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시는지…….”
홀쭉한 경찰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동안 학원 강사로 일했었고, 지금은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중이에요. 그것도 뭐 문제가 됩니까?”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요. 하는 일과 미니스커트가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아무 관련 없어요. 단지 더워서, 그 이유 말고는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많은 남자들이 모두 다 덥다고 느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미치기 딱 좋은 날씨이긴 하지만…….”
“뭐요? 내가 그럼 미쳤다는 겁니까?”
진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홀쭉한 경찰이 손을 훼훼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미쳤다는 게 아니고 날씨가 그렇다는 겁니다, 제 말은.”
“그럼요, 미친 건 날씨죠.” 통통한 경찰이 홀쭉한 경찰의 말실수를 함께 수습하려는 듯 끼어들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홀딱 벗은 채 일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은 다들 그렇다는 겁니다.” 홀쭉한 경찰이 말을 받아 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실제로 행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아, 하고 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얘기가 다르죠. 홀딱 벗고 다니면 당연히 풍기문란이죠. 하지만 저는 엄연히 옷을 입었고 안에 팬티도 확실히 입었습니다. 확인해 볼래요?”
“아이구 참, 당연히 입으셨겠죠.”
통통한 경찰이 양팔을 쭉 뻗으며 만류했다, 제발 치마를 들어 올려 민망한 꼴 보이지 말라는 듯이.
“게다가 자리에 앉을 땐 손수건으로 가리기까지 합니다.” 진혁은 어깨에 메고 있던 에코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펼쳐 보인 다음 다시 집어넣었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풍기문란은 아니지만 과다노출죄는 될 수 있습니다. 좀 애매합니다만…….”
홀쭉한 경찰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과다노출?” 진혁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이 무슨 박정희 시대예요? 장발도 단속하지 그러십니까.”
“허허, 그런 시대가 있었죠. 세상 참 많이 좋아졌어요.”
통통한 경찰이 너털웃음을 쳤다.
“그렇게 생각하죠? 그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유로운 세상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독재를 꿈꾸며 내란을 일으키지를 않나, 거기에 동조하며 폭동을 일으키는 놈들이 있지를 않나……. 내란이 성공했더라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끔찍한 세상에서 살고 있겠습니까? 두 분은 다시 박정희, 전두환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구, 그럴 리가요.” 통통한 경찰.
“저희는 태어나기도 전이었습니다.” 홀쭉한 경찰.
“저도 어린 시절이었으니 세상물정을 잘 몰랐죠. 지금 와서 떠올려 보건대, 지금 시대와 비교해 보면, 칙칙하다고 할까, 경직되어 있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어요. 그때로부터 세상이 조금씩 자유롭게 변화된 거예요. 물론 자유로운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한 사람들 덕분이죠.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만…… 남자가 미니스커트를 입는 건 좀…….”
홀쭉한 경찰이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고가 들어오면, 아니,” 통통한 경찰이 고개를 흔들었다. “민원이 들어오면 해결을 해야 하는 저희들의 입장도 좀 헤아려 주십시오.”
“자유로운 세상이 좋긴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너무 앞서나가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홀쭉한 경찰.
“한두 발짝만 앞서가셔야 하는데…….” 통통한 경찰.
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진혁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매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매미는 어떤 더위에도 기죽지 않고 마음껏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나무 위로 올라가서 맴맴맴, 하고 싶어졌다.
“좋습니다. 지금 당장 집에 가서 반바지로 갈아입을게요.”
“하하하,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통통한 경찰.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홀쭉한 경찰.
“그 대신 오늘부터 더운 날씨에는 남자들도 미니스커트를 입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렵니다.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카페도 개설하고…….”
“기대가 됩니다. 저희 경찰들도 미니스커트를 입고 근무하는 날이 오겠죠?”
민원이 해결되었다 싶자 통통한 경찰이 흥겨움에 넘쳐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집에 가서 미니스커트를 벗고 다시 입고 다니지 않는 걸로 알고서 저희들은 그만 가보겠습니다.”
홀쭉한 경찰이 거수경례를 했다.
경찰들이 공원 입구를 빠져나가 자동차에 올라탔다. 경찰차가 멀리 사라지는 걸 지켜보면서 진혁은 다짐했다. 10년, 적어도 10년 안으로 그런 세상을 만들리라. 미니스커트를 입은 남녀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진혁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