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유나를 만난다.
그녀가 밥을 먹으면 나도 밥을 먹고, 그녀가 술을 마시면 나도 술을 마신다. 그녀가 산책을 하면 나도 산책을 한다. 그녀가 웃으면 나도 함께 웃고, 그녀가 울먹이면 나도 눈물을 흘린다.
행복하냐고? 글쎄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도 나를 공격하지 않고 나도 그녀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으로 우선은 족하다. 그녀와 나 사이엔 평화가 흐른다, 고요하고 잔잔한 물결같은.
유나를 만나기 전에 내가 여자를 만난 건…… 까마득한 기억이 되었다, 과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20년 전이다. 나는 그때 서른 살이었고, 호텔 총무과에서 일하고 있었다. 들어오는 돈과 나가는 돈을 더하고 빼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나보다 세 살이 많았던 여직원이 결혼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었고 새로운 여직원이 들어왔는데,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세 살이 많았던 여직원은 수수한 모습에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과 태도를 지니고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면모였고, 그래서인지 전혀 끌리지 않았다. 반면에 나보다 세 살이 적은 신입 여직원의 모습은 우아했고 성격은 생기발랄했다. “오정애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총무과장이 소개를 하자마자 환한 미소를 내보이며 말한 다음 척하니 오른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네, 반갑습니다. 강상구라고 합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이 서른이 되어 처음으로 경험했다.
정애는 업무적으로 궁금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와서 물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그러면 그녀는 어머, 아아, 우와,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곤 했다.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고 퇴근하고 나서 함께 술을 마시고 하면서 차츰 업무 외적으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어느 날은 그녀가 노래방에 같이 가자고 하여 함께 가게 되었고, “우리 블루스 춰요.”라고 해서 껴안게 되었고, 접촉에 자극받은 내가 노래를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눈을 감았고, 나는 입을 맞추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감격이었다. 아, 나도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이런 게 이루어질 수 있는 거구나, 싶은 감격이었다. 이십대 초반과 중반에 잠깐씩 짧은 만남을 가졌었지만 소꿉장난 수준이었는데, 이제 정말 연애라는 걸 해보는구나, 하는 환희에 젖어들었다. 내가 사는 원룸에서 처음으로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강 대리님의 차분한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어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도 나도 서로의 상반된 성격에 이끌린 셈이었다.
1년 동안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습관이나 취향에 맞춰주려는 마음이 강했지만, 차츰 자신의 습관이나 취향에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러다 보니 간헐적으로 다툼이 발생했다. 싸우고 나서 냉담하게 지내다 보면 외로워지고 그리워지고, 그리하여 다시 다가서고 가까워지고, 가깝게 지내다 보면 다시 다툼이 발생하고…….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툼의 강도가 세진다는 데 있었다.
욕설, 폭력 같은 건 나와는 무관한 것인 줄 알았다. 그것은 순전히 ‘나쁜 놈들’의 소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나쁜 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내 뜻에 따라주지 않으면 욕을 내뱉기도 했고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들곤 했지만, 한 번 솟아오른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녀 또한 감정이 상할 때면 나에게 욕을 퍼부으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다툼의 강도는 갈수록 세지고 그럴수록 냉담하게 지내는 기간은 길어졌다. 그때마다 직장에서는 철저하게 사무적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화해를 하고 다시 가까워지면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었다, 냉담하게 지낸 기간을 한꺼번에 벌충이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애정과 증오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체감하는 나날들이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결혼 얘기도 오고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결혼 얘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상태로 결혼한다면 행복과는 거리가 한참 멀 거라는 걸 그녀도 나도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