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세상에서 #3

by 이룸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꼴로만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럼 나머지 시간에는 무얼 할까……? 그러자 막막해졌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싶은 마음도 내키지 않았다. 오랫동안 홀로족으로 살아오다 보니 조직 생활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다.


사진 판매 사이트에 축적해 놓은 사진이 많으니, 그리고 계속해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새로운 사진들을 올리고 있으니 이변이 없는 한 생활비를 걱정할 바는 아니었다. 욕심 내지 않고 소박하게 살아가기엔 충분했다. 문제는, 외로움과 허전함이었다. 그동안은 외로움과 허전함을 사진 찍는 일로 채워왔지만, 이제 그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한단 말인가. 외로움과 허전함이라는 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내성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채로 책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유튜브를 둘러보기도 하였다. 그저 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나를 만나게 되었다.


유나는 마흔한 살이고 청소 일을 한다. 원룸 건물 여섯 곳, 상가 건물 두 곳.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60만원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수입이다. 거기서부터 친근감이 들었다. 월세와 전기세와 도시가스비를 내고 나면 20만원 정도가 남고, 그걸로 생활한다. 1년 전부터 <유나의 비혼 생활>이라는 브이로그를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30대 초반에 연애에 실패한 이후로, 아니, 연애에 사기를 당한 이후로 비혼을 선택했다고 한다. 건설회사에 다닌다는 남자였는데, 외모도 출중하고 말도 청산유수고, 어찌나 잘해주는지 몰랐단다. 신축부지의 상가에 돈을 투자하면 3개월 내로 두 배의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직장생활하면서 모은 돈에 아버지 돈까지 끌어 모아 투자했단다. 그런데 남자가 사라졌다. 전화를 거니 없는 번호라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남자가 일한다는 회사에 찾아가 수소문해보았지만 그런 남자는 없단다. 경찰서에 찾아가서 남자의 이름을 대고 신원조회를 부탁했더니, 가명이었음이 드러났다.


이후로 유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방송작가 일도 그만두었고, ‘그놈’을 찾아 행려병자처럼 매일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충격을 받고 시름시름 앓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자책감과 죄책감이 옥죄어왔다. 자신을 낳고 나서 죽었다는 어머니, 이제 아버지마저 자신 때문에 죽게 되다니……. 방 안에 틀어박힌 채로 어떤 방법으로 이 세상을 떠날까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자살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오래도록 사람들과의 대면을 꺼려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러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로 간접적인 방식으로나마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게 브이로그였다.


나는 유나의 얼굴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일상생활을 영상으로 찍고, 자신에게 있었던 일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유나도 내 얼굴을 모른다. 나는 그녀의 브이로그를 보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구독자 중의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50년을 살면서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친밀감을 그녀에게서 느낀다. 30대에 연애에 실패한 후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가 나는 사진을 찍었고 그녀는 청소 일을 하게 되지 않았나. 그녀나 나나 오래도록 홀로족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나보다 훨씬 큰 아픔을 겪은 그녀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구독자 수와 조회 수와 댓글들을 보건대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녀의 삶에 용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대면의 삶에서 각기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상처나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녀가 밥을 먹으면 나도 컴퓨터를 보며 밥을 먹고, 그녀가 술을 마시면 나도 컴퓨터를 보며 술을 마신다. 그녀가 산책을 하면 나도 휴대폰을 보며 산책을 한다.


그녀의 브이로그를 보며 언제까지나 나 혼자만의 아픔에 파묻혀 지내서는 안 되겠구나, 누군가에게 공감을 주고 힘이 되어주는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싹텄다.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대면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비대면의 방식으로라도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내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순간부터 외로움과 허전함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리고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공격성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진 듯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