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잠시 말을 끊었다. 고요함이 천천히 흘렀다. 나는 고요함에 잠긴 채 물을 한 모금 들이켜며 남자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그때부터 별을 보러 다니자는 해결책을 마련했어요. ……빛은 1초에 지구의 둘레를 일곱 바퀴 반 돈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빠른 빛인데,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에서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4년 넘게 걸린다고 해요. ……태양은 지구의 100배가 넘는 크기인데, 태양보다 100배, 1000배가 넘는 별도 있다고 하니…… 그런데 그런 어마어마한 크기의 별도 우리 눈에는 작은 점처럼 보이니…… 우주란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
스스로 하는 말의 내용에 압도당한 듯 남자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러니까 모든 별빛은 과거의 빛인 셈이죠.” 여자가 말을 이어받았다. “지금은 이미 사라진 별일 수도 있고요. 우리 눈에 보이는 별보다 보이지 않는 별이 훨씬 더 많지요.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 삶은, 우리 만남은 찰나에 불과한 것이구나, 깨닫게 되더라고요. 저 조그맣게 보이는 별이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기일 텐데……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사소한 것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라고요.”
다시 고요함만이 세상에 가득했다. 그들의 얘기를 들을수록 그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출렁거렸지만,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그들의 얘기가 더욱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얼굴이 보인다면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가 말의 내용에 색깔을 입히게 될 것이었다, 낮에 숱하게 경험하듯이.
“그래서…… 이 광대한 우주에서 이렇게 너와 내가 만났다는 것, 아니 멀리서 바라만 볼 수 있어도 엄청난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고요함에 선을 그었다. “그렇게 만나기 힘든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에…… 고마운 마음 말고는 더 생각할 게 뭐가 있나 싶어져요. 사랑할 시간도 많지 않은데 서로 미워할 겨를이 어디 있나 싶고요. 현대사회에서 우울증이 많은 것도, 자살이 많은 것도…… 빛만을 갈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빛만을 갈구하고, 빛 속에서만 있게 되면 어둠이 조금만 짙어져도 견디질 못하죠. 우주의 본질은 어둠이 훨씬 많고 빛은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말이죠. ……어둠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빛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산에 오면 저희는 되도록 빛을 사용하지 않고 어둠에 익숙해지려 노력해요.”
“이제 많이 보이는데요.”
여자가 하늘로 고개를 쳐들더니 말했다. 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 절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어느새 하늘은 새카매져 있었고, 별빛이 밤하늘에 가득했다. 남자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망원경 있는 곳으로 향했고, 여자는 난간에 손을 올려놓고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삼각대 위에 장착하고, 조리개와 셔터 속도와 ISO 수치를 조절했다.
사진을 찍으며 별들을 보고 있노라니 중학교 땐가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짧은 소설이 떠올랐다.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살포시 잠든 스테파네트를 지켜주기 위해 꼼짝하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목동의 이야기. 그 시절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왔나. 그런 순수한 마음을 잃고 산 지 얼마나 되었나……. 남자의 말마따나 나는 언제부턴가 빛만을 갈구했고, 그에 따라 조금만 어둠이 짙어져도 견디질 못했다. 어둠의 시간을 지그시 응시하며 살지 못했다. 빛 속에만 놓여 있고 싶어 허우적거리다가 더욱 어둠 속에 잠기는 역설에 빠진 시간들이었다. 보이는 빛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욕구불만에 사로잡혀 욕심만 부풀리다 보니 마음 가득 분노와 증오와 자책만 팽창한 시간들이었다.
생각해 보건대 스스로 절망의 길을 끌어당긴 셈이었다. 관리부에서 받던 월급 200만 원이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검소하게 살아가면 생활을 이어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돈이었다. 그리고 관리부에서의 업무는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다. 영업부는 내 성격에 맞지 않다는 걸 나는 분명 알고 있었다. 영업을 잘 하려면 말도 능수능란하게 잘 해야 하고 상대방의 비위도 잘 맞춰주어야 했다. 차분히 앉아서 침착하게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 나에게는 딱 들어맞았다. 영업부로 자리를 옮긴 건 요행을 바라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사귀던 여자가 떠나갔을 때 나는 분노에 사로잡혔고, 한동안 그 분노로부터 헤어나지를 못했고, 울분에 가득 찬 채 휘청거렸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결국엔 모두 내 잘못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여자에게서 월 200만 원 버는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리고 꼭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 여자와는 헤어지고 월 200만 원 벌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만나면 될 일이었다. 영업부로 자리를 옮긴 건 분명 내 안에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였다. 멋진 차를 타고 싶었고, 근사한 집에서 살고 싶었다. 주식에 손을 댄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였고, 제대로 준비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통닭집을 열어 화를 자초한 것도 결국엔 욕심이 불러일으킨 결과였다. 큰 틀로 생각하며 여유 있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했는데, 늘 눈앞의 현실에 안절부절못하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살아온 날들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짐을 챙기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능숙하게 정리했다.
“저희 먼저 내려갑니다.”
남자가 말했다.
“좋은 사진 많이 찍으세요.”
여자가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남자와 여자는 헤드랜턴을 켜고 산 아래 쪽으로 향했다. ‘별을 보는 것 자체보다 별을 보려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도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별을 보러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모든 문제는 별을 보지 않고 살아서라는 인식이 밤하늘에 가득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