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오전 열한 시였다. 아, 이런! 영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온몸이 무겁고 뻐근했다. 오른쪽 허벅지에서는 통증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무엇에 부딪친 모양이다. 외출할 때 입었던 옷 그대로 잠들었으며, 양말도 신은 채로였다. 시계 뒤쪽을 살펴보니 알람도 맞추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어 먹었다. 그러나 씻고 싶은 마음도,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일렁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 헤어지고 어떻게 해서 집에 오게 되었는지도 기억에 없었다. 기억나는 거라곤, 길을 걷다가 낯선 곳에 이르러 추위에 덜덜 떨며 한참 헤매었던 난감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에서였는지 꿈에서였는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다. 온몸에서 양주 냄새가 진동을 했고, 머리는 지끈거렸으며,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영기는 다시 입은 옷 그대로 자리에 눕고 이불을 덮었다.
스마트폰의 벨소리에 영기는 깨어났다. 누운 채로 전화를 받았다.
“여기 스튜디오에 왔는데…… 문이 닫혀 있네요.”
어떤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 네…… 몸이 좀 안 좋아서…….”
영기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행사 사진 좀 의뢰하려고 하는데…….”
“아, 네…….”
평소 같으면 어떤 행사인지, 며칠간 진행하는 것인지, 보수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연달아 물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이래선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꿈틀거렸지만 다시 잠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차라리 저편에서 전화를 끊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지금 몸이 안 좋아서…….”
영기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럼 언제 다시 오면 될까요?”
“몸이 좋아지면…… 그때 연락 할게요.”
영기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전화가 끊겼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였다. 스마트폰을 옆으로 밀어놓고 영기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속에서 신호가 왔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앉자마자 몸이 요동을 쳤다. 냄새도 고약하게 났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휘몰아쳤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가끔씩 우울한 기분이 출몰하곤 했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가라앉은 적은 없었다. 기쁨이나 희망의 입자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온통 우울과 절망의 입자들만 몸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밥을 차려 먹을 의욕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두유를 하나 꺼내어 빨대를 꽂고 빨아들였다. 평소 같으면 몇 번에 걸쳐서 먹었을 텐데, 갈증이 심해서인지 한 순간에 팩 하나를 비웠다. 이제 정신 차리고 밖으로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여전히 피곤하기만 했다.
영기는 방 안을 왔다 갔다 거닐어 보았다. 그리고 지난밤을 떠올렸다. 스튜디오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오랜만에 재현을 만났고, 술을 마시게 되었다.
재현과는 10년 전에 같은 곳에서 일했었다. 재현이 세 살 위였다. 사진 앨범이나 액자를 제작하는 업체에서였다. 그곳에서 영기와 재현은 포토샵을 이용해 사진을 보기 좋게 가공하는 일을 했었다. 단순 작업의 반복이었고, 당연히 박봉이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래 있을 곳은 못 되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주로 오가는 대화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거야?, 뾰족한 수가 생기면 그만 두어야죠, 같은 것이었다. 함께 지낸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재현이 사업을 한다며 그만두었고, 그로부터 1년 뒤에 영기도 그만두었다. 어떤 일을 한들 설마 이곳에서보다 못 하랴, 싶은 심정에서였다.
영기는 그동안 저축해둔 돈을 전부 끌어 모아서 사진 스튜디오를 차렸다. 설마 했는데…… 직장 생활에서보다 벌이가 시원찮아졌다. 창업 이후 3년이 지나서도 생존하는 비율이 40퍼센트가 되지 않는다는 자영업의 현실이 몸으로 느껴졌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그래도 저축을 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한 나날이 이어졌다. (#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