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의 Kantor와 폴란드의 Kantor

단어의 여행

by 강제욱

최근 폴란드 출장 중에, 남작가의 작품 속에 선명하게 'Kantor'라고 적힌 환전소를 보고, 그 어감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환전소 라는 의미와 매칭하기 힘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했을 때, 거리 곳곳에서 'Kantor'라는 단어를 마주쳤다. 외형상으로는 사무실이나 오피스를 가리키는 듯했다 – 정부 기관, 회사 건물, 심지어 가게 간판까지.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문득 폴란드에서의 그 환전소가 떠올랐다. 두 단어가 철자와 발음이 놀랍도록 비슷한데, 의미는 미묘하게 다르다. 폴란드에서는 환전소, 자카르타에서는 오피스. 이 우연한 연결고리가 호기심을 자아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곳은 자카르타의 'Post Kantoor'라는 카페였다. 150년 가까이 된 유서 깊은 건물을 개조한 이곳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카페 이름이 왜 'Post Kantoor'일까? 처음엔 단순히 빈티지한 네이밍이라고 여겼지만, 내부를 둘러보니 우표와 우편 관련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아, 이 건물은 원래 우체국이었구나. 'Post'는 우편을, 'Kantoor'는 사무소를 의미하는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가 300년 이상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런 북유럽어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폴란드의 'Kantor'와의 유사점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서슬라브어군에 속하는 폴란드어와 네덜란드어가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단어를 공유할까? 환전소와 오피스라는 의미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귀국 후, 이 호기심을 풀어보기로 했다.


조사를 해보니, 이 단어들의 뿌리는 중세 라틴어 'computōrium'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computōrium'은 '계산하거나 기록하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 상업적·행정적 계산이 이루어지는 사무소를 가리켰다. 이 라틴어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다양한 언어로 차용되었다. 네덜란드어에서는 'kantoor'로 변형되어 '사무소'나 '오피스'를 의미하게 됐고,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대에 네덜란드어에서 빌려온 단어가 현지 철자 규칙에 맞춰 단순화되어 'kantor'가 되었다. 네덜란드어 원형에서 'oo'가 긴 모음을 나타내기 위해 반복되었던 것이 인도네시아어에서는 'o' 하나로 줄어든 것이다. 인도네시아어에는 이런 차용 단어가 많아서, 예를 들어 네덜란드어 'kamer'(방)가 'kamar'로, 'bontjes'(콩)가 'buncis'로 변형된 경우를 볼 수 있다. 언어가 식민지나 새로운 문화권으로 이동할 때, 종종 철자와 발음이 단순화되는 현상은 영국 영어가 미국이나 다른 영연방 국가로 퍼지면서 간소해진 것과 비슷하다 – 복잡한 규칙이 현지화되며 더 직관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독일어의 'Kontor'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중세 한자 동맹 시대에 북유럽 무역 도시에서 'Kontor'는 상업 사무소나 창고를 뜻했으며, 현대에는 다소 구식으로 느껴지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여전히 쓰인다. 한편, 폴란드어 'kantor'는 주로 '환전소'를 의미하지만, 이 역시 'computōrium'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세 유럽 상업 용어가 독일어를 통해 슬라브어권으로 전파된 결과다. 환전소라는 구체적 의미는 돈을 계산하고 교환하는 행위가 강조된 데서 비롯된 듯하다. 현대 폴란드어에서 일반 사무실은 'biuro'로 불리지만, 'kantor'는 환전이라는 특화된 맥락에서 살아남았다. 이렇게 보면, 환전소와 오피스라는 차이는 단어의 진화 과정에서 지역적 필요에 따라 분화된 결과다 – 계산과 기록이라는 공통 뿌리에서 출발해, 유럽과 아시아로 퍼지며 각자의 삶을 살게 된 셈이다.


흥미롭게도, 이 어원은 현대의 '컴퓨터'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원래 'computer'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가리켰다. 17~19세기 영어에서 'computer'는 수학적·상업적 계산을 수행하는 '계산원'을 의미했다. 라틴어 동사 'computāre'(계산하다, 합산하다)에서 파생된 'computator'(계산하는 사람)가 영어로 넘어온 형태였다. 그러다 20세기에 전자 기계가 계산을 자동화하면서 'electronic computer'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결국 'computer'가 기계를 뜻하는 단어로 정착했다. 'computōrium'은 이 동사에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 '-ium'을 붙여 '계산하는 장소'를 만든 것으로, 비슷한 예로 라틴어 'scrīběre'(쓰다) + '-ium' → 'scriptorium'(글을 쓰는 장소, 필사실)이 있다. 이런 접미사 패턴은 라틴어의 매력적인 측면으로, 추상적 행위를 구체적 공간으로 변환한다.


이 단어의 여정이 단순히 유럽과 아시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남미 파라과이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2000년대 초반, 당시 브라질 대통령이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la da Silva)가 스캔들에 반박하며 자신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다고 말하며 브라질 포르투갈어 특유의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computador'(컴퓨터)를 'com putador'로 나누어, 'putador'(창녀를 좋아하는 사람, womanizer)라는 뜻으로 장난스럽게 비튼 농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말장난은 브라질의 유쾌하면서도 약간은 machista(남성 중심적)인 유머 전통에 딱 맞아떨어졌고, 당시 인터넷에서 – 아마 2004년에서 2006년 사이 – 한 언론사의 만평으로 이 장면을 풍자한 걸 본 기억이 난다. 이 농담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며 나도 이제 이곳 남미에 속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았다. Lula의 이런 농담은 그의 서민적이고 직설적인 스타일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언어가 가진 다중적 가능성을 떠올리게 했다. 'computador'라는 단어가 단순한 기계를 넘어, 말장난으로 문화적 뉘앙스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경험은 자카르타의 'kantor'와 폴란드의 'kantor'를 연결짓는 단서가 되어, 단어 하나가 얼마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품을 수 있는지 깨닫게 했다.


더불어, 라틴어 'centrum'(중심, center)도 연관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centrum'은 기하학적 중심을 뜻하지만, 도시나 사회의 '중심지'를 가리키는 데도 쓰였다. 터키 동부 일부 지역에서 현지인들이 시내를 'sentrium'이나 'centrum'으로 부르는 것을 들었을 때, 소름이 돋을 만큼 고대의 언어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다. 터키어에 'centrum'이 차용되어 쇼핑 센터나 도시 중심지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있어서, 로마 제국의 유산이 오스만 제국을 거쳐 현대까지 이어진 셈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현지인이 "centrum"이라고 말하며 시내 방향을 가리킬 때, 언어의 긴 여정을 실감했다.


이처럼 'kantor'라는 단어 하나가 폴란드 환전소와 자카르타 오피스를 연결짓는 실마리가 되었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지도다. 식민지, 무역, 기술의 진화, 그리고 심지어 농담까지 얽힌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목소리를 듣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다음 여행에서 또 어떤 단어가 나를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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