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별놈이 다 있어 #1

by 이룸


“세상엔 별놈이 다 있어.”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사람이 있었다. 예컨대, “내가 아는 후배 중에는 말이야, 장모님만 보면 귀여워 미치겠다는 거야. 어느 날은 장모님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쳐다보고 있자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는 거야, 그 귀여운 모습을. 그래서 다가가서는 뒤에서 꼬옥 껴안으면서 ‘저는 장모님이 너무 좋아요.’ 그랬대. 그랬더니 장모가 ‘징그러워, 저리 가.’ 그러더래.” 그러곤 이렇게 끝을 맺는 것이다. “세상엔 별놈이 다 있어.” 그러면 나는 그와 함께 흥겨운 웃음을 흩날리는 것이다.


그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분이었다. 대학교수였고, 다양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 입담도 좋고, 용모도 준수했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곤 했다. 나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운영하며 근근이 먹고살아가는 형편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를 만나게 된 것은 문화센터에서 개최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의 <교양강좌>에서였다. 나는 그의 강의에 쏘옥 빠져들었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지적인 욕구가 활활 타올랐다. 그의 입에서 노자, 장자, 크리슈나무르티,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같은 인물들이 출몰할 때마다 내 입은 헤 벌어졌다. 그런 철학자들이 했던 말의 의미를 실생활에서의 예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서 더욱 그의 강의가 마음에 들었다. 예컨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설명하면서,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려다가 무안당하는 사람에 관한 얘기를 곁들이는 식이었다. 그러곤, “세상엔 별놈이 다 있어.”로 마무리한다.


10회에 걸친 강좌가 끝나고 나서 뒤풀이 모임이 있었다. 저녁밥을 먹을 때는 십여 명이 모였고, 2차로 간 술자리에서는 다섯 명이 함께했다. 그날 이후로 심심하면 한 번씩 그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러면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생각건대, 내가 가장 열성적으로 얘기에 귀를 기울여서 그가 나를 마음에 들어한 것 같다. 대화를 나눈다기보다는, 그가 주로 얘기를 하고 나는 주로 들었다. 나에게는 영광스럽고도 분에 넘치는 만남이었다.


***


자정에 가까운 무렵, 막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였다. 휴대전화의 신호음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가?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의구심을 품은 채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술 한잔 하자. 내가 지금 그쪽으로 갈게.”


놀라웠다. 항상 미리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 몇 시쯤 술 한잔 할 수 있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던 그가 과격하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잔말 말고 나와 새끼야.”


충격이었다. 욕까지. 잠이 확 깼다.



원룸 건물 앞에 10여 분을 서서 기다리고 있노라니 택시가 한 대 와서 멈췄고, 그가 내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늘 내가 너한테 있는 돈 다 쓸 테니까, 백만 원어치든 천만 원어치든 맘껏 먹어라.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인상을 찡그린 채 짜증스럽게 그가 말을 쏘았다. 이미 술을 꽤나 마신 기색이었다.


“이 시간에 문 연 곳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가 말했다.


“여자, 여자 있는 술집으로 가자.”


이 또한 놀라운 말이었다. 그와 나는 저녁밥을 먹을 시간에는 삼겹살집에서, 그 이후 시간에는 호프집 같은 곳에서 주로 만났었다. 여자 있는 술집이라…….


“저쪽에 한 군데 있기는 한데, 이 시간까지 열었을라나 모르겠네요.”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의 방향을 가리켜보였다. ‘유혹’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창문이 없는 벽에 빨간 입술 모양의 장식물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근근이 먹고살아가는 형편으로서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지나치기만 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행주로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정리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늦은 시간에 오셨네…….”


“장사 끝난 건 아니죠?”


그가 말했다.


“손님이 오셨는데…… 받아야죠. 이쪽으로 앉으세요.”


여자가 가리킨 곳으로 그와 내가 가서 앉았다.


“정애야, 손님 오셨다.” (#2에서 이어집니다.)