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불협화음,
마침내 우리라는 부족

설치 셋째 날, 헤테로토피아에 세운 사원

by 강제욱

1부: 되찾은 도구, 느슨해진 아침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젯밤 사라졌던 나의 애장품, 만능 툴이 마법처럼 손에 잡혔다. 간밤의 소동 중에 누군가 챙겨 넣어준 것일까. 어쨌든 안도감과 함께 나 때문에 그것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를 스태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 사라지고, 또 무언가 되돌아왔다.


설치 사흘째가 되자, 팽팽했던 긴장감에 약간의 느슨함이 깃들었다. 큰 윤곽이 드러나면서 이제 대부분의 작업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포토겐이 핸들링하는 유럽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장에 옮겨져 제자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깨 통증을 핑계로, 오늘은 오전에 늦게 합류하기로 했다. 나나 언니(김해다 큐레이터) 역시 줌 미팅으로 분주했다. 호텔에 남아 밀린 이메일을 확인하며 약간의 재충전을 했다.


투라즈의 육중한 모니터가 벽에 걸리고 전원이 들어갔다. 제주 비엔날레에서 3미터 가벽에 프로젝션으로 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작업이지만 디스플레이의 물성이 바뀌자, 작품은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로 다가왔다. 모니터 특유의 선명함으로 구현된 이미지는 훨씬 차갑고 시리게 느껴졌고, 날카로운 슬픔의 결이 더욱 선명해졌다. 마치 거대한 수족관을 벽에 옮겨 놓은 듯했다. “측면을 아크릴로 보완해서 아예 수족관처럼 보이게 하면 더 멋지겠는데요.” 나의 즉흥적인 제안에 김신일 감독이 “아, 그러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크니션은 밝기를 40에서 30으로 낮춰 하이라이트가 뭉개지는 현상을 줄였다. 가운데 영상의 사운드를 중심으로 세 모니터의 싱크를 맞추는 동안, 나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참, 우리 전시 지킴이들이 볼 운영 매뉴얼 만들어야 해요.” 나나 언니가 “아, 맞다!”라며 무릎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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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느린 시간, 단단한 벽, 그리고 마법의 글루건

갤러리에 도착하자 이곳의 독특한 시간 감각이 다시 피부로 느껴졌다. BWA의 테크니션과 장비가 모두 지하 전시장에 내려가 있어 협조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의 속도감과 이곳의 ‘워라밸’ 사이의 간극. 한국이었다면 3일이면 끝났을 일이, 이곳의 리듬으로는 2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체감했다. 정가희 작가의 벽지를 인쇄할 업체를 찾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한나절이면 끝날 일이. 그 느림은 때로 답답했지만, 어쩌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담고 있는지도 몰랐다.


BWA의 일부 시멘트 벽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여러 작품이 이어지는 경우, 콘크리트를 뚫고 앙카를 박아 수평을 맞추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때 김신일 감독이 제안했다. 압정의 핀을 부러뜨려 글루건으로 벽에 붙이고, 그 위에 사진을 얹은 뒤 네오디뮴 자석으로 고정하자는 것이었다. “두 달 동안 버틸 수 있을까요? 제가 전에 작업실에서 써보니 10개 중 2개는 떨어지던데요.” 나의 회의적인 반응에 그는 소년처럼 웃으며 테스트를 제안했다. 놀랍게도, 한국에서 가져온 글루건으로 붙인 압정은 사람의 힘으로는 떼어지지 않았다. 이곳의 기후, 시멘트, 페인트의 마법인가. 혹은 여긴 물리법칙이라도 다른 것일까? 그 이유는 미궁이었지만, 그의 주도하에 작품들은 순식간에 벽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긴 여긴 버터도 실온 보관하는 곳이다. 여름의 실온에서 각진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버터가 당연한 이곳이 아직 신기하다)


나는 ‘불복종의 연대기’ 섹션에서 타이어 바리케이트에 우크라이나 국기색을 칠하고, 브릭북(벽돌 목업북)의 형태를 다듬었다. 선반 위로 레고 모형과 다양한 아카이브 오브제들이 올라가자 제법 근사한 풍경이 완성되었다. 파벨이 가져다주기로 한 우크라이나 맥주병과 난쟁이 인형이 도착하면, 옷을 찢어 화염병을 만들 일만 남았다. 누구 옷을 찢지? 우리의 설치 퍼포먼스의 정점이 될... 그 사이, 나나 언니와 민소연 씨는 하루 종일 머리를 맞대고 사진을 찍고 폴란드어로 번역하며 ‘해체 매뉴얼’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떠난 후, 현지 스태프들이 이 복잡한 구조물들을 오차 없이 해체하여 다시 그대로 크레이트에 담을 수 있도록, 미래의 부재(不在)를 위한 정교한 안무를 짜는 중이었다.


3부: 부족의 만찬, 우리만의 헤테로토피아

폴란드 오이지에 고추가루를 넣어 흔들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를 나누는 행위다. 문명이 창조한 대형 슈퍼마켓의 진열대는 국경을 넘나드는 물류의 최적화와 욕망이 집약된 경이로운 공간이다. 우리는 그 속을 수렵 채집하듯 누비며, 위장의 향수병을 달래줄 재료들을 찾아냈다. 한계 속에서 최대한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조합하고 창조하는 과정, 그것은 발효의 신맛이든 식초의 신맛이든 ‘한국의 맛’이라는 관념을 구현하려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 행위였다.


오늘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어제의 그 피크닉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의 저녁 식사 장소는 우리만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였다. 혹은 비밀의 정원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에는 비밀스러운 부두교 사원일지도 몰랐다. 현실에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질서와 논리를 가진 공간. 그곳에서 우리의 대화는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을 얻었다.


태블릿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누군가 감탄했다.

“음악 죽이는구만.”

“와인이 이거 달콤하네.”

“진짜요? 잘못 샀어. 꿀 탄 것 같아.”

우리는 와인 맛을 품평하고, 고춧가루의 맵기를 논하고, 숯불의 세기를 조절하며 서서히 하나의 부족이 되어갔다.

“어제는 약간 우왕좌왕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부족이야. 진짜 부족이다.”

해다 씨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땅을 파고, 돌을 고르고, 불을 피우고, 고기와 야채를 손질하는 원시적인 행위 속에서 우리는 어떤 회복력을 경험하고 있었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나나 언니의 아이디어인 김치찌개였다.

“이 김치찌개를 하려면 기름으로 한 번 볶아야 되는 거 아닌가, 김치를?”

“기름 없어도 괜찮아. 고기 기름이 나와서 괜찮겠다.”

이런 환경과 조건에서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내가 슈퍼에서 찾아낸 고춧가루를 폴란드 오이 피클에 넣어 흔드니 즉석 오이지가 되었다. 캔 김치도 발견했다. 어제 남겨두어 시원해진 와인과 함께, 부족의 만찬은 무르익었다.

어쩌다 투라즈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내가 의역한 그의 작품 제목, ‘나는 노래로 불려지지 않으리(I’m not a song to be sung)’에 대해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나는 죽어서 영웅 노래로 불려지지 않고, 그냥 끝까지 살아서 맞서 싸우겠다는 내용인 거예요. 너무 멋지지 않아요?”

그의 작품이 품고 있는 복합적인 서사가 한국과 폴란드의 맥락과 만났을 때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숯불의 온기 속에서 열띤 대화를 나누었다. 뉘엿뉘엿 지는 석양 속으로 우리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더욱 깊이 스며들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남은 음식과 냄비는 내일을 위해 숲속에 숨겨두었다. 우리가 팠던 땅은 흙으로 다시 메웠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부시맨 같았던 우리는 우리의 비밀을 뒤로 그곳에 남겨두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의 문명인의 모습으로, 특이점 없는 자연스러운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인 혹은 외국인으로 변신했다.


4부: 고요한 축배와 새로운 약속

다음날 이른 아침, 어젯밤의 유쾌한 연대가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일까. 원래 학교 수업 때문에 개막식 이틀 전 서둘러 귀국하기로 했던 김신일 예술감독이 카카오톡 단체방에 예상치 못한 메시지를 남겼다.


“저 오프닝까지 있을께요. 비행기표 변경과 호텔 연장 알아봐 주세요~ 같이 돌아가는걸로~”


폴란드의 고요한 아침 속에서, 우리의 핸드폰은 한국의 분주한 오후를 실어 나르며 짧은 탄성으로 연달아 울렸다.


“Hurl?”

김해다 큐레이터의 한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oh~”

나의 감탄사가 뒤를 이었고, 곧이어 민소연 코디네이터의 “오왓”이라는 귀여운 외마디가 올라왔다.


일을 번거롭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우리는 너무나 좋다는 말로 화답했다. 숲속에서의 그 저녁이, 고된 노동의 피로를 녹이는 것을 넘어 흩어져 있던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단단히 묶어준 것이리라. 그렇게 우리의 춤은, 예측 불가능한 스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육체의 고단함 속에서도 우리의 정신은 오히려 더 맑아지는 듯했다. 땀과 톱밥, 그리고 국경을 넘은 연대의 기억 속에서, 우리 부족의 전시는 마침내 온전한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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