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2층으로 올라서면 정사각형 모양의 공간이 나온다. 계단 맞은편의 책장에는 새로 들어온 책들이 꽂혀 있다. 왼쪽 입구로 들어가면 문학과 역사책이, 오른쪽 입구로 들어가면 문학과 역사를 제외한 책들이 있다. 한가운데에는 소파가 두 줄로 놓여 있다. 잠시 앉아서 편하게 책을 읽으라는 의도일 게다. 도서관이니까. 그러나 그곳에서 아는 사람끼리 얘기를 나누는 경우도 있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잠시 눈을 붙이는 사람도 꽤 된다.
무더운 여름이다. 나는 그동안 해왔던 국어 교습소를 정리하고 취미로 해왔던 사진을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모색하는 중이었다. 도서관 자료실에 와서 ‘창업’이나 ‘마케팅’과 관련된 책들을 훑어보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막막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날도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멍하니 눈앞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뭘 보세요?”
앞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불쑥 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을 떴나 보다.
“예?”
“왜 저를 보고 있냐고요.”
“아, 아닙니다. 그쪽 분을 본 게 아니라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심하게 보입니까?”
나는 손을 훼훼 내저었다.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을……. 제가 왜…….”
“평일인데 도서관에 와서 앉아 있고, 옷도 양복 차림이 아니라 후줄근하게 입고 있으니까 한심하게 보이냐고요.”
“아이구 참……” 나는 미소 지어 보였다. “전혀 그렇지 않다니까요.”
“지금 비웃는 겁니까?”
슬슬 화가 나려고 했다. 맞대응하면 싸움으로 이어질 것 같아 마음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오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멍 때리고 있다가 우연히 그쪽 분에게로 시선이 갔을 뿐이에요.”
얼른 일어나서 이곳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무슨 일 하는지 궁금하세요?”
허, 하고 속으로 혀를 찼다. 어이가 없어서 어떤 말로 대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배는 뽈록 나오고, 다리에 털이 많은데 반바지 차림이고, 헝클어진 머리로 도서관에 와서 잠을 자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50대 아저씨에게 내가 무슨 관심 같은 걸 갖겠는가.
“청소 일 하고 있습니다, 청소 일.”
남자가 스스로 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버럭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다. 안 궁금해요, 안 궁금!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맡은 곳 오전에 일 마치고 밥 먹고 나서 잠시 도서관에 들른 거예요. 저라고 뭐 처음부터 청소 일을 했겠습니까.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했었어요. 생산직이 아니라 사무직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더라고요. 하청업체다 보니 원청업체의 갑질에도 끽소리 못하고 굽실거려야 하고 주기적으로 접대도 해야 되고……. 게다가 직장 상사의 갑질까지 더해지니……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주식투자를 하게 되었죠.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들어보았나요?”
“저는 주식 같은 거 해본 적이 없어요. 아니, 그런데 지금…….”
제가 왜 안 궁금한 그쪽 분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까, 하고 말을 이으려는데 남자가 내 말의 꼬리를 싹둑 잘랐다.
“아, 그러시군요.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 그대로 처음엔 주식투자로 돈을 좀 벌었죠. 그것이 쥐약이었어요. 단기간에 쉽게 돈이 벌리자 욕심이 생겼죠. 500만원 투자해서 200만원 벌었으니 5000만원 투자하면 2000만원, 5억을 들이면 2억, 50억을 들이면 20억! 있는 돈을 몽땅 주식에 쏟아부었죠. 끔에 부풀었어요. 건물을 하나 세워서 일층엔 아내에게 커피숍을 마련해주고, 이층은 내 사무실로 쓰고, 삼층은 집으로……. 물론 아내 몰래 주식투자를 했죠. 나중에 서프라이즈! 해주려고요. 그런데……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쇼크가 되고 말았어요. 주식이 떨어지길래 신용까지 끌어다 썼는데 강제매매를 당하고 깡통계좌가 되고 말았지 뭡니까. 결국 아내에게 실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어요.”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낭패감이 짙게 배어나오는 한숨이었다.
“이혼을 당했죠. 그런 상황에서 일인들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회사도 때려치웠죠. 조그마한 방을 하나 구해서 매일 술을 마시고…… 로또를 구입하고서 꿈에 부풀지만, 결국 휴지조각이 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딸아이를 만나는데, 녀석에게도 미안하고 볼 낯이 없지만 그래도 녀석에게만큼은 웃음을 보이며 놀아주려고 노력합니다. 콱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적도 많았지만…… 살아야겠다, 이제부터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세요?”
“아, 궁금하네요.”
남자의 말을 길게 듣다 보니 궁금증이 진심으로 우러나왔다. 어떤 책에선가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다른 존재를 잘 알게 되면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잘 모르고 나의 생각과 입장에서만 판단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좁은 방에 처박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나온 삶을 자꾸 떠올리게 되더군요. 그랬더니 지금까지의 삶은 그냥 무엇에 떠밀리듯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나도 별 생각 없이 따라가는 삶이었어요. 이제부터는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삶의 과오를 청소부터 해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청소하지? 에라, 모르겠다. 우선 청소 일을 하면서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아무튼 그래서 청소 일을 하게 된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하는 눈빛으로 남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반응에 남자가 미소를 머금었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틈나는 대로 도서관에 오는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뭘 하든 제대로 알아가며 해야겠다. 그런데…… 책 읽는 습관이 안 되어 있다 보니 쉽지가 않군요.”
“뭐든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죠.”
남자가 잇몸을 드러내며 헤벌쭉 웃었다. 대화를 시작할 무렵이었으면 징그럽게 느껴졌을 게 분명한데 이제는 제법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맞아요, 맞아, 시간! 조급한 마음이 항상 문제더라고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하는데…….” 그러면서 남자가 옆에 놓여 있던 책을 들어 보였다. <주식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주식이란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또 한 권의 책을 들어 보였다. <관계의 단절과 회복>이라는 제목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해나가렵니다.”
“그런 자세라면 머잖아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저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를…….”
그때 남자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려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휴, 시간이 벌서 이렇게 되었네. 새로 청소 의뢰 들어온 곳의 건물주를 만나기로 해서 가봐야겠네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도 반가웠습니다.”
남자가 책을 들고서 허둥지둥 걸으며 계단 아래로 향했다. 남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일렁였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오늘 못다 한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졌다.
“그쪽 분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습니다.”
다시 만나게 되면 건네게 될 첫 문장이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