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세상에서 #2

by 이룸

그런 채로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언제나처럼 또 크게 싸웠고, 냉담하게 1개월을 지내고 있었고, 정애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토요일 오후에 전화를 걸었다. “저번에는 내가 잘못했어. 지나고 보면 사소한 건데, 왜 그때는 그걸 크게 확대해서 생각하고 내 감정을 이기지 못한 건지…….” 매번 비슷한 내용의 말을 건네었었다. 언제나처럼 들려올 그녀의 답변을 기다렸다. 자기만 잘못한 게 아니잖아, 라거나 내 잘못도 커, 같은.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나, 남자 생겼는데.” 흐뭇하게 웃음 지으며 자랑하듯 말했다.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누군데?”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물었다. “응, 대학 동창인데,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몇 번 만나게 되었어. 학교 다닐 땐 별 느낌이 없었는데, 양복 빼입은 모습을 보니까 느낌이 다르더라. 걔도 내가 특별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더라고.” 설렘과 기대가 넘실거리는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야 이 미친년아! 너 지금 제정신이야? 나 약 올리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녀는 차분하게 응수했고, 그것이 더욱 화를 부풀어 오르게 했다. “아니 그럼, 지금 내가 화 안 내게 생겼냐, 이 또라이년아!” “그럼 내가 어떡해야 하는데? 울기라도 할까? 왜 또 욕을 하고 그래! 새로운 남자 생겼다니까 심술 나냐? 심술 나면 너도 새로운 여자 만나면 될 거 아냐, 이 머저리야! 쪼다야!” 그녀가 언성을 높이며 말을 쏘아댔다. “하긴 너 같은 놈한테 어떤 여자가 달라붙겠냐. 나니까 불쌍해서 만나준 거지.” 살인 충동이 일렁였다. 눈앞에 정애가 있고 내 손에 칼이 쥐어져 있다면 나는 바로 그녀를 찔렀을 것이었다. 뉴스에서 심심찮게 올라오곤 하는 분노조절장애 사건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온몸을 휘감아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이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까. 아니, 왜 나는 이런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는 걸까. 온갖 의문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명멸했다. 그 어떤 의문에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만 지끈거리게 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내내 침대에 누운 채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아무런 의욕도 일렁이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깊은 잠에.


월요일이 되었어도 직장에 나가지 않았다. 휴대폰도 꺼두었다. 정애를 보게 되면 무슨 일을 벌이게 될지 몰랐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견딜 수 없이 배가 고플 때만 조금씩 밥을 먹었다. 그런 채로 한 달이, 두 달이 지나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분노와 고통은 점차로 누그러졌다. 분노와 고통이 누그러지는 것에 반비례하여 외로움과 허전함이 부피를 키워갔다.


그때부터 정처 없이 자동차의 바퀴를 굴렸다. 바닷가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돌아오기도 했고, 발길 가는 대로 들판을 거닐기도 했고,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기도 했다. 외로움과 허전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정애와의 만남을 대체할 그 누군가를 만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일자리부터 구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다른 여자와 사귀게 된다면 또 비슷한 방식의 만남이 반복될 것이었다. 그것이 두려웠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공격성을 분출하지 않을 자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직장을 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정애를 칼로 찔러 죽이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지닌 채 살아온 것 자체가 살인자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나를 지배했다. 당분간은 감옥살이를 하듯이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 무슨 돈으로 생활하지? 8년간 직장생활하면서 저축해 놓은 돈이 있으므로 당분간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언젠가는 그 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었다.


사진을 찍기로 했다. 직장생활하면서 휴일에 가끔씩 사진을 찍어왔었는데, 이제 매일처럼 바다로 산으로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고, 집으로 돌아와 포토샵으로 보정을 한 다음 사진 판매 사이트에 올렸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갈 때면 여관이나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하루하루가 휙휙 지나갔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처럼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외로움과 허전함을 온통 사진으로 채웠다.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가끔씩 부모님을 뵈러 갔고, 가끔씩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생을 만났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생활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사진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다른 삶의 방식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때부터였다. 사진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식어갔다. 몸이 피로를 호소했다. 삼십대에는 달리듯 산을 올랐지만 사십대 중반을 넘으면서부터는 간헐적으로 멈춰서 쉬어주어야 했다. 자동차를 타고 이곳저곳 떠도는 것에도 이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외지에서 잠을 자는 건 더욱 꺼려졌다. 처음에는 새로운 세계를 사진에 담는다는 기대와 흥분이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세계를 그저 관성적으로 담아오는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