선 땅에서 전시감독이라는 역할 수행적 정체성(performative identity)에 적응해가는 과정의 은유일지도 몰랐다. 출장 오기 전, 배우 나나의 시그니처인 단발 펌을 하고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했던 김해다 큐레이터는 베를린에서 사 온 가죽 재킷으로, 서울에서부터 시작한 변신의 마지막 조각이라도 맞추는 듯 비로소 ‘나나 아웃핏’을 완성했다.


전시장으로 출발 전, 나는 홀로 호텔 주변을 짧게 산책했다. 차갑고 청명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실레지아 산자락의 이른 아침, 양치류 식물 위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맺혀 있었고, 축축한 흙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곧 시작될 설치의 안무(choreography of installation)를 앞두고, 온전한 고요 속에서 나는 다가올 하루의 무게를 가늠했다. 오늘은 드디어, 8개월간 모니터 속에서만 존재했던 그 ‘디지털 관념’에게 육신을 부여하는 날이다. 핸드폰을 들어 어젯밤 민소연 코디네이터가 보낸 “내일 9시 30분까지 로비에서 만나서 함께 전시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 라는 메시지를 다시 확인하고 로비로 향했다.


2부: 현실과의 조우, 버스 정류장의 포스터

베를린 여정을 위해 빌렸던 렌터카는 설치 첫날 요긴하게 쓰일 것을 예상해 하루 더 연장해 둔 상태였다. 그 차에 오르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익숙지 않은 뒷좌석 안전벨트를 찾지 못해 당황하는 사이, 경고음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겨우 버클을 찾아 채우고 나서야 차는 조용히 출발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탄광으로 향하는 길, 누군가 소리쳤다. “와!” 길가 버스 정류장에, 우리가 수없이 토론하고 수정했던 전시 포스터가 물질이 되어 대형으로 붙어 있었다. 낯선 땅의 평범한 풍경 속에, 우리의 지난 8개월이 하나의 이미지로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모두가 놀라움과 감격에 겨워 탄성을 질렀다. 그 순간, 우리는 마치 엄청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도시에서, 아시아의 동시대 담론을 실레지아의 심장부로 가져오는 이런 규모의 국제 교류는 분명 드문 일이었을 것이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는 더 큰 자신감을, BWA 측의 노력에는 깊은 감사를 느끼게 했다. 이번 전시는 모든 파트너들이 훌륭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차를 세워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지만, 마음이 급해 아쉬움을 안고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수많은 논쟁 끝에 탄생한 타이포그래피와 추상적인 이미지가 바우브지흐의 일상성(vernacular landscape)과 조우하는 것을 보며, 우리의 전시는 이미 갤러리 벽을 넘어 도시의 일부가 되어 숨 쉬기 시작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갤러리에 도착하자 현장은 전쟁터와 같았다. 지난 전시의 작품들이 분주하게 7시 부터 해체되어 포장되고 있었고, BWA의 큐레이터와 테크니션들은 불필요한 가벽을 허물고, 패인 곳을 메우고, 페인트를 칠하며 공간을 정돈하느라 분주했다. 그들의 땀방울 속에서, 비어있는 무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3부: 땀과 톱밥의 대화, 관념이 물질이 될 때

우리의 임무는 크레이트 박스를 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벗겨낸 작품과 설치물들은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이 상자들은 전시가 끝나면 그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는 우리가 없을 것이기에, 현지 스태프들이 이 기록을 보고 역순으로 재포장할 수 있도록 분해하는 모든 순서를 사진과 영상으로 꼼꼼히 기록했다.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을 예비하는 일, 그것이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전시의 숙명적 아카이빙이다.

김신일 예술감독과 함께 크레이트 박스를 열고 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우리는 곧바로 전시 구조물 조립에 들어갔다. ‘불복종의 연대기’ 섹션에 놓일 테이블을 조립하며, 나는 오랜만에 이마에 땀을 흘렸다. 한국에서 온 우리 스태프 모두가 달려들어 나사를 조이고 판을 맞췄다. 하지만 테이블 옆에 붙을 패널과의 결합부가 생각보다 약했다. 즉시 계획이 수정되었다. 파벨이 지후 씨와 함께 렌터카를 몰고 철물점으로 향했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쇠붙이 ‘격자’와 목공 본드를 사 왔다. 하지만 두 번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조물의 나무 표면이 바니시로 마감되어 있어 본드가 먹지 않았다. 결국 테이블은 피스로만 조립을 마쳤지만, 벽에 걸릴 패널은 그 무게를 피스로만 버틸 수 없었다. 그때 내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접합 부분을 사포로 갈아내죠.”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민소연 씨가 땀을 흘리며 섬세하게 표면을 벗겨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관념을 물질로 구현하는 과정은 이렇듯 재료의 물성(material contingency)이 가하는 수많은 마찰과 저항을 극복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전시에 쓸 커다란 화분은 구입 대신 파벨의 제안으로 표트르를 통해 현지에서 빌리기로 했다. 내일 도착한다는 화분을 두고, 나는 차를 반납하기 전에 오늘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표트르는 걱정 말라며 웃었다. “화분 크기가 1미터인데, 괜찮겠어요? 그 안에 블루투스 스피커가 들어가야 하는데.” “충분합니다. 그런데 전원은 어떻게 연결하죠?” 개념 속에만 존재했던 전시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가는 과정은 이런 수많은 질문과 즉흥적인 해결책들의 연속이었다. 양국의 스태프들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눈빛과 손짓으로 협력하며 수많은 난관을 현명하게 풀어갔다.


잠깐의 휴식 시간, 파벨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는 타고난 차(車) 마니아였다. 베를린에 다녀온 김신일 감독에게 시속 183km로 아우토반을 달린 소감을 물으며 대화의 시동을 걸었다. 토요타, BMW, 기아. 그의 자동차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다. 유럽 최초의 기아 카니발 시사회에 갔던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소환되었다. 그의 동료인 올가는 지겹다는 듯 눈을 흘겼지만, 파벨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나는 문득 한국의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남성들의 연대감이 각기 다른 문화 속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방언을 찾아내는지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가 바로 그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드라이버 라이선스 있나요?” 김지후 코디네이터가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가려는 그에게 묻자, 그는 “Come on~”이라며 소년처럼 윙크했다. 그의 반짝이는 눈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어떤 문제든 해결해 줄 해결사의 눈빛이었다.


4부: 식탁 위의 연대, 밤의 사색

분주하고 열정적인 첫 설치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주말에 찾았던 ‘보헤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주말에 안면을 튼 직원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이런 날은 짜장면에 탕수육이 최고인데.” 누군가의 탄식에 한국 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발브지흐에서 그런 것을 찾는 건 헛된 꿈이라는 듯, 파벨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주말의 북적이던 식당은 월요일의 한적함 속에서 우리를 맞았다. 우리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아이리시 흑맥주와 로컬 생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을 때,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던 김신일 감독과 김해다 큐레이터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렌터카 사무실 문이 잠겨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점심도 굶고 일한 터라, 지후 씨가 찍어 보낸 메뉴판 사진을 보며 그들을 위한 음식을 미리 주문했다. 다시 한번 해결사 파벨이 나섰다. 몇 차례의 통화 끝에 언성이 높아지는가 싶더니, 그는 특유의 침착함과 현지 네트워크를 동원해 굳게 닫힌 문제를 풀어냈다. 미안해진 19살의 렌터카 직원이 직접 그들을 식당까지 데려다주었다.


나의 폴란드 소울푸드, 주렉은 오늘도 훌륭했다. 우리는 새로운 메뉴와 찜해둔 메뉴를 섞어 주문했고, 맥주로 시작한 저녁은 와인을 거쳐 보드카로 풍성하게 마무리되었다. 베를린에 다녀온 이야기, 곧 수업 때문에 귀국해야 하는 아쉬움, 그리고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는 파벨의 약속. 식사를 나누는 행위(Commensality)를 통해, 그렇게 우리의 밤은 깊어갔고 우리는 비로소 국경을 넘은 하나의 팀으로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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