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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제욱 Jul 14. 2019

재난의 현장에서

듬직한 친구 Rollei Prego 90

좋은 사람이란 

장비의 성능을 평가할때 가장 많이 하는 오류는 바로 두개의 장비를 한 장소에서 나란히 놓고 촬영한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다. 카메라는 기계이지만 창작품으로서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A와 B라는 사람을 비교할때 개개인의 인격과 개성을 무시한채 암산능력만 본다거나 혹은 누가 더 빨리 뛰고 누가 더 힘이 쎈지 겨루게 하여 좋은 사람의 순위를 평가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음악에 재능이 있을 것이고 운동을 잘하거나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등 다양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노예를 선발하는게 아니라면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며 각 장비의 고유한 성격과 개성을 유심히 들여다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카메라와 렌즈들이 존재한다. 쓰는데 크게 지장이 없을 최소 이상의 결과물만 보장되는 장비라면 그 이후부터는 정량화할 수 있는 수치보다는 어떤 감성을 가진 장비인지 눈여겨 보자. 사실 더 좋고 나쁨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다. 목탄화를 선호한 화가에게 백날 성능좋은 정교한 샤프를 권해봐야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어떤 렌즈는 샤프하고 어떤 렌즈는 뭉뚝하거나 소프트하고 입자가 미세하게 표현되거나 거칠기도 한다. 작가가 원하는 의도에 따라서 모든 사람이 나쁘다고 평가하는 렌즈가 최고가 될 수 있다. 수차가 심하고 어둡고 비네팅이 있는 렌즈라고 무조건 나쁜렌즈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점들에 오히려 열광할 것이고 그들에겐 최고의 렌즈일 것이다. 작은 사이즈의 프린트를 선호하는 사진가에게는 고화소의 카메라도 역시 의미가 없다. 개방으로 보케 사진찍는 사진가에게는 조리계링 조차도 필요 없을 것이고 장노출을 주로 찍는 사진가들은 다양한 고속의 셔터 스피드가 필요가 없다. 오직 B나 T셔터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다. 쉐도우가 진한 어둠속에 완벽하게 묻혀버리는 사진을 원하기도 하고 쉐도우의 모든 디테일이 각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이것은 작가가 무엇을 추구하느냐의 문제이지 무엇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작가에겐 이러한 매체의 특성을 잘 주무를 수 있는 경험과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 최종 결과물을 좌우하는 것은 주로 렌즈이지만 어떤 필름을(회사, 타잎, 감도, 유통기한) 조합하느냐 그리고 어떤 노출과 현상 데이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또한 어떤 인화지의 입자와 프로세스와 필름이(혹은 확대기 콘덴서의 빛이) 만나느냐에 따라 다시 한번 다양한 변수로 연주된다.  


비운의 카메라 회사 롤라이

수 많은 명작, 명기들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팔려다니다가(심지어 삼성에도) 사라진 회사이다. 롤라이는 Rollei35 , Rolleiflex 시리즈 같은 수동 필름 카메라 시대의 주옥같은 명작들을 생산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찌 전문가용 카메라 사업에서 철수하고(심지어 무려 디지탈에 밀려난 것도 아니다!) 컴팩트 카메라 사업에 전념을 하게 된다. 슈나이더 렌즈 버전과 롤라이나르(마미야사 생산) 버전 그리고 삼성기의 롤라이, 삼성에서 탈출(?)한 이후의 카메라들이 있다. 롤라이의 태생적인 한계는 아마도 렌즈를 타사에 의존해서 공급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SLR 전성기에 생산하였던 롤라이사의 SLR카메라들이 우수한 렌즈성능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이 우수하였지만 낮은 가격의 일본제 카메라보다 못한 기계적인 완성도와 작은 고장이 가장 큰 이유가 됬을 것 같다. 또한 AF기술의 눈부신 발전 등 대기업으로 성장한 일본제 브랜드들이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을 개발하고 발표하는 속도 경쟁에 도저히 따라갈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Rollei QZ 35T. 1990년대 중후반 생산. 디지탈로 복각되도 멋질것 같다. 단 좀 크기는 작게. 상판과 스트로보 디자인은 정말 2019년의 디자인이라해도 믿어질 정도!

롤라이 프레고 시리즈 컴팩트 카메라들의 한계를 극복한 SLR카메라와 거의 동일한 성능과 더 비싼 가격을 갖춘 컴팩트의 끝판왕인 Rollei QZ (35W/T)시리즈 같은 애매한 전문가형(?) 황금색 카메라도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출시되었고 의외로 이 기종은 오히려 콘탁스 사의  G1, G2와 가족처럼 느껴진다.(순간 QZ에 혹 하여 장터를 뒤지다가도 결국 최종적인 선택은 결국 G시리즈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G의 홍보대사인가?) 이 모델은 아예 상판에 포르쉐디자인이라고 자랑스럽게(한편 촌스럽게) 새겨져 있다. 이후에는 Rollei 35RF(2002년 발매)라는 Bessa R2기반의 코시나사 가 생산한 라이카 M마운트를 단 족보 없는 모델이 잠깐 등장하였다 사라졌다. 

또한 어쩌다 갑자기 필름을 생산 하는 등 괴기한(?) 행적을 벌이다 2015년에는  RCP Technik Verwaltungs GmbH & Co. KG사에 인수되어 유럽에서 디지탈 커슈머& 악세사리 회사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다. 2019년에는 뜬금없이 베터리 충전기를 포토키나에서 발표하기도 하였다. 퇴역하여 잊여진 컨트리 뮤직 가수가 되어 이름값만 남아 노인들만 오는 시골 인삼 축제에 불려다니는 꼴이다. 


그리고 Prego 90

롤라이사가 일찌감치 전문가형 카메라사업에서 철수하고 컴팩트 카메라시장에 집중을 하였지만 그렇다고 콘탁스 T2, T3같은 고가의 명기들을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눈에 띄는 카메라는 줌렌즈를 장착한 Prego 90이고  단렌즈 카메라로는 고급형의 Rollei Prego 30(30mm), 저렴해 보이는 Rollei Prego AF(35mm) 정도가 있고 리코에서 OEM생산한 Rollei Prego Micron이라는 변종도 있다(30mm와 24미리 파노라마) 암튼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모델은 Prego 90인데 28-90mm 줌렌즈로 컴팩트 카메라지만 SLR 못지않은 화질(레이져 샤프)로 알려져 있다.(QZ가 들으면 서운하겠다.) 밝은 대낮에선 정말 훌륭하다. 덩치도 SLR 못지않다. 번거롭긴 하지만 다행히 노출보정도 가능하다.(전원을 끌때마다 세팅값이 사라진다. 결국 촬영할때마다 다시 세팅을 해야한다는 의미. 차라리 필름 DX코드를 해킹하는게 편할듯) 국내 장터에서 15만원 내외 이베이에서는 110달러 선이다. 관세와 운송료를 감안한다면 국내외의 가격이 비슷하다. 그러나 이베이에도 매물이 이제 거의 없는 것을 보자면 앞으로 희소성이 높아질 듯하다. 암튼 그냥 10만원때의 쓸만한 컴팩트 카메라중에 하나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사용해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물론 1996년 발매 당시에는 고가에 속하는 카메라였다. 국립대 등록금의 거의 절반이었다.) 사실 아무리 컴팩트 카메라라고 해도 28미리 화각의 카메라들은 귀하고 대부분 고가이다. 그래서 28미리 화각 전용으로만 써도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에 프레고 90을 들이게 되었다. 일단 흑백사진의 표현력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아래에 첨부한 여수산단에서 대낮에 강한 햇빛(2018년 8월 12일/유통기한 지난 IlfordFP4 Film/-1stop현상)에 촬영한 흑백 사진을 보면 마치 마치 흑백 사진용 오렌지 필터를 장착한 것과 같은 표현을 보여준다. 

롤라이의 HFT 코팅렌즈는 아주 우수한 흑백 이미지를 선사한다. 심지어 흑백사진 전용의 오렌지 필터를 끼운 것 같은 깊은 톤을 보여준다.  2018년 8월. 

아. 이게 바로  HFT코팅*이구나 감탄을 하게된다. 아예 흑백전용 카메라로 사용을 해도 좋을듯하다. 8월 여름 년중 가장 강력한 남도의 햇빛에서도 하일라이트부터 쉐도우까지 안정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또한 같은날 해변가에서 찍은 칼라 네거티브 사진(유통기한 지난 Kodak GOLD 400 FILM/+1stop 현상)을 보면 강한 햇살에서 매력적인 색감을 보여준다. 심도가 깊은 촬영에서 아주 우수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28미리 화각에서 주변부의 노출이 어두워 지는데 맑은 날에는 큰 문제는 없지만 흐린날에는 노출만 어두워 지는게 아니라 주변부 화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조리계 f3.6의 어두운 28미리 렌즈라고 하지만 심한 편이고 컴팩트 사이즈의 줌렌즈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화질 저하를 피하고 싶다면 35미리 화각정도로 줌을 해서 찍는 것도 방법이다. 

칼라 필름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코닥GOLD 400 FILM (+1Stop증감현상)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2018.08

그러나 컴팩트 카메라 운용상의 편리함을 보자면(비록 작은 SLR크기의 콤팩트 카메라지만) 흐린날에도 주변부까지 선명해야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카메라는 분명 최고의 28-90mm 컴팩트 줌 카메라라고 말할 수 있다. 왠지 너무 저렴한 가격에 미안할 정도이다. 줌 렌즈이지만 50미리 화각에서도 안정적인 화질을 보여준다.(50미리에서는 비네팅과 화질 저하가 없다.) 유통기한 지난 칼라 필름의 경우 현상과정에서 +1stop 현상을 하면 비네팅이 줄어들고 색감이 밝아진다. 정리하자면 아주 낮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컴팩트 카메라면서도 우수한 화질의 28-90mm 줌 컴팩트 카메라이다. 저조도 광각촬영에서 주변부 화질 저하와 비네팅이 나타나지만 비네팅은 현상으로 제어**가 가능하다. 화질저하는 저조도 촬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무거운 주제의 작업에서는 화면의 중심부에 더 시선을 주목시키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잘 못 사용하면 저조도에서는 아무 곳에서도 촛점이 안 맞은 것 같은 사진이 나타나기도 한다. 내장 플래쉬를 필라이트로 적절하게 사용하면 저조도에서 강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단점은 컴팩트 카메라치고 등치가 커서 손에 쥐기가 불편하다. 대륙친구들이 전용 그립이라도 생산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 

*High-Fidelity-Transfer
**유통기한이 15년씩이나 지난 필름들의 속성은 일반적인 필름과 많이 다르다. 일담 감도가 1stop에서 2stop 정도 줄어들고 베이스가 포그가 끼어 있으며 증감을 해도 하일라이트의 변화가 거의 없다. 정상적인 필름이라면 노출에서는 쉐도우, 현상값에서는 하일라이트가 가장 변화가 많은게 맞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여야 한다. 

발매연월 1996년 3월 

발매가격 53,000엔 

렌즈  Schneider-Kreuznach AF Vario Apogon 28mm~90mm F3.6~F9.8 HFT Makro(8군 11매)

셔터 B, 1/3~1/400 sec. 


플라스틱의 미학과 롤라이의 디자인

롤라이 Prego 90의 디자인은 곡선 중심의 유선형 디자인이다. 공기 저항을 피하기 위해 유선형을 택했을리는 없지만 당시 경제적 호황기에 자유롭게 성형이 가능한 사출 플라스틱은 과거 금속제 카메라가 구현하기 힘든 곡선의 표현을 디자이너들이 자유롭게 즐긴듯하다. 스포츠카를 타고 해변가를 질주할때 꺼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롤라이사는 아직도 카메라 회사들이 카메라를 차가운 기계로만 바라볼때 카메라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시도를 했다. 아이폰 이후에 다시 최소한의 곡선과 함께 날선 직선의 미학에 몰두하게 되었지만 인류에게 공산품에서 곡선을 자유롭게 구사하게 된 것은 분명 플라스틱이 선물한 자유이며 90년대에 절정을 이루고 1998년 기념비적인 iMac G3모델이 탄생하게 된다. 과거에는 공학자가 카메라 안의 혁신적 기계적 작동구조에 맞춰서 혹은 금속 가공기계의 한계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카메라의 디자인이 최종 결정되었다면 이제는 디자인이라는 요소가 독자적으로 분리되어 자유롭게 종이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카메라가 단순히 사진을 찍는 일을 하는 기계가 아니라 이제 일상에서 패션 라이프의 일부-소품이 된 것이다. 사진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그저 필름을 끼우는 것만 배우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사진이 잘 나오는 카메라 기술의 진보도 대중화에 한 몫을 했다. 사실 카메라 역사의 혁신은 AF 기능을 비롯하여 전문가형 카메라가 아닌 대중을 위한 컴팩트 카메라가 주도한 부분이 많다. 

여수 마래터널, 2018년 8월(IlfordFP4 Film/-1stop현상)
포천 약사봉, 2018년 8월 (TMX Film/-1stop현상)



산사태로 마을의 일부가 사라진 현장. Fuji Superia 100 Film(유통기한 2004년), 2019년 01월 촬영(노말현상)


필리핀 나가시 산사태 현장 

2018년 9월 20일 필리핀 세부 주 나가시의 채석장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인접 2개 마을을 덮치면서 57채가 매몰돼는 일이 발생하였다. 21명이 숨지고 67명이 실종되었고 결국 인근 마을 5곳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785가구 2천 400 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당국은 슈퍼 태풍 망쿳 이후 계속 내린 비가 산사태의 원인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현상으로 다양한 자연재난이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제 슈퍼 태풍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서태평양에 위치하여 태평양에서 발생한 많은 태풍들이 기본적으로 필리핀을 거쳐가기에 재난이 일상화되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또한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와 더불어 지진피해가 가장 많은 국가이다. 


필자가 기획, 운영하고 있는 예술과 재난 팀과 함께(http://artndisaster.org) 지난 2019년 일월초에 산사태 발생 후 2달이 지나 복구를 진행하고 있는 나가 마을을 방문하였다. 재난 피해 지역에서 예술가들이 진행하는 트라우마 극복 프로그램의 새로운 사업지를 찾기 위한 리서치 방문이었다. 나가시의 번화가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이었고 도로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들어가는 마을이었다. 현장의 풍경은 참담하였다. 마을의 일부가 무방비로 쓸려 내려가버린 상태였다. 신년연휴 기간이라 복구 공사는 잠시 멈춰 있었다. 주민들에게 산사태의 원인을 물으니 말을 아끼는 느낌이다. 이상하였는지 함께 동행한 태국인 사진가 Suthep Kritsanavarin 씨가 마을 주민 중에 채석장에 근무하는 이들이 많다고 물으니 그렇단다. 고개를 저으며 주민들에게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숨을 쉰다. 지구상에서 태풍피해가 가장 심한 국가에 속하는 국가이지만 동시에 안전에 대한 정부의 관리부족도 당장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주민들 역시 자연재난의 원인을 국가나 회사로 주목하고자 하는 비판의식이 특별히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일상화 되어 있는 자연재난을 그저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하다. 주민들에게 물으니 마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산사태 이후 주민들이 모여 함께 마을을 정비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큰 재난이 지나갔지만 아이들은 뛰어놀고 폐허들을 재외하고는 여전히 평화로운 시골 마을 이었다. 단 폐허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마을 원로들의 무거운 모습을 통해 피해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현장을 둘러 보았고 함께간 현대무용가는 재난의 아픔을 즉석해서 몸짓으로 표현을 하였다. 현대무용가 이아영씨는 마치 씻김굿을 하듯이 몸짓으로 망자들을 위로하고자 하였고 재난 복구 현장의 일상에서 잠시 주민들은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순간 구체적인 무언가를 남기지 않더라도 예술을 통한 소통 자체에도 의미가 있음을 실감한다. 이후 보홀 지진이 파괴한 보홀 지역의 현재 모습을 한국, 대만, 태국의 예술가 들과 함께 들러보며 재난을 예술로서 극복하고자 함께 고민하였다. 

기후변화의 원인과는 거리가 먼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이런 시골에서 대도시의 과대소비와 욕망이 창조한 기후변화의 값을 대신 치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까깝기 그지 없다. 남의 일로만 치부하지 않고 지구를 함께 사용하는 이웃으로서 더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자발적인 원조가 우선이 되어야 겠지만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의 원인이되는 도시들에 대한 세금을 부과해 기후변화의 원인제공과 무관한 지역의 재난에 대한 직접 복구 비용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필요해 보인다. 


재난의 시대에 다시한번 현장에서 예술가 들과 함께 다시한번 예술의 역할과 가능성을 고민해본다. 이러한 여정에 함께한 롤라이 Prego 90은 프로젝트 진행에 분주한 기획자의 역할에 따로 신경쓰기 힘든 촬영을 별다른 부담과 준비없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믿음직한 친구다. 특히 재난 지역같은 험난한 곳을 갈때는 일단 튼튼해 보이는 장비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커버 사진으로 사용한 성당*** 폐허 사진을 6개월이 지난 지금 들여다보면 놀랍다. 분명 28mm에서 주변부 화질은 문제가 보이지만 묵직한 표현이 모든 단점을 보완한다. 지진으로 파괴된 문명의 상징물 위에 펼쳐지는 자연의 생명력을 회화처럼 보여준다. 불과 5년 밖에 안된 지진이지만 벌써 앙코르와트 같은 고대유적처럼 변해버렸다. 이러한 시간성과 식물성을 표현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너무나 쨍한 SLR렌즈 였다면 오히려 실패했을 사진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하일라이트부터 쉐도우까지 아주 안정적인 표현이다. 어떤면에서 보면 주변부의 뭉게짐이 좀더 회화적인 느낌을 이끌어내는 면도 있다. 다 도구는 어떻게 쓰이냐의 문제이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필름이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못쓰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단 다른 감도, 특성과 색감을 가진 새로운 무엇이 될 뿐이다. (사람도 젊음을 지난 노년이 된다고 해서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듯이) 이 카메라를 통해서 배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어떤 도구임을 깨닫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산사태로 찌그러진 자동차. Fuji Superia 100(유통기한 2004년/ 노말현상) 이 카메라와 유통기한 지난 필름은 비네팅을 더욱 강조하고 녹색이 올리브계열로 표현되었다.


폐허가 된 나가의 주택과 가게 풍경. 2019년 1월. 무거운 쉐도우 표현이 인상적이다. 증감현상을 통하면 달라질 것이다.
보홀의 지진현장(2013년 발생)도 오래간만에 방문하였다.  5년동안 풀들이 무성히 자라 마치 앙코르 와트의 유적지처럼 변해 버렸다. 폐허에서도 어김없이 자연의 생명력이 폭발한다
롤라이 프레고는 흐린날 줌이 들어간 상태에서도 우수한 화질을 보여준다. 2013년 보홀 지진으로 세부의 산토니뇨 성당도 파괴 되었지만 이젠 복구되었다. 2019년 1월
***보홀 지진으로 파괴된 Parroquia de San Pedro Apóstol성당. 현지인들은 로복성당이라고 부른다. 로복강 선상투어를 하는 선착장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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