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문득 별을 보고 싶어졌다.
밤하늘에 한두 점 보이는 별은 종종 보아왔지만 셀 수도 없이 가득한 별을 본 것은 어린 시절 이후로 없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었을까, 싶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도시로 옮겨 와서 지낸 이후로 별빛은 종적을 감추었고, 명절 같은 때 시골에 가 보아도 어린 시절에 지겹도록 보아왔던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별을 보려면 이제 마을로부터도 멀리 떨어지고 가로등도 없고 차도 다니지 않는 높은 산에 올라야 했다. 굳이 캄캄한 밤에 애써 멀리 떨어진 산을 향해 자동차를 몰고 가야할 필요 같은 건 지금껏 한 번도 있지를 않았다.
밖으로 나와 자동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한 곳으로 모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고 싶다는 마음 한편으로, 그걸 보아서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가, 산을 올랐는데 별이 보이지 않으면 그 무슨 허망한 짓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붕붕 맴돌았다.
그러나 이미 내친김이었다. 나는 국사봉을 향해서 바퀴를 굴렸다. 사진에 취미를 붙인 이후로 대여섯 번 가량 다녀온 길이었다. 주로 아침에 물안개 피어난 붕어섬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였다.
사진 찍기는 나에게 유일한 숨구멍과 같은 것이었다. 출구 없는 삶처럼 느껴지는 하루하루에서 잠시 놓여날 수 있는 도피처였다.
인생에서 아홉수가 사납다고 했던가.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서른아홉에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입사 이후로 줄곧 관리부에서 일하다가 서른여섯에 영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순전히 자청해서였다. 관리부의 월급은 200만 원으로 고정되어 있었으나 영업부의 경우는 성과급이었다. 많이 벌 경우 한 달에 천만 원 넘게도 가져갈 수 있었다. 3년 가까이 사귀는 여자가 있었는데, 결혼하자는 말을 몇 번 건네 보았지만, 돌아오는 응답은 시큰둥했다. 말을 빙빙 돌려서 하고는 있었지만, 눈치를 살펴보자면, 200만 원 버는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라는 느낌이 들었다.
영업부로 자리를 옮겼지만, 역시 영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관리부의 월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벌게 되었다. 헛심만 팽기는 날들이 이어졌고, 사귀던 여자와 싸우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러면 그럴수록 일할 의욕은 생기지 않았고, 좀 더 빠르게 돈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주식에 손을 대게 되었는데, 돈을 불리기는커녕 원금에서 반토막이 나는 손실이 발생했다.
그런 어느 날 출근했더니 사장이 나를 불렀다. 자네에게는 영업 일이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다시 관리부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사장이 타이르듯이 조곤조곤 말했다. 그것은 그만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업부에서 적응 못하고 다시 관리부로 되돌아온 사람이라는 낙인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 터였다.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몇 장 보내 보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귀던 여자도 떠나버렸다. 있는 돈을 다 끌어 모아서 통닭집을 열었다. 6개월간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그 이후로는 한숨만 푹푹 나오는 날들이 이어졌고, 결국 빚까지 져야 했고, 3년도 못 되어 처분하고 말았다.
실패자, 사회 부적응자, 같은 단어들로 울타리를 둘러친 채 회한 속에 잠겼다. 매일처럼 술을 마셨고, 열두 시간 가까이 잠을 잤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갑갑한 인간 세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사진기를 마련하기 위해 번듯한 원룸에서 허름한 원룸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원룸 아파트 벽에 나붙은 ‘택배 상하차 직원 모집’ 종이를 보고 거기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보내느니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날 이후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택배 상하차 일을 하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생활이 이어졌다.
3년 동안 사진을 찍어오면서도 별 사진에는 통 관심이 없었는데, 갑자기 별을 보고 싶어졌고 별을 사진에 담고 싶어졌다.
어쩌면 열대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여름, 일기예보에서 말하기를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더위라고 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택배 상하차 일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이 노곤노곤했고, 하여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서 바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모기가 파상적으로 공격을 감행해왔다. 선풍기를 틀면 더운 바람이 나왔다. 에어컨을 설치해야겠다는 마음 굴뚝같았지만, 빚진 돈을 갚아나가기에도 버거운 처지였다. 누워 있는 시간은 아홉 시간이 넘었지만, 실제적으로 잠 든 시간은 한두 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피곤할 따름이었다.
해가 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장에 도착했다. 저녁인데도 일곱 대 가량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삼각대를 지팡이 삼아 산을 올랐다. 아직 미세한 빛이 남아 있어서 손전등을 켤 필요는 없었다. 어둑하긴 했지만 산길의 윤곽을 찾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중간쯤 오르니 텐트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주차된 차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어디를 간 것인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위로 오를수록 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땡볕에 달궈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가득한 도시의 바람과는 확실히 달랐다. 새들과 곤충의 울음소리가 신선한 바람에 실려 간헐적으로 전해져왔다.
정상에 도착하니 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어둑함 속에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라는 것 정도는 분간할 수 있었다. 나이는 둘 다 삼십대 초중반 정도로 느껴졌다. 그들은 바닥에 마주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고, 그들 옆에는 길쭉한 형태의 망원경이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텐트는 보이지 않았다. (#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