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남자가 나를 향해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나도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삼각대를 바닥에 세우고 그 옆에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선 방향을 바꿔가며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오봉산 산마루 위로 감청색의 하늘이 보였고, 초승달이 감청색의 바탕에 하얀 무늬를 선보이고 있었다. 달이 떠 있는 방향 말고는 옅은 검정색, 혹은 짙은 회색의 하늘이었다. 오봉산 산마루 아래쪽에는 하얀 불빛이 하나 조그맣게 박혀 있었는데, 텐트에서 나오는 불빛인 듯했다. 하늘을 휘 둘러보았지만, 별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헛걸음을 한 것인가…… 기상청이나 천문관측소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서 오늘 별이 잘 보이는 날인지 아닌지 정도는 살피고 왔어야 하는 거였는데…… 별을 보고 싶다고 해서 아무 정보도 없이 무턱대고 산을 오른 나 자신의 준비성 부족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니 되는 일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까지 습관처럼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그래도 먼 거리를 운전하며 왔는데 바로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철제 난간을 따라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산의 능선들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리우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가끔씩 가로등이나 집들의 불빛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며 여전히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의문이 일었다. 저들은 왜 망원경을 세워두고서 별은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뭘 먹고만 있단 말인가. 저들도 헛걸음 한 걸 알고서 저러고 있는 것인가…….
“저기…… 오늘은 별이 뜨지 않나 보네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할지 잠시 생각한 다음 나는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에서 말을 건넸다.
“아직은 이르죠. 좀 더 캄캄해져야 별이 많이 보이죠.”
남자가 말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하늘로 향했다.
“저기 하나 보이네요.”
남자가 머리 위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남자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처음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별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마음이 일렁였다.
“저쪽에도 하나 보이네요.”
다시금 남자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바로 찾지는 못했다. 한참만에야 별빛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별은 하늘에 셀 수 없이 많이 떠 있죠.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죠. 그것은 낮에도 마찬가지예요.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잘 보이는데, 아직은 하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남아 있잖아요.”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바로 와 닿는 말이었다. 낮이라고 해서 별이 없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닌가. 너무도 지당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지당한 것에 대해서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허탈해졌다. 얼마나 무심하게 살아온 것인가 나는, 하는 마음이 스쳤다.
“기다리시는 동안 감자튀김 좀 드실래요?”
남자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저녁을 먹고 와서……” 거절의 뜻을 표하다가 생각해 보니 산을 올라서인지 약간 출출하긴 했다. “그러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곁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실례는요…… 어차피 저희 둘이 다 먹지도 못할 양이에요. 이렇게 만나는 분들에게 주려고 일부러 많이 준비해 오곤 해요.”
남자가 말했다.
“여기…… 물도 함께 드세요.”
여자가 말하며 내 앞으로 물병의 형체를 한 물건을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감자튀김의 형체를 향해 손을 뻗어 몇 개 주워든 다음 하나씩 입으로 가져갔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눅눅한 느낌의 감자튀김이 아니었다. 딱딱하면서도 고소했다. 감자를 직접 썰어서 튀겨온 듯했다.
“사진 찍으러 오셨나 보네요?”
남자가 말했다.
“네. 갑자기 별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무턱대고 왔습니다. 다른 사진은 많이 찍어봤는데, 별 사진은 지금껏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잘 몰라요. 오늘 별이 많이 뜰 날씨인가요?”
“조금 기다려보면 알 수 있겠죠.” 남자가 얇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저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하늘에 구름도 많지 않고 습도도 지나치게 높은 것 같지는 않으니 섭섭하지 않을 만큼은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두 분은 왜…… 언제부터 별을 보러 다닌 건가요?”
나는 그들을 향해 궁금증을 날렸다. 흐흣, 하고 여자가 짧게 웃음을 내보낸 다음 말했다.
“저희도 별 보러 다닌 지 오래 되진 않았어요. 이제 5개월 됐나?”
여자가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듯했다.
“처음엔 토요일마다 다니자고 했는데…… 비가 오거나 그러면 별 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한 달에 두세 번꼴인 것 같아요. 저희도 정확한 정보를 살펴보고 오는 건 아니에요. 그냥 하늘을 보고 일기예보를 참고하는 정도예요. 이런 말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별을 보는 것 자체보다 별을 보려는 마음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별을 보려는 마음이라…… 뜻 모를 소리에 둘러싸인 채 나는 감자튀김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이번에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 우리 둘이 만났을 땐…… 모든 게 신비롭고 경이로웠죠. 나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고,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의 단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고, 싸우게 되고…… 싸우게 되면 상대방의 꼬투리를 붙잡고 늘어지고, 자존심 건드리는 말만 골라서 툭툭 내뱉고…… 괴롭더라고요. 그때부터 고민을 하게 되었죠, 어떻게 하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처음에 이 사람은 나에게 어떤 존재였나를 떠올려봤죠. 별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