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넷째-닷새, 마지막 조율과 숨 고르기
1부: 경고음과 난쟁이, 그리고 숨겨진 의도 (설치 나흘째, 목요일)
설치 나흘째. 이제 갤러리의 공기에는 톱밥과 페인트 냄새 대신 차분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큰 전투가 끝나고 전장을 정돈하는 시간. ‘불복종의 연대기’ 섹션의 디테일을 조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빨래줄의 높낮이를 미세하게 조절하고, 타이어 바리케이트의 위치를 다시 잡았다. 태국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붉은 셔츠—우리 전시 제목을 태국어로 번역해 새긴—를 곱게 접어 자리를 잡았다. 알렉산드르의 브릭북(벽돌 목업북)이 묵직한 존재감을 뽐내도록 각도를 맞추고, 내가 가져온 작은 난쟁이는 글루건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때 파벨에게서 메신저로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브로츠와프 시장을 뒤져 찾아낸 난쟁이 조각 후보들이었다. 나는 그중 20센티 정도 되는 놈을 골랐다. 다른 전시물에 비해 너무 튀거나 존재감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섹션의 복잡한 서사를 관객과 연결해 줄 안내자(mediator) 혹은 마스코트 역할을 해내길 바랐다. 작가들의 국가와는 직접적인 연관도, 별다른 설명도 없지만, 나는 이 작은 존재가 침묵의 옵저버가 되기를 의도했다. 난쟁이가 품고 있는 자유와 저항의 역사를 이미 알고 있는 폴란드 관객들에게, 아시아의 서사가 이곳의 역사와 조우하는 은밀한 접점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그때였다. “어, 이상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지 않아요? 어디서 경고음이 나는 것 같아요?” 민소연 씨가 두려운 표정으로 물었다. 렌탈 장비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현지 장비 설치업체는 이미 철수한 후였기에 모두의 신경이 곤두섰다. 공간을 유심히 살피던 내가 대답했다. “그 경고음, 정은영 작가 작품 중간에 무대 객석이 이동하는 소리예요.” 안도의 웃음과 함께, 우리는 작품이 스스로 내는 소리에조차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지를 깨달았다. 모모세 작가의 모니터에도 비로소 생명이 깃들었고, 김정한 작가의 입체 안경도 제자리를 찾았다. 화분에는 흙이 채워지고, 우크라이나 국기색은 세 번의 덧칠 끝에 깊은 색감을 얻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정가희 작가의 세라믹 작업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제로 남아 있었다. 작품은 위태롭게 서 있었고, 가벼운 접촉에도 쉽게 넘어질 듯한 구조였다. 강하게 고정하자니 섬세한 작품이 상할 것이고, 그냥 두자니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다. 투명한 아크릴 박스를 급히 제작해야 하는 걸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전시라는 상황에 완벽히 설치될 수 있는 상태로 작품이 전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함 속에서 또 다른 즉흥의 스텝을 밟아야만 했다.
그 사이, 김지후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는 ‘불복종의 연대기’ 섹션에 비치될 핸드아웃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카이브 자료들은 관람객의 손을 타며 매일 위치가 바뀔 것이기에, 고정된 배치도를 그리는 것은 무의미했다. 대신 그는 각 오브제에 작은 번호를 붙이고 핸드아웃에는 번호별 설명을 싣는 영리한 방법을 택했다. 관객들은 번호를 통해 보물찾기를 하듯 자유롭게 오브제를 찾아보고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 전시 관리자가 원래의 배치대로 다시 세팅할 수 있도록, 기준이 되는 원본 배치도를 운영 매뉴얼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그 운영 매뉴얼에 추가되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이슈가 있었다. 바로 화분이었다. 두 달의 전시 기간 동안 식물이 살아남으려면 햇볕이 필수적이지만, 창문 하나 없는 전시장은 식물에게 가혹한 환경이다. 나는 지난 제주 비엔날레에서 비슷한 화분 작업이 한 달도 안 돼 시들해졌던 경험을 떠올리며, “매일 전시가 끝나면 밤새 식물용 LED 조명을 쏘여주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제안했다.
다시 약속이라도 한 듯 해가 질 무렵, 우리는 ‘부시맨’이 되었다. 우리의 초원으로 향했다.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기도 했다. 후보지 세 곳이 올랐지만, 원래 장소보다 나은 곳은 없었다. 오늘은 캠핑용 의자까지 장만해 제법 모양새가 났다. 바닥에 앉으면 한번 일어서기가 힘든 우리였다. 나나 언니의 요리 솜씨는 이날 제육볶음에서 정점을 찍었다. 나는 ‘병만족’이 주방장으로 섭외해갈 솜씨라며 감탄했다. 나는 여전히 마늘까기 담당이었다. 그렇게 숯을 구워 만든 제육볶음과 함께, 우리의 밤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비가 내렸다. 마치 우리의 짧았던 부족 생활에 작별을 고하듯, 흩뿌려진 소금과 설탕 따위는 빗물에 녹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고, 우리의 헤테로토피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2부: 대화의 연대기 (설치 다섯째 날, 금요일)
금요일이 되자, 우리에게는 드디어 전시장 옆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와인을 즐길 여유가 생겼다. 그 자리에서 나나 언니는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 전시 홍보 영상을 보여주었고, 모두가 그 전문가적인 솜씨에 감탄했다. 우리는 웨이터의 추천을 받아 현지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다. 풍부한 과일 향이 일품이었고, 끝 맛은 기분 좋게 드라이했다.
훌륭한 와인은 또 다른 와인의 기억을 불러왔다. 와인을 즐기는 김신일 감독에게, 나는 자연스럽게 조지아 와인 이야기를 꺼냈다. 트빌리시 힙스터들의 성지로 불리는 복합문화공간 파브리카(Fabrika)에 있는 내추럴 와인 바의 근사함과, 현지인 친구 집에서 맛본 직접 담근 와인의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의 눈은 반짝였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리는 와인 맛 너머로 그가 겪었을 시간과 공간, 사람들의 얼굴을 상상했다. 타국에서, 우리는 또 다른 타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레스토랑 옆을 지나가던 BWA 큐레이터 표트르와 이로나를 발견했다. 우리는 그들을 잠깐 불러 세워 준비해 온 선물을 전달하는 간단한 증정식을 가졌다. 지난 시간 동안의 헌신적인 협력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한국의 문화와 전통이 담긴 작은 선물들에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특히 이로나는 마음에 들었는지, 선물 받은 스카프를 그 자리에서 바로 목에 둘렀다. 그 소박하고 따뜻한 제스처 하나가 지난 며칠간의 고단함을 눈 녹듯 녹여주었다.
해 질 무렵, 석양의 으스름한 빛을 즐기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 둘은 김신일 감독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도 문제로 옮긴 그의 새 방은, 커다란 창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술 마시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와인으로 시작된 대화는 부족해 보드카 두 병을 더 비우며 깊어졌다. 화제는 본격적으로 작업과 예술론으로 이어졌다. 불교의 공(空) 사상과 달라이 라마, 빅뱅과 초신성 폭발, 그리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緣起)의 개념까지, 대화는 두서없이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우리는 그 거대한 사유의 지도 위에서, 이번 전시에서 마주했던 섬세한 문제들을 하나씩 올려놓고 그 의미를 되짚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우리는 스태프들을 방으로 불러내 이 깊고 유쾌한 대화를 함께 나누었다.
3부: 주말의 여백, 계속되는 춤
모든 포장재를 크레이트 박스에 다시 집어넣고, BWA 측에 창고로 이동해달라고 부탁하며 공식적인 한 주의 업무를 마무리지었다. 주말엔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누군가는 프라하 당일치기를 계획했고, 나는 호텔에 남아 다음 프로젝트들의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제안서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때로 서로에게 이런 여백이 필요하다.
물론 여백 속에서도 일은 계속되었다. 포토겐 측에서 준비하기로 한 레터링 작업에 대한 회신이 늦어지자,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한국에서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제작해 온 우리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에 대비하는 것. 그것이 이 낯선 땅에서 우리가 익힌 생존법이자, 우리 춤의 스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