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톱밥으로 쓴, 낯선 땅 위의 안무
1부: 근육통과 시차, 그리고 아침의 약속
밤사이 잠들었다기보다는 기절에 가까웠다. 어젯밤 김신일감독에게서 “사우나 하려는데 심심하면 같이?”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지만, 확인한 것은 이미 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이었다. 아침 식당에서 8시쯤 마주친 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각자도생하는 거지 뭐”라며 쿨하게 웃어넘긴다. 원래 출장이란 저녁에 하루를 되돌아보며 동료들과 느슨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법인데, 낯선 날씨 탓인지, 나이 탓인지, 몸은 나를 침대로 끌어당기기 바빴다.
나는 여전히 시차 적응에 실패한 채였다. 새벽 두세 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5시까지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조식을 먹고, 갤러리로 향하기 전 잠시 홀로 산책하는 것이 새로운 리듬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쑤셨다. 특히 어깨 근육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어제 생각보다 설치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근육통과 함께 아침의 무게를 더했다. 물론 BWA에서 고용한 테크니션들이 여럿 있었지만, 작가의 의도가 섬세하게 얽힌 구조물은 직접 만져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기질 탓이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설치 둘째 날을 맞이했다.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내려온 김신일 예술감독과 우연히 조식을 함께했다. 술과 와인을 즐기는 그가 호텔 짐에서 새벽 운동까지 하는 모습은,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기 드문 광경이라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호텔의 유명한 거대한 수영장과 제대로 된 사우나는 아직 구경조차 못 해봤는데, 다녀온 젊은 스태프들은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행하는 갈매기처럼 그 후기를 전했다. 아침 식탁의 대화는 건조했다. 저녁의 느슨함 속에서, 주부로프카(Żubrówka) 보드카의 풀 향기 같은 자연스러운 대화로 섬세한 이슈들을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당분간 설치 초반에는 그런 여유를 즐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2부: 이질적인 규격, 그리고 즉흥의 지혜
포토아카이브, ‘불복종의 연대기’ 섹션의 벽면 구조물 조립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구조는 단순했지만, 두껍고 무거운 나무 재질에 바니시까지 먹인 패널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무게를 자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보강재를 덧대야만 했다. 그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가져온 타카(Tacker)와 BWA의 컴프레서 호스 커넥터 규격이 달랐다. BWA의 테크니션은 영어를 못 했지만, 그의 표정과 손짓에는 어떤 마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는 공구를 이용해 타카의 커넥터를 돌려 빼내더니, BWA의 것을 아무렇지 않게 갈아 끼웠다. 오 마이 갓. 나는 평생 그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두 나라의 산업 규격과 ‘노멀’의 기준이 이렇게 달랐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 그것은 때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황당하게 만들지만, 해결되는 순간 이야기가 되고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해결되지 않으면 재앙이겠지만, 우리는 다른 사유의 방식을 통해 길을 내고, 때로는 그것을 해결이라 믿으며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도면 위에서는 기계적으로 맞아떨어질 것 같았던 디스플레이도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변주를 거듭했다. 위쪽 선에 맞춰 정렬하려던 패널들은, 현장에서 보니 아래 선에 맞추는 것이 시각적으로 훨씬 안정적이었다. 지그재그로 배열하려던 순서는 강약의 리듬을 주어 재배열했다가, 결국 초기 버전으로 되돌아갔다. 2단으로 된 계단형 구조물 두 개는, 장난기 많은 아이가 매달리기라도 하는 날엔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겠다는 판단에 따라 보강 작업에 들어갔다. 위나이 작가의 흔적이 담긴 티셔츠는 옷걸이로 걸려다 부러지는 황당한 사고 끝에, 곱게 개어 패널 위에 놓으니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작가의 대양을 건너온 오리 인형은 서로 마주 보게, 아이들 모형은 티셔츠 위에서 노닐게 배치했다. 관념은 그렇게 물질의 저항과 즉흥의 지혜 속에서 새로운 형태를 찾아갔다. 관념 상태로 오랫동안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하고 논쟁하고 협업하고 다듬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자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남작가의 ‘환전소’ 구조물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매뉴얼과 코디네이터들의 화상 통화에도 불구하고, 조립 전 구조물의 부품들은 느슨한 활처럼 자유로운 존재였다. 직선으로 디자인되었지만, 수 많은 디테일들은 추가적으로 상상해야하는 내 눈에는 오히려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찰흙처럼 유동적으로 보였다. 결국 우리는 작가의 뇌가 미처 시뮬레이션하지 못한 부분들을 우리의 근육과 직관으로 AI처럼 채워 넣으며, 그의 기대치를 넘어설 견고하고 아름다운 구조물을 만들어냈다. 숨이 죽어 있던 구조물에 작가의 설치물이 더해지고 전원이 들어가자, 비로소 생명이 깃든 듯했다.
3부: 체첸 용병과 F1 머신, 그리고 소풍 같은 점심
85인치 대형 모니터 설치는 현지 업체가 맡았다. 등장한 두 명의 테크니션은 마치 체첸 용병 같은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중 한 명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오자 가벼운 인지부조화가 일었지만, 곧 깊은 신뢰감이 생겼다. 85인치 TV는 두 사람이 들기에도 버거운, 그 자체로 육중한 물성을 지닌 조각품 같았다. 전원이 꺼진 검은 화면은 매끈한 오석(烏石)처럼 보였다. 산업용 모델인지 로고가 없어 전시에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이 용병들은 특기가 매복인지, 자재만 내려놓고 온종일 사라졌다. 우리 업무가 끝나는 5시 직전에 돌아온 그들은 순식간에 모니터를 설치했다. 화면이 켜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검은 조각이 아니었다. 시동이 걸린 F1 머신처럼 살아 움직이며 초당 30회의 압도적인 이미지를 뿜어냈다. 나는 “와, 극장같아! 이런 게 집에 있어야 하는데”라며 감탄했고, 김신일 감독은 “우리 집에도 있는데 너무 커서 작은 거 써요”라며 무심하고 따분한듯 응수했다(순간 그는 귀족인가 의심을 해봄)
그날 점심은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소풍이었다. 베를린에서 공수해 온 김밥과 신라면, 새우탕면이 야외의 기다란 나무 벤치 위에 차려졌다. 올가는 매운 음식을 두려워했지만, 파벨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신라면을 즐겼고, 달콤한 케이크 앞에서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그는 달콤한 것에 중독되었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큐레이터 해다 씨와 민소연 씨는 시급한 줌 미팅으로 분주했지만, 우리는 햇볕 아래서 소풍 나온 학생들처럼 웃으며 시간을 즐겼다.
에필로그: 숲속의 바비큐, 그리고 회복력에 대하여
오후 내내 표트르와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논의하던 해다 씨의 얼굴이 저녁이 되자 환하게 밝아졌다. 그의 탁월한 기획력은 우리를 호텔 근처 숲속 바비큐 파티로 이끌었다. 캠핑장에서의 계획이 무산되자, 그녀는 마법처럼 국도 변 숲 옆의 초원을 찾아냈다. 한국을 떠난 지 6일째, 모두가 그리워했던 삼겹살(은 아니었지만 삼겹살처럼 우리가 대한 그 고기)이 숯불 위에서 익어갔고, 김치 냄새가 이국의 대기 속으로 자유롭게 퍼져나갔다.
큐레이터 해다 아니 나나언니는 마치 10대째 내려온 이름있는 대장장이 가문에서 만든 것 같은 사무라이 칼, 테팔 주방칼을 휘둘렀다. 내가 마늘을 까며 그 성능에 감탄하며 “닿기도 전에 베이네, 한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웃었는데, 곧이어 그 칼에 그녀가 손을 베는 아찔한 순간이 찾아왔다. 걸어서 3분 거리에서 추가 서플라이 쇼핑중인 ‘후지상’(김신일 감독이 지후 씨에게 붙여준 별명)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밴드를 사 오라는 긴급 미션이 떨어졌다. 나는 바비큐 재료를 쇼핑할 때 몰래 장바구니에 잠입시켜 획득한 선글라스를 끼고 태연한 척했지만, 모두의 마음은 철렁했다.
모두가 안될 거라던 프라이팬 숯불 밥은 놀랍게도 성공했다. 폴란드 음식의 고수 같은 ‘딜(dill)’을 과감히 넣은 고기는 새로운 창조물이었지만 향수병을 달래주기엔 충분했다. 와인따개가 없어 와인은 눈으로만 마시다 결국 여행하는 갈매기가 샴페인을 사 왔고, 보드카 사과주스 칵테일이 그 자리를 채웠다. 내가 화장실 다녀오는 길에 꺾어 온 노란 야생화를 보고 고양이 처럼 눈을 반짝이는 젊은 스태프들은 감탄했다.
나는 취기가 올라 휘청거리며 숙소로 돌아와 그대로 침대 위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새벽 2시, 어김없이 부활하자 어젯밤의 기억이 날아간 파일처럼 느리게 복원되기 시작했다. 애장품인 만능 툴은 사라졌지만, 핸드폰과 선글라스는 무사했다. 흙바닥에 넘어져 욱신거리는 얼굴의 통증과 함께, 나는 이곳의 맥락 속으로 온몸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느꼈다. 어깨는 욱신거리고 몸은 루게릭병 환자처럼 천근만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어제의 그 소란스럽고 유쾌했던 바비큐의 추억이 힘을 주었다. 인간은 이렇듯 예측 불가능한 연대의 기억 속에서 특이한 회복력을 발휘하며, 또 다른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는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